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거쳐 광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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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을 거쳐 광양에 갔다. 내려가는 길은 무료하고 졸렸다. 아침에 읽을 책 챙긴다는 걸 빠뜨려서 급하게 편의점에서 나일론을 샀는데 안타깝게도 이번 호 나일론은 특히나 읽을거리가 없었다. 전라도가 이렇게 먼 곳이었나. 아빠 회사 때문에 광주에 살던 중학교 때는 친/외할머니 댁에 가야 한다는 이유로 거의 격주로 인천에 올라갔었다. 하긴 그때도 세 시간이 걸렸었지. 멀었고 여전히 멀구나. 지역 감정은 1도 없는데, 전라도는 느껴지는 기운이 별로다. 전주도 그랬고, 이번 광양도 그렇고. 살았던 광주는 여유로우면서도 치열했지만 기저에는 어둠이 깔린 느낌이었다.
노란 택시를 탔다.
역 앞에 있는 분식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떡국을 시키니 아주머니께서 굴과 닭이 들어간다고 했다. 나는 황급히 잠시만요!를 외치고 굴은 빼달라고 했다. 음식에 대한 도전 정신은 제로에 가까워서 앞으로도 초딩 입맛은 개선의 여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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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좋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는데,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으니까 아주 좋습니다. 마음이 좋아요./ 암요.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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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준 ㄱㅅㄲ. 과거의 내가 당신의 에세이집을 읽느라 시간과 감성을 썼다는 게 속상하다. 그 한 권을 읽고 이 사람은 자기에 대한 연민으로 가득해서 글로조차 타인을 힘들게 하는구나, 싶어 다른 책을 찾아 읽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이 사람뿐 아니라 이런 일이 만연해 있었다는 게 더 짜증이 나고 이렇게라도 목소리를 내기 시작해서 또 다행이다. 묻히지 말고 그치지도 말고. 다시는 이런 것들에 문단에 발도 못 붙이게 했으면 좋겠다. 사실 문단이라는 것 자체도 아이러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