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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LOG

뒤죽박죽 몰아 쓰는 일기

KNACKHEE 2016. 6. 18. 02:11

 

* 160617 금요일

 

가영 언니에게 올해 첫 생일선물을 받았다. 무려 꽃. 꽃을 선물 받는 건 2년여 만인 것 같다. 꽃을 보고 있자니 괜히 기분이 환해졌다. 같이 포장돼 온 꽃병에 물을 담고 설명서에 있는 대로 꽃대 끝을 대각선으로 잘라 꽂았다. 꽃다발의 향이 진했다. 꽃의 향이 풍겨올 때마다, 물을 갈아줄 때마다, 고개를 돌려 바라볼 때마다 언니를 생각하게 될 테다. 동봉된 모이 팸플릿에 담긴 이야기들이 인상적이었다. 모이(MOOOI)는 네덜란드어로 '아름답다'는 뜻. 꽃은 사치품이란 인식이 보편적인 우리나라와 달리 네덜란드에서 꽃은 생활용품이라고 한다. 얼마 전 이원근 씨랑 차학연 씨가 나온 브로맨스 어쩌고 하는 영상을 본 게 떠올랐다. 첫화에서 평소 꽃을 좋아하는 이원근 씨의 제안으로 둘은 꽃시장에 갔다. 그곳에서 이원근 씨는 행복한 얼굴로 자신이 꽃을 좋아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커피 한 잔이 몇 시간의 행복을 준다면, 꽃은 적어도 일주일의 행복을 준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팸플릿을 읽고 꽃병에 꽂아 놓은 꽃을 보고 있자니 그 말의 의미를 알 것도 같았다.

 

 

 

* 160614 화요일

혼자 옆 동네에 가서 아가씨를 봤다. 숙희의 대사를 빌리자면, /예쁘면 예쁘다고 미리 말을 해줬어야지. 사람 당황스럽게/로 요약되는 감상평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많은 것들이 예뻤고 또 숙희의 대사처럼 아가씨가 제일 예뻤다.

 

 

보람이가 요즘 세상이 흉흉하니 포켓몬 하나 들이라고 해서 주저없이 꼬부기를 골랐다. 꼬북꼬북.

 

 

 

* 160616 목요일

 

꽤 오랫만에 수민이를 만났다. 우린 둘 다 백수여서 훤한 대낮에 만났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인 이 아이가 좋으면서도 어느 순간 어려워졌었는데 이젠 좀 편해졌다. 이 아이에게 종교적 스탠다드가 돼야 한다는 강박을 버렸기 때문이다. 깊고 무거워지려 애쓰는 대신 가볍고 솔직해지기로 했다. 그랬더니 편해졌다. 우리는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과 깨어있지 않으면 깨닫지 못하고 떠나버릴 기회들이 무서웠다.

 

 

 

* 160617 금요일

또 꽤 오랜만에 고등학교 때 같은 학원을 다닌 팸 중 한 명인 다솔이를 만났다. 역시 우리 둘 다 백수여서 해가 중천인 오후에 만났다. 다솔이는 지난 2월에 대학원을 졸업해서 우리 중 가장 고학력자가 됐다. 역시 취준을 하고 있는데 교수는 제자의 진로에 별 관심이 없고, 그렇지만 업계가 좁아 원서 하나를 써도 교수와 상의를 하고 써야 한다고 했다. 아무 징후도 없이 잠수로 이별을 고하고는 며칠 후 프사로 새로운 연애 중임을 알린 연하남 때문에 깨진 멘탈을 복구하는 데 두 달이 걸렸다고도 했다. 건강한 밥을 먹은 게 무색하게 브라우니와 치즈케이크가 들어간 빙수를 먹으며 우리는 서로 잘 될 거라고 얘기했다. 나는 아가씨를 봤지만 다솔이는 아직 못 봤다고 해서 다시 한 번 아가씨를 보러 캄캄한 극장에 들어갔다. 다시 봐도 아가씨는 예뻤다. 아마 혼자라면 두 번 보지 않았을 영화지만, 우울해하는 다솔이를 위해서라면 몇 번이고 다시 볼 수 있었다. 영화관에서 나와 버스정류장까지 캄캄한 밤길을 걸으며 우린 다시 한 번 서로에게 잘 될 거라고 얘기했다. 나는 우리가 모두 각자에게 필요한 방향으로 잘 됐으면 좋겠다.

 

 

* 160612 주일

 

 

예배를 마치고 외할머니 병문안을 갔다. 일주일 전에 다리에 인공관절을 넣는 수술을 하셨다. 할머니 얼굴은 말이 아니었다. 다시 일어나실 수 있을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팔십에 가까운 할머니에게 이 수술은 엄청난 체력과 정신력을 요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남은 한 쪽 수술 생각만 하면 할머니는 죽고 싶다,고까지 생각하시는 것이었다. 다행히 반나절에 걸친 엄마와 이모의 설득 그리고 레지던트의 조언으로, 픽스돼 있던 나머지 수술 일정을 취소하고 몸을 더 회복한 후에 다시 수술 일정을 잡기로 했다. 그제야 할머니의 얼굴에 혈색이 돌았다. 마음이 이렇게나 중요하다. 할머니의 수술을 보면서 늙는 게 무서워졌다. 할머니 일로 엄마가 속상해 하는 것도 정말 속상하다. 병원엔 아픈 아기들이 많았다. 그 작은 팔뚝에 주삿바늘이 꽂혀 있었다. 보는 나도 속상한데 그 엄마아빠는 얼마나 속상할까 싶어 또 속상했다.

 

 

 

* 160618 토요일

 

 

새벽에 개미지옥인 유투브에 들어갔다가 BBC 채널에서 기린 영상을 보고는 너무 귀여워서 캡처를 했다. 첫 번째 사진은 핸드폰 배경으로 설정하기도 했다. 볼 때마다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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