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 Bossanova,
뒤죽박죽 몰아 쓰는 일기 본문
* 160617 금요일
가영 언니에게 올해 첫 생일선물을 받았다. 무려 꽃. 꽃을 선물 받는 건 2년여 만인 것 같다. 꽃을 보고 있자니 괜히 기분이 환해졌다. 같이 포장돼 온 꽃병에 물을 담고 설명서에 있는 대로 꽃대 끝을 대각선으로 잘라 꽂았다. 꽃다발의 향이 진했다. 꽃의 향이 풍겨올 때마다, 물을 갈아줄 때마다, 고개를 돌려 바라볼 때마다 언니를 생각하게 될 테다. 동봉된 모이 팸플릿에 담긴 이야기들이 인상적이었다. 모이(MOOOI)는 네덜란드어로 '아름답다'는 뜻. 꽃은 사치품이란 인식이 보편적인 우리나라와 달리 네덜란드에서 꽃은 생활용품이라고 한다. 얼마 전 이원근 씨랑 차학연 씨가 나온 브로맨스 어쩌고 하는 영상을 본 게 떠올랐다. 첫화에서 평소 꽃을 좋아하는 이원근 씨의 제안으로 둘은 꽃시장에 갔다. 그곳에서 이원근 씨는 행복한 얼굴로 자신이 꽃을 좋아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커피 한 잔이 몇 시간의 행복을 준다면, 꽃은 적어도 일주일의 행복을 준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팸플릿을 읽고 꽃병에 꽂아 놓은 꽃을 보고 있자니 그 말의 의미를 알 것도 같았다.
* 160614 화요일
혼자 옆 동네에 가서 아가씨를 봤다. 숙희의 대사를 빌리자면, /예쁘면 예쁘다고 미리 말을 해줬어야지. 사람 당황스럽게/로 요약되는 감상평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많은 것들이 예뻤고 또 숙희의 대사처럼 아가씨가 제일 예뻤다.
보람이가 요즘 세상이 흉흉하니 포켓몬 하나 들이라고 해서 주저없이 꼬부기를 골랐다. 꼬북꼬북.
* 160616 목요일
꽤 오랫만에 수민이를 만났다. 우린 둘 다 백수여서 훤한 대낮에 만났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인 이 아이가 좋으면서도 어느 순간 어려워졌었는데 이젠 좀 편해졌다. 이 아이에게 종교적 스탠다드가 돼야 한다는 강박을 버렸기 때문이다. 깊고 무거워지려 애쓰는 대신 가볍고 솔직해지기로 했다. 그랬더니 편해졌다. 우리는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과 깨어있지 않으면 깨닫지 못하고 떠나버릴 기회들이 무서웠다.
* 160617 금요일
* 160612 주일
예배를 마치고 외할머니 병문안을 갔다. 일주일 전에 다리에 인공관절을 넣는 수술을 하셨다. 할머니 얼굴은 말이 아니었다. 다시 일어나실 수 있을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팔십에 가까운 할머니에게 이 수술은 엄청난 체력과 정신력을 요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남은 한 쪽 수술 생각만 하면 할머니는 죽고 싶다,고까지 생각하시는 것이었다. 다행히 반나절에 걸친 엄마와 이모의 설득 그리고 레지던트의 조언으로, 픽스돼 있던 나머지 수술 일정을 취소하고 몸을 더 회복한 후에 다시 수술 일정을 잡기로 했다. 그제야 할머니의 얼굴에 혈색이 돌았다. 마음이 이렇게나 중요하다. 할머니의 수술을 보면서 늙는 게 무서워졌다. 할머니 일로 엄마가 속상해 하는 것도 정말 속상하다. 병원엔 아픈 아기들이 많았다. 그 작은 팔뚝에 주삿바늘이 꽂혀 있었다. 보는 나도 속상한데 그 엄마아빠는 얼마나 속상할까 싶어 또 속상했다.
* 160618 토요일
새벽에 개미지옥인 유투브에 들어갔다가 BBC 채널에서 기린 영상을 보고는 너무 귀여워서 캡처를 했다. 첫 번째 사진은 핸드폰 배경으로 설정하기도 했다. 볼 때마다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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