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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했다, 다른 삶을 기대할 수 있어서 본문
낮에 타는 유람선도 좋았다. 빛은 언제나 실패하지 않지. 반짝이는 강을 보는 건 늘 좋다. 곳곳에 물든 가을의 색들도 귀여운 사람들의 움직임도 잔뜩 볼 수 있었다. 체코의 건물들은 파스텔 색과 원색이 섞인 알록달록한 옷을, 오스트리아의 건물들은 대체로 모노 톤의 옷을 입고 있었다. 헝가리의 건물들은 체코 쪽에 가까웠는데 원색이 아니라 브릭, 와인 같이 딥하고 명도가 높은 색이라 사뭇 다른 느낌을 줬다.
바닐라-시나몬-오레오 순으로 꽃잎을 만든 장미 아이스크림은 먹자마자 같은 조합으로 하나를 더 먹고 싶을 만큼의 맛있음이었다. 여행의 마지막은 여유롭게 보내고 싶어서 저녁 전까지 카페에나 가 있겠다고 했더니 뜻밖에 G도 동행하겠다고 했다. 가는 길에 자라에 들러 체코에서 봤던 레드 타탄체크 코트를 한번 더 입어보고 두 번째 이별을 맞았다. 아녕, ... ★ 계속 생각날 거야. 하지만 잊기 어려운 사랑을 보내줬으니 새로운 사랑이 찾아오겠지!
저녁을 먹기 전에 남은 포린트를 처리하러 마트에 갔다. '뜨거운 생활'이란 이름의 잡담회를 이 년째 함께 해오고 있는 두 동기에게 줄, 잔뜩 외국스러운 초콜릿을 샀다. 그러고도 초콜릿을 세 개는 더 살 수 있는 돈이 남아 다른 마트에 들렀다가 나이든 계산원의 절제된 친절에 감탄했다. 상대가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선을 지켜주는 무뚝뚝한 다정함.
G가 야경을 본다기에 슬렁슬렁 강가 산책이나 하는 줄 알고 따라나섰다가 걸어서 삼십여 분이 걸리는 어부의 요새에까지 올라갔다. 여행 마지막 날까지 땀을 흘리게 될 줄이야. 그런데 어부의 요새에 올라가서 본 야경보다 돌아오는 길에 세체니 다리 위에서 본 야경이 더 좋았다. 야경은 안전한 느낌을 준다. 불빛의 색도, 늦은 시간에 많은 사람 속에 섞일 수 있는 것도. 자연의 빛이든 인간이 만들어 낸 빛이든, 빛은 언제나 마음을 채운다. 물론, 홀로 빛나려 기를 쓰는 빛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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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연히 삶을 방문했다 / 죽으면 나는 개의 형제로 돌아갈 것이다 / 영혼도 양심도 없이 / 짖기를 멈추고 딱딱하게 굳은 네발짐승의 곁으로 / 그러나 나는 지금 여기 / 인간 형제들과 함께 있다 / 기분 좋은 일은 / 수천수만 개의 따뜻한 맨발들로 이루어진 / 삶이라는 두꺼운 책을 읽을 때에 / 나의 눈동자에 쿵쿵쿵 / 혈색 선명한 발자국들이 찍힌다는 사실 / 나는 왔다 / 태어나기 전부터 들려온 / 기침 소리와 기타 소리를 따라 / 환한 오후에 심장을 별처럼 달고 다닌다는 / 인간에게로, 그런데 / 여기서 잠깐 질문을 던져보자 / 두 개의 심장을 최단거리로 잇는 것은? / 직선? 아니다! / 인간과 인간은 도리 없이 / 도리 없이 끌어안는다 / 사랑의 수학은 아르키메데스의 점을 / 우주에서 배꼽으로 옮겨온다 / 한 가슴에 두 개의 심장을 잉태한다 / 두 개의 별로 광활한 별자리를 잇는다 / 신은 얼마나 많은 도형들을 이어 붙여 / 인간의 영혼을 만들었는지! / 그리하여 나는 지금 여기에 있다 / 인간이기 위하여 / 사랑하기 위하여 / 無에서 無로 가는 도중에 있다는 / 초라한 간이역에 아주 잠깐 머물기 위하여
- 심보선 <지금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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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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