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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LOG

두 번째 망원

KNACKHEE 2016. 7. 13. 22:22

 

 

 

 

 

 

 

 

패키지 유럽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쓔를 만났다. 우리는 지하철 역 안에서 얼굴을 마주하자마자 웃음이 터졌다. 나는 그녀의 가방 속에 들어 있을 스위스 춰컬릿을 생각하며 더 환하게 웃었다. 이번 여행에서 남자친구와 나, 딱 두 명의 것만 사왔다고 해서 감개무량했다. 덤으로 카밀 핸드크림까지 받아 입이 귀에 걸린 날.

 

옥상이 있는 카페에 갈까 했으나 그러기엔 햇볕이 너무 뜨거웠고 옥상을 차지할 게 아니라면 굳이 그 카페에 갈 이유가 없어서 지난번 분위기에 취했던 엣모스피어에 다시 갔다. 유럽 여행기를 풀어놓은 쓔의 결론은 /다시 가야돼/ 였다. 중요한 건 '자유 여행'으로. 패키지는 한 번으로 족하다며, 더 천천히 유럽을 음미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나는 나의 여행 스타일을 어필하며 꼭 나랑 같이 다시 가자고 했다. 하루는 베토벤 생가에, 하루는 고흐 아저씨가 머물던 곳에, 하루는 체코에, 하루는 종일 아무 카페에나 앉아 있자, . 나도 유럽에 가서 쓔가 만났던 거리의 예술가들을 만나고 싶다. 특히 첼로 켜던 아저씨.

 

해가 기울 무렵 카페를 나와 시장에서 핫바랑 닭강정이랑 고로케를 사고 편의점에 들러 맥주를 야무지게 골라 한강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결과적으로 지난번의 루트를 답습한 꼴이 됐지만, 상관없이 좋았다.) 햇볕은 점점 그 힘을 잃었고 우리의 이야기는 바닥이 보이지 않았다.

 

쓔_ S랑 Y, 세무사 시험 1차 합격했대. 그런데 2차가 정말 어려운가 봐.

나_ 으음- 노 관심.

 

쓔가 호쾌하게 웃기에 왜 웃느냐고 했더니 좋아서, 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걔네보다 우리가 더 잘 돼야 하는데, 했다. 그래서 우린 각자의 마실 것을 부딪치며 서로의 잘됨을 기원했다.

 

둘 다 합정으로 가야 해서 세아타워가 보이는 방향으로 무작정 걸었다. 속도는 20. 그 정도면 적당하지 뭐. 양화대교가 보여서 행복하자-를 선창하고 쓔가 이었는데 둘 다 무슨 곡인지 알 수 없는 멜로디의 을 불렀다. 휴ㅅ휴. 행복은 각자의 마음 속에 있는 거니까. 저물녘의 그리고 어둠이 내린 뒤의 이곳은 눈길 닿는 곳마다 아름다움이었다. 특별한 것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자체로 아름다웠다. 의도하지 않은 자연의 어울림만큼 아름다운 것도 없다.

 

나는 그녀를 좋아한다. 오늘 그녀와 함께라서 더 좋았다. 나는 그녀가 이미 이룬 것들에서 좀 더 행복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녀가 앞으로 이루고자 하는 것들이 가장 적절한 시기에 이루어지길 바란다. 다만, 그 과정에서 그녀의 마음이 너무 힘들지 않았으면 한다. 아마 우리는 지금 지나고 있는 과정 속에서 매일 조금씩 더 단단해질 테다. 이건 소망이자 다짐이다.

 

 

 

+) 쓔의 사진 협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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