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 Bossanova,

나도 모르게 국경을 넘었다, 등산을 하다가 본문

TEMPERATURE

나도 모르게 국경을 넘었다, 등산을 하다가

KNACKHEE 2018. 11. 4. 02:03

아홉수를 앞두고 백수가 돼 떠나는 동유럽 여행_07


숙소의 조식은 환상적이었다. 누텔라 잼부터 수제 잼까지 잼이 종류별로 있었다. 건강한 빵과 잼은 언제나 옳지.

_





다양한 햄과 치즈, 색깔별 파프리카에 오이, 데운 우유가 있는 것도 감동이었다.  뻔. 무엇보다 가장 최고는 영화 <Call me by your name>에서 올리버가 허술하고 야무지게 먹던 반숙 달걀과 달걀 받침대가 있었다는 거다. 실컷 감탄하며 가져와서는 달걀 껍질을  까서 손으로 들고 먹었다. 욕심부려서   쪽에 수제 잼을 종류별로 올리고 누텔라 잼까지 챙겼다. 오이랑 파프리카, 햄, 치즈를 접시에 담고 나서야 옆에 있던 토스터와 식빵을 발견해 내일은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어야지 싶었다. 덥힌 우유에는  통에 담긴 커피를 찔끔 섞어 커피 향이 나는 우유를 제조했다. 풍성하고 행복한 아침!











숙소 리셉션에서 잘츠부르크 프리패스라는 '잘츠부르크 카드' 2일권을 사고 이제 이십 분쯤은 아무것도 아니지! 하는 마음으로 잘츠부르크 중앙역까지 걸었다. 카드 색 조합이 대학교의 조합원증과 같아서 괜히 친근했다. 그런데 구매 날짜와 시간을 직접 기록하게  있어서 이렇게나 신뢰 사회라고? 하고 놀랐다. 전산에 출입 기록이 남긴 하겠지만. 아니, 그래도. 운터베르크가 종점인 버스를 타고 가는 길은 아주 초록이었고 자전거  사람들이 자주 보였다. 잘츠부르크는 자전거의 도시인 듯했다.

운터베르크까지 올라가는 케이블카  개의 분기점을 지나 높이 높이 올라갔다. 케이블카가 분기점에서 덜컹,  때마다 승객들은 두려움과 설렘이 섞인 감탄사를 내뱉었다. 한쪽 구석에 앉아 운행을 책임지는 직원의 얼굴은 조금 무료해 보였다. 케이블카에서 내리니 구름이 문자 그대로  중턱에 있었다. 조금씩 걸어 올라가며 자주 멈춰 서서 펼쳐진 풍경을 봤다. 인간이 만들어   어떤 아름다움도 자연의 경이를 이길  없다.

산등성이를 하나 넘어가자 EE 유심에서 독일에   환영한다는 문자를 보내왔다. 뜻밖에, 걸어서 국경을 넘었다. 이곳에서 한국인들을 많이 봤는데, 등산복에 등산화, 등산스틱까지 갖추고 등산에 나선 서양인들과 달리 여행자인 만큼  부린 옷차림에 대부분이 컨버스를 신고 있었다. 역시, 등산의 민족.






노란색의 여름 별궁, 헬브룬 궁전은 익살스러운 공간이었다. 궁전 곳곳에  호스가 숨겨져 있었는데, 투어 가이드는 관광객들이 방심한 틈을  물을 뿌렸다. '물의 궁전'이란 별칭에 걸맞게 곳곳에 분수도 많았다. 18세기 즈음 분수를 쓸모없는 것으로 간주해 대부분 없애버렸기에  시대 분수 원형을 보존한 헬브룬 궁전이  소중하다고. 투어 내내 튀어나오는 물을 피하지 못했고 옷은 물론 머리도 쫄딱 젖어 아침에 시간을 들여 한 드라이가 소용없어졌다. 마지막 정원의 문을 열어주며 가이드는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NO MORE WATER!" 했다. 햇살이 물에 닿아 부서지는 정원은 무척 아름다워서 앞머리가 쭉쭉 펴져 시야가 어두워진 나는 조금 슬퍼졌다.








궁전 내부에 들어가려 티켓 부스를 찾았는데 'Republic of Czech'의 잔상에 사로잡혀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묻는 말에"Republic of Korea." 하고 답해버렸다. 나중에 찾아보니 저렇게 표현하는 게 틀린 건 아니라 다행이었다. 국가를 물어본 건 해당 언어의 안내 책자를 주기 위함이었고 번역기의 공이 컸는지 문장이 아주 귀여웠다.

작은 여름 별궁이라 빠르게 관람을 마치고 동물원을 향해 걷는데 걸어도 걸어도 연두색 들판 외엔 보이는 게 없었다. 의심 가득한 마음으로 걷다 보니  외부를  바퀴  돌아서 동물원 입구에 도착했다. 구글  나랑 면담 좀. 동물원에 도착했을  이미 지쳐서 살구  탄산수를 3유로나 주고  먹으며 입구 근처에 있는 동물 위주로 인사를 하러 다녔다.  우리엔 어쩐지  마리가 죽은 것처럼 보였는데, 다른 양들은  주위에서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조개를 먹으면 몸이 빨개지는 홍학을 보고는 P 생각이 나서 여러  셔터를 눌렀다. 앞발을 무척 가지런히 모으고 앉은 재규어에 앞에선 "귀여워-!"를 연발했는데, 입구로 걸음을 옮기면서도 재규어의 멀뚱멀뚱한 얼굴과 다소곳이 모은 앞발이 생각나 자꾸 뒤돌아보게 됐다. 동물들은 대체로 자연을 십분 활용한 우리에 풀어져 있는  갇혀 있었다. 어느 쪽이든 우리나라 동물원의 동물들보단 형편이 나아 보였다.







숙소 근처로 돌아와 노란색 외벽의 모차르트 생가를 둘러봤다. 앱을 다운받으면 해당 번호에 맞는 텍스트 설명이 나왔다. 십여 개의 언어를 지원했는데 한국어도 그 중 하나. 아이, 잘츠부르크 잘하네. 잘츠부르크 카드 시스템에 한국어 안내가 지원되는 관광지도 꽤 있고. 이 정도가 되면 관광으로 먹고사는 게 맞지 싶었다.

묀히스베르크에 있는 호엔잘츠부르크성으로 가는 길에 소금 제품을 파는 숍에 들어갔는데 숍 이름이 'Salzburg Salz'였다. 아주 직관적이면서 뭔지 모를 프라이드가 느껴지는 브랜딩. 시험관에 든 라벤더, 로즈 솔트 등은 여행지의 특색을 살리면서도 부담 없이 선물하기 좋은 모양새였다. 처음엔 식용인지 미용인지 확신할 수 없어서 직원에게 먹을 수 있는 거냐 물으니 엄지 척과 함께 그렇다는 답이 돌아왔다.

피나콜라를 타고 산에 올랐는데 겨우 늦은 다섯 시라 해가 지고 야경을 보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그렇게 기다리면서까지 잘츠부르크의 야경을 보고 싶었던  아니라 빠르게 내려와 모차르트가 생전에 드나들었다던 카페 'Tomaselli'에 가서 저녁을 대신할 요량으로 커피에 빙수, 케이크까지 주문했다. 케이크를 담당하는 직원이 따로 있어서 케이크를 주문할 거라고 하면 트레이에 케이크를 종류별로 담아와 고른  바로 꺼내주는 식이었다. 카푸치노는 밍밍한 맛이었다. 피나콜라도 그렇고 케이블카도 그렇고 오늘은  많은 시간을 상공에서 보냈다. 여행에선 자꾸 높은 곳에 올라 전망을 보고 또다시 높은 곳에 올라 야경을 본다.


저녁에 QT 책을 펼쳤다가 베드로전서 03장 15절 말씀을  번이나 속으로 되뇌었다.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왜 행복해?' '어째서 절망하지 않아?' '어떻게 그게  거라고 생각해?' 이런 질문들에 답을 준비하되  확신의 뿌리엔 온유와 두려움으로 지켜낸 중심이, 그렇게 살아낸 삶이 있어야 한다.

_


2018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