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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났다, 잘 돌아오려고

KNACKHEE 2018. 10. 23. 01:37

아홉수를 앞두고 백수가 돼 떠나는 동유럽 여행_01_PROLOGUE


일주일에 한 번. 금요일이나 토요일에 손톱을 깎는다. 이번 동유럽 여행 중엔 두 번, 손톱깎이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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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국 전날 저녁. 갑자기 가슴께가 저릿할 정도로 심장이 뛰었다. 아직 캐리어도 열지 않았는데. 대부분의 날처럼, 물리적인 준비보다 마음과 감정이 앞섰다. 여행을 함께한 G는 인천 공항에서 탑승 절차를 마친 후에도 걱정이 설렘을 이긴 것 같다, 고 했다. 나는 경제적인 부분 외엔 아무것도 걱정되지 않았다. 사실 그마저도 미래의 내가 어떻게든 해결하겠지, 싶은 마음이 컸다. G와 반대로, 설렘이 걱정을 이겼던 것 같다.

이번 여행을 계획하며 초반에 처리한 일 중 하나가 대출이다. 또다시 가계 대출이 필요해졌기에 그럼 받는 김에 좀 더 받아서 여행을 가자, 고 마음먹었다. 대책 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나는 절실했고 지금이어야만 했다. 세미콜론(;)이 필요했으니까. 그렇게 아홉수를 앞두고 백수가 돼 떠나는 여행을 시작했다.





경유지인 모스크바에선 비가 왔다. 러시아에 대해 아는 것은 전혀 없고 '사회주의'라는 거대 이념을 바탕으로 추상적인 이미지만 갖고 있을 뿐이었다. 날씨 덕분에 어렴풋이 그려보던 러시아와 비슷한 그것을 만났다. 공항 화장실 문들은 모양새가 꼭 비상구 문 같았다. 힘을 줘 열고 들어가면 안전하고 무서운 기분이 들었다.





시간을 들여 오늘과 내일의 내가 어제로 가고 있었다. 상공에서 작게 빛나는 체코의 야경을 내려다보며 손가락으로 눈 밑을 꾹꾹 눌렀다. 계기는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4~5년 전부터 체코에 가고 싶었다. 대학 때 그렇게 노래를 부르던 프랑스가 아니라. 그래서 작년에 대만과 홋카이도행 티켓을 끊으면서 마음이 조금 불편하기도 했다. 자의로 가는 첫 해외여행은 체코였으면 하는 마음에서. 두 곳 모두 이런저런 이유가 생겨 가지 못하고 취소 수수료를 물어야 했지만. 그런데 정말, 체코에 온 거다. 와버렸다, 체코에. 억지를 좀 부리기도 했지만, 왔다. 꽤 긴 시간 소망하던 게 이뤄져서 눈물이 났던 것 같다. '오랜 바람'이란 게 현실이 될 수도 있구나,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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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