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는 고양이를 따른다

                                                       - 이제니

소멸 직전의 거리를 걷고 있었다
계속 걷다 보면 아마도 그곳에 도착하겠지

한 걸음 앞의 한 걸음이 아름다운 곳
하나하나 풀잎을 엮어 가만가만 풀피리 불던 곳

책장을 넘기면
운명을 예견하는 문장만 튀어나왔다

나는 나의 아버지다
눈물 많은 사람은 눈물 많은 인생을 살게 된다

문장을 읽다가도 울고
사람을 보다가도 울고
타고난 심성이 순백인 사람

순백의 눈밭 위를 검은 열차가 달릴 때
세계의 끝에 다다라서야 알게 된 사실을
수첩에 적어놓고 자물쇠 달린 서랍에 넣어두었다

넘실거릴 때 넘실거릴 때
저 거리의 끝이 보이려고 할 때
죽음 이후를 보듯 꺼내 읽어야 할 문장을

오래전에도 이미 보았지
이후로도 내내 이 거리를 걷게 되리라는 걸

습관 없는 습관을 들이듯이
옷과 꽃을 바꾸고 머리와 미래를 바꾸고
미래와 노래를 바꾸고 노래와 모래를 바꾸고
모래와 이름을 바꾸고 이름과 구름을 바꾸고
구름과 꿈을 바꾸고 꿈과 몸을 바꾸고
몸과 고양이를 바꾸기로 한다

고양이가 고양이를 따르듯이
사람이 사람을 따르듯이

소멸 직전의 문장을 적고 있었다
편대라는 말은 날아가는 비행기를 떠오르게 한다
한 방울에 하나씩 두 방울 구름
사라진다 사라진다 희미해진다 희미해진다

이미 뒤늦은 계절이었다
언제나 언제고 뒤늦은 계절이었다
언제나 언제고 좋은 계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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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기(間節期)

 

                                      - 김경주

 

 

  엄마는 아직도 남의 집에 가면 몰래 그 집 냉장고 안을 훔쳐본다

  그런 날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이유 없이 화를 내던 엄마의

  일기를, 고향에 가면 아직도 훔쳐보고 있다 궁금해지면

  조금 더 사적이게 된다 애정도 없이

 

  내 입술이 네 입술을 떠난다 너는 카페만 가면 몰래 스푼을 훔친다

  우아한 도벽은 엄마의 철자법처럼, 걸인의 차양 모자처럼 생기가 있다

 

  세상의 기사(記事)들은 모두 여행기다 내일이면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특종들,

  사건 뒤에 잊힌 사람들의 이름을 외우고 다닌 적이 있다

  나는 네 가계(家系)에 속해 있다 매일 사라질 가계를 다루고 떠나는

 

  나의 행간은 활기차다 매일 똥을 오래 눈다 이것은 나의 기상에 해당한다

  내 가짜 이름은 너의 기상에 자주 등장한다 나는 네 허영이 마음에 든다

  허영이 없는 사람을 사랑한 적이 없으니, 이불 속으로 들어가 푸딩을 떠먹는

  우리의 입술을 그려본다 예의도 없이

 

  짐승은 발톱을 깎아주면 신경질을 낸다 그렇게 서명은 피해가며 우리는

  침묵 속에서 자주 만난다 삶은 미묘한 차이를 견디는 일이다 수치심도 없이

 

  내가 낳은 혼혈아에게 두근거린다 이름을 지워도 결국 내 아이는 밝혀진다

  이미 나는 이 기상과 별거 중이다 나는 상투적으로 투정하며 살기로 한다

  신경질적으로 그리워지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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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MM 백치 _ 김경주

2014.09.22 01:33

 

 

                                      - 김경주

 

 

들개는 백치일 때

춤을 춘다

 

바다 위

빈 전화박스 하나

떠다닌다

 

절벽에 표류된

등반가

품에서 지도를 꺼낸다

협곡을 후 불어

밀어내고 있다

 

날아가는 협곡들

 

바위가 부었다

조용히

연필을 깎는다

지우개는 면도 중이다

 

햇볕이 서서 졸다가

발밑에서 잠들었다

 

먹물로 그리는

폭우는 하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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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사의 영상 안 보여 줄거야! 정책 때문인지 영상은 더 이상 재생되지 않는다 ㅠㅠ)

 

 

 

미쳤나봐. 뭐야 이거. 하. 다음 규 솔로 앨범에 보사노바 한 곡만 불러주면 소원이 없겠네 정말. 이거 파트 누가 분배해줬어요? 누가 이렇게 기특하게 우리 규한테 1분 49초에 있는 Ah, 줬어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성규야ㅠㅠㅠㅠㅠㅠ 그냥 전곡 영어로 부를 수도 있었을 텐데 앞부분 포르투갈어로 불러주다니. 내가 현지인이었으면 좀 감동했을듯. 아니, 그건 그렇고. 김성규 락만 잘하는 줄 알았더니 이렇게 둥글둥글하게 분위기가 전부인 노래까지 잘 하면, ... 나는, ... ;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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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가는 열매

 

                                      - 김상혁

 

 

다만 종려나무 숲은 우리가 기억하게 될 풍경이었고

나는 맨발로 나무를 차며 내 발등을 내버려 두었다

 

집에 돌아간다는 건 그냥 집으로 걸어가는 것이라고

이런 말은 오십 년 후에도 숲을 한 그루씩 흔들 것이다

 

아무도 하찮은 높이에다 자기를 망치는 슬픔을 달지 않는다

폭우에 창을 열어 둔 검은 방 같은 것을

 

나를 사랑하는 것 같았던 너를 사랑하던 내

젊음이 하루씩 아름다웠다는 이야기를

 

자루 속 다뇨증의 여름이 비틀고 있다

감히 꺼내 보지 못한 많은 잎사귀였을 것

 

더러운 물이 흐르는 자루를 꼭대기에 걸어 둔다

도시에서 열매를 보러 온 노인을 슬프게 하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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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MM 유전 _ 김상혁

2014.01.15 00:18

 

유전

 

                                      - 김상혁

 

 

  어렴풋해 무엇이든

  무척 인상(人相)처럼 보이는 저녁 운동장이었다.

  수탉들이 불쑥 물구나무선 사람 얼굴을 하거나

  바닥에 흘러내린 국기가, 바람 속에서 제 팔만 한 고무 호스를 휘휘 돌리는 아이를 닮았거나 하는 식으로.

  귀신은 제 이름이 기억나지 않을 때만 자기 정체를 안대.

  사육장과 게양대 사이에 앉아서 나는 이 이야기를 지어냈다.

  흔히 돌아보지 말 것과

  사람처럼 보이는 걸 신뢰하지 말 것.

  어둠 속에선 사람도 사람을 악착같이 닮고 있다.

  나는 내력과 조짐은 믿지 않지만

  환절(換節)을 가늠하는 체온과

  작명소에서 일러 준 내 각별한 호칭 정도가

  당장의 실마리였다.

  모든 신기한 일이 내 속에 있다.

 

  우주에서 날아왔다고 여겨지는 돌을 가졌었다. 구멍투성이 그걸 주머니 속에서 만지며 학교에서부터 걸어오면 나는 날이 밝았을 때 스스로 떠올린 새롭고 무서운 별명과 재빨리 비슷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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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MM 홍조 _ 김상혁

2014.01.15 00:15

 

홍조

 

                                      - 김상혁

 

 

  똑같아지려고 교회를 다닙니다 주보로 비행기를 접으면 엄만 속상해하셨지만요 거기 적은 소원은 지킬 만한 비밀 치마를 뜯어 만든 내 바지엔 주머니가 없습니다

 

  붉은 얼굴로 손에 쥘 수 있는 것들만 생각합니다 소문으론 허기를 감추지 못해서요 버짐이 정오 수돗물로부터 집요하게 전염됩니다 아이들은 돌려 말할 줄을 몰라 나를 별명으로 불렀습니다

 

  언 손으로 책장 넘기며 그립던 빼빼한 여름, 종이마다 검은 곳은 내가 넘어진 자리구요 저녁 어스름이 악어 눈을 뜰 때까지 나는 구름 쳐다보는 일을 그만둗지 못했습니다 내색하는 건

 

  무서우니까 오늘 밤에도 기도를 해야지 종일 정글짐이나 오르내리면 아무리 추워도 죽을 만한 겨울은 없고 운동장은 왜 얼지 않을까, 혼자 소매로 모래를 쓸며 궁금합니다 미친 여자 가랑일 봤어, 낄낄대는 소년들 나는 문득 태어난 일이 쑥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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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MM 정체 _ 김상혁

2014.01.15 00:12

 

 

정체

 

                                      - 김상혁

 

 

  내가 죽도록 훔쳐보고 싶은 건 바로 나예요 자기 표정은 자신에게 가장 은밀해요 원치 않는 시점부터 나는 순차적으로 홀홀히 눌어붙어 있네요 아버지가 만삭 어머니 배를 차고 떠났을 때 난 그녀 뱃속에서 나도 모를 표정을 나도 몰래 지었을 거예요 어머니가 그런 아버지 코를 닮은 내 매부리코를 매일 들어 올려 돼지코를 만들 때도 그러다가 후레자식은 어쩔 수 없다며 왼손으로 내 머릴 후려칠 때도 나는 징그럽게 투명한 표정을 지었을 거예요 여자에게 술을 먹기고 나를 그녀 안으로 들이밀었을 때도 다음 날 그 왼손잡이 여자에게 뺨을 맞았을 때도 내가 궁금해한 건 그 순간을 겪는 나의 표정이었어요 은밀하고 신비해요 모든 나를 아무리 잘게 잘라도 단면마다 다른 표정이 보일 테니 나를 훔쳐볼 수만 있다면 눈이 먼 피핑톰(peepingtom)이 소돔 소금기둥이 돼도 좋아요 거기, 거울을 들이밀지 마세요 표정은 보려는 순간 간섭이 생겨요 맑게 훔쳐보지 않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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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정말 좋았다

 

                                      - 김소연

 

 

갑자기 우렁차게 노래를 불렀다

연료가 떨어진 낡은 자동차처럼

 

너는 다음 소절을 우렁차게 이어갔다

행군하듯 씩씩하게 걸었을 거다

 

같은 노래를 하면

같은 입 모양을 갖는다

같은 시간에

같은 길에서

 

모퉁이를 돌면서

같은 말을 동시에 할 수도 있다

"와, 보름달이다!"

같은

 

모퉁이를 돌아도 꿈이 휘지 않는다는 착각을

나누어 가진다

 

땀을 뻘뻘 흘리는 눈사람에게

장갑을 끼워줄 수도 있다

장갑차에게 꽃을 꽂아주듯이

 

가로등이 소등된다

우리의 그림자가 사라진다

저 모퉁이만 돌면 우리, 유령이 되자

담벼락에 기댄 쓰레기봉투에서

도마뱀이 꽃을 물고 기어 나오듯이

 

숨어 있는 것들만 믿기로 한다

병풍 뒤에 숨겨진 시신처럼

우리는 서로의 뒷모습이 된다

정말 정말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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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의 장소

 

                                      - 김소연

 

 

우리가 만난 곳을 생각해

내가 기대어 한숨을 쉬었던 그 벽에서

너는 두 손을 모아 균열에 대고 소원을 말했지

 

나는 오후 세 시에

너는 새벽 세 시에

 

꽃잎을 먹었어요

어차피 더럽게 떨어질 꽃잎이라서요

이렇게 많이 먹었는데 왜 배가 고플까요

 

언 귀를 비빌 때마다 우리가 만난 곳을 자주 생각해

악몽을 피처럼 낭자하게 흘리며 네가 쪽잠을 자던

알 깨진 가로등 같은 몰골로 내가 마중을 나갔던 골목

 

오늘만 좀 재워주세요

기린과 코끼리와 들쥐 그리고 화분 한 개

내 짐은 이게 전부예요

 

새벽 세 시의 네가

오후 세 시의 나를

 

찾아왔던 날을 자꾸자꾸 생각해

언 발을 나무처럼 심어두고 싶었지만

어쩐지 흙에게 미안해져 그만두었어요

 

쓰러져 누운 모든 것들이

이불로 보이던 그 동네를 생각해

쓰러지며 발열하는 별 하나와 불빛 없는 상점들

 

같은 악몽을 사이좋게 꾸던

같은 소원을 사이좋게 버리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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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가 쏟아진다면

 

                                      - 김소연

 

 

나는 먼 곳이 되고 싶다

 

철로 위에 귀를 댄 채

먼 곳의 소리를 듣던 아이의 마음으로

 

더 먼 곳이 되기 위해선 무얼 해야 할까

꿈속이라면 아이가 될 수도 있다

악몽을 꾸게 될 수도 있다

 

몸이 자꾸 나침반 바늘처럼 떨리는 아이가 되어

무슨 잘못을 저질렀을까 봐 괴로워하면서

몸이 자꾸 깃발처럼 펄럭이는 아이가 되어

어리석은 사랑에 빠졌을까 봐 괴로워하면서

 

무녀리로 태어나 열흘을 살다 간

강아지의 마음으로

그 뭉근한 체온을 안고 무덤을 만들러 가는

아이였던 마음으로

 

꿈에서 깨게 될 것이다

 

울지 마, 울지 마

라며 찰싹찰싹 때리던 엄마가 실은

자기가 울고 싶어 그랬다는 걸

알아버린 아이가 될 것이다

 

그럴 때 아이들은 여기에 와서

모르는 사람에게 손을 흔든다

 

꿈이라면 잠깐의 배웅이겠지만

불행히도 꿈은 아니라서 마중을 나온 채

 

그 자리에서 어른이 되어간다

마침내 무엇을 기다리는지 잊은 채로

 

지나가는 기차에 손을 흔들어주는

새까만 아이였던 마음으로

 

지금 나는 지나가는 기차가 되고 싶다

 

목적 없이도 손 흔들어주던 아이들은

어디에고 있다는 걸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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