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 Bossanova,

샤대 본문

DAILY LOG

샤대

KNACKHEE 2018. 11. 24. 22:20



최근 연달아 두 번의 이별을 겪고 주말에 시간이 많아진 쓔가 샤대에 가고 싶다기에 동행했다. 샤로수길에서 이십여 분만 걸으면 되는 것 같기에 걷기 시작했는데 샤대는 생각보다 많이 컸고 우리가 샤대라고 도착한 곳에서 시그니처인 정문에 닿으려면 삼십 여 분을 더 걸어야 했다. 빠르게 버스를 타기로 결정. 마치 고3인 것처럼 쓔를 시그니처 조형물 옆에 세워놓고 사진을 찍었다. 그러고는 어쩐지 MoA 미술관 관람이 시작됐다.



이 그림은 실제로 보면 꼭 저 남색의 작품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느낌이다. 아주 캄캄하지만 눈이 적응돼 버린 한밤 중의 바다 같기도 했고 아주 조금씩 어슴푸레 빛이 밝아 오는 새벽의 바다 같기도 했다. 흰색의 작품은 남색의 작품 옆에서 시기를 조절해 주는 빛처럼 느껴졌다.




작품의 제목은 <순간>이고 1년 동안 연필로 덧칠한 거라고 했다. 일 년 치의 흑심黑心이라니.



쓔는 이 작품을 가장 좋아했다. 테이프와 물감으로 작업한 작품이었다.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바다 같기도 했고, 희미해지고 주체에 의해 편집되는 기억 같기도 했다. 문득. 인간에게는 자신의 기억을 편집하고 왜곡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보통 시간이 지나면 나쁜 기억은 희미해지고 좋은 기억만 남는다고들 하는데, 그렇다면 죽기 직전에는 좋은 기억들만 남은, 가장 행복한 상태일 수 있는 것일까.



뭔가 디뮤지엄스러웠덕 작품.




산 속에 있는 샤대의 공기는 아주 맑았다.




다시 샤로수길로 돌아와 버스 정류장에서 가장 가까운 카페로 들어갔다. 다음 주 토요일에 있는 동아리 홈커밍데이 참석 여부를 묻는 임원진의 전화가 왔고 나는 지난번 카톡을 받자마자 안내문구에 있는 대로 문자로 불참 의사를 밝혔다고 말했다. 전화를 끊고 나자 쓔가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이 홈커밍데이에 가고 싶은데 혼자 가는 건 좀 그래서 아직 답을 못 했다고 했다. 나는 조금 일찍 만나서 오랜만에 학교 구경도 하고 새로 생겼다는 카페도 가 보는 조건으로 동행을 약속했고 잠시 후에 쓔에게 걸려온 같은 목적의 전화에 쓔는 참석 의사를 밝히며 나도 밀어 넣었다. 타이밍 정말. 그런데 전화를 끊은 쓔는 이내 사이가 불편해진 동기들의 얼굴을 떠올렸고 지하철 역에서 돌아서서 각자의 길로 가다 돌아와 날 붙잡아 세웠다.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다고. 그들이 올 것 같지 않지만, 만약 온다고 해도 쓔가 괜찮았으면 싶었는데 아직 아니라고 하니까. 결국 쓔는 전화를 했던 임원에게 다시 연락을 했다. 나는 그때의 일이 두고두고 속상하다. 그 일들을 너무 늦게 알아서 당시에 옆에 있어주지 못했다. 쓔는 아무 잘못이 없는데. 유치하기 짝이 없다.



'DAILY LOG' 카테고리의 다른 글

회식과 고백 약간  (0) 2018.11.30
여러 번  (0) 2018.11.27
낮 산책  (0) 2018.11.22
쌓인 고백  (0) 2018.11.19
춘광사설  (0) 2018.1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