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아저씨
나는 분명히 진심으로 말했다. 나는 영어를 지이이인짜 못하니까 나랑 만나면 당신은 정말 지루할 거라고. 그는 괜찮다고 했고 결국 만나서 밥을 먹게 됐다. 만나자마자 나는 다시 한 번 강조했다. 나는 지금 정말 긴장하고 있다고. 영어를 진짜, 테러블하게 못한다고.
- 괜찮을 거야. 그리고 연습하면 더 잘하게 될 거야.
흠.
- 일본 음식은 좋아하면서 스시는 왜 안 좋아하는 거야?
어,... 그건 익지 않아서.
- 아, 날거라서?
응응, 맞아! 아 맞다. 그리고 이거. 주려고 가져왔어.(저번에 자기 추운 거 너무 싫다고 빨리 3월 됐으면 좋겠다고 했던 게 생각나서 뜨거운 생활 핫팩 두 개 챙겨옴)
- 진짜? 와. 진짜 고마워. 뜯어서 붙이면 돼?
아니, 뜯어서 흔들고 주머니에 넣으면 돼.
- 아 그렇구나. 고마워. 맥주 마실래?
아니.
- 진짜?
응
- 진짜 안 마실 거야? 나는 식사할 때 대체로 맥주를 마셔.
음. 나도 마실 수는 있어.
- 그런데 왜 안 마시려고 해?
맛이 없어. 진짜 맛없어.
- 너 진짜 웃기다. ㅋㅋㅋㅋ 너 진짜 어려 보이는데 몇 살이야?
26. 곧 27이 되지. 너는 몇 살인데?
- 몇 살로 보여?
(진심 1도 모르겠어서 대충 얘기함) 30?
- 진짜? 그건 내 희망사항이야! 사실 나는 36살이야. 우리 10살 차이 나네. 일은 언제부터 한 거야?
24살. 그러니까 2년 전부터?
- 학교는 대학을 다녔어 대학교를 다녔어?
대학교! 내가 다녔던 학교는 지하철 역 중에 회기역에 있어.
- 뭘 공부했는데?
국어국문학.
- 오. 그럼 너 한국어 잘 하겠다.
아니야. 왜냐면 한국어는 진짜 어렵거든.
- 아. 맞아. 그거 내가 잘 알지. 어떤 잡지를 만들어?
음. 주로 경제랑 주식 뭐 그런 것들?
- 아 정말? 나는 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했어. (블라블라-못 알아들음) 나는 그리스 사람이야.
아 진짜?
- 응. 내가 어느 나라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미국?
- 오 이런. 나는 그리스 사람이고 그리스에 가족들이 있어. (아사히를 마심)일본 가봤어?
아니.
- 아 진짜? 나는 일본에도 좀 있었어. 그럼 해외 여행은 가봤어?
응, 중국에. 그런데 엄청 오래됐어. 중학교 때.
- 쉬는 날은 뭐해?
여러 가지를 하는데, 일단 자. 가끔 영화관에서 영화도 보고, 친구도 만나고, 맛있는 것도 먹지. 그런데 자는 게 최고야.
- 너 게을러?
응. 나 진짜 게을러. 네 취미는 뭔데?
- 여행다니는 거 좋아하고 나도 자는 거 좋아하고 음, 먹는 거? 운동도 해. 아, 너처럼 추워서 운동을 하는 건 아냐.
아, 이해했어.ㅋㅋ 나는 요가를 좋아해.
- 오, 클래스를 들어?
아니. 집에서 유튜브로 해. 그런데 대학 때는 클래스를 들었었어.
- 아 진짜?(그런데 뭔가 대학 수업으로 이해한 듯했음. 그거 아님.) 여행 좋아해?
잘 모르겠어. 사실 여행을 가 본 적이 많지 않아서 아직 내가 여행을 좋아하는지 안 좋아하는지 모르겠거든.
- 음. 여행을 가고는 싶어?
응! 아, 맞다. 나 내년 2월에 친구랑 대만에 갈 거야.
- 정말? 좋은 계획이야. 나 거기도 가봤어. 거기 음식 진짜 맛있어. 야시장도 좋고. 타이페이에 가?
응, 맞아. 거기 갈 거야.
- 가서 뭐 할 거야?
아직 아무것도 정한 게 없는데.
- 뭐? ㅋㅋㅋ (진심 걱정스런 얼굴로 물어봄) 비행기 표는 예약했어?
응. 그게 다야.
- 맙소사. ㅋㅋㅋㅋㅋㅋ
너는 무슨 일을 해?
- 에너지 관련된 일을 해.
오. 우리 클라이언트 중에 하나도 에너지 관련 회사야. 태양광 에너지.
- 너는 잡지를 만드는데 클라이언트가 있어? 광고주 같은 거야?
음. 그게 아니고. 잠깐만. (단어 검색해서 보여줌)
- 아아, 이해했어. 내가 편의점 같은 데서 살 수 없는 잡지를 만드는 거구나.
응, 맞아. 그리고 그 전에는 나무 관련된 잡지사에서 일했는데, 나무로 만든 가구, 공예품, 건축물 이런 거. 그중에서 나는 나무로 만든 가구에 대한 기사를 썼어.
- 잠깐만, 기사를 썼다고? 너는 에디터라며. 에디터는 기사를 안 쓰지 않아?
아, 한국에서는 에디터가 다 해. 취재도 하고 기사도 쓰고 편집도 해.
- 오, 그럼 넌 저널리스트야?
비슷해.
- (또 겁나 웃음) 그런데 너가 전공하지도 않은 나무나 경제 관련 기사를 쓰는 게 가능해?
그래서 공부를 엄청 해야 돼. 지난달에는 미국 주식에 대한 기사도 썼어.
- (블라블라 - 겁나 못 알아들었는데 그걸 어떻게 썼느냐는 의미인 것 같았음)
클라이언트사에 도와주는 사람이 있었어!
- 아아. 이해했어. 아 맞다. 내가 보여줄 게 있어. 잠깐만 기다려. (매경 페이지를 보여줌) 나 여기서 하는 세미나에서 스피치 했었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 진짜? 와 대단하다! 내가 이렇게 대댄한 사람을 만나고 있다니. 영광이야!
- 맙소사, ㅋㅋㅋ 너 진짜 웃기다, ㅋㅋㅋ (왜. 도대체 왜, 뭐가) 너 혼자 살아?
아니. 부모님이랑.
- 혼자 살고 싶지는 않아?
별로. 왜냐면 혼자 살면 너무 외롭고 돈도 많이 들잖아.
- 그렇지. 집안일도 네가 다 해야돼.
맞아. 그게 제일 끔찍해.
- 너 그럼 집안일 안 해? 엄마가 다 해?
(좀 맞는 말이라 당황) 어, ... 아냐. 나도 해. 어어, 나도 해. 설거지도 하고, ...
- ㅋㅋㅋㅋㅋ 요리 잘 해?
헐. 아니. 진짜 끔찍하게 못해. 내가 만든 건 못 먹어. 그래서 대신 설거지도 하고 아주 가끔 정말 아주아주 가끔이지만 집 청소도 해.
- ㅋㅋㅋㅋ(또 겁나 웃음) 너 진짜 웃기다. 어디 살아?
인천.
- 공항 있는 곳?
응. 그런데 우리집이 공항이랑 가깝지는 않아.
- 잠깐만, 그럼 넌 집이 인천인데 왜 교회를 그렇게 멀리 다녀?
목사님 말씀이 좋아서.
- 어떤데?
늘 약한 사람들에 대해서 말씀하셔.
- 그들을 도와야 한다고?
뭐 그런 거.
- 형제나 자매 있어?
응. 여동생이 있어. 그런데 대전에서 학교를 다녀서 기숙사에서 살아. 아 맞다. 어제 저녁에는 크리스마스 카드를 만들었어.
- (손을 내밈)
오늘은 크리스마스가 아니야.
- 신경 쓰지 마, 농담이었어. 그런데 너 진짜 다정하다. 나는 이번 주 토요일에 그리스에 가서 크리스마스를 보낼 거야. 엄마 집에 가서 푹 쉬고 엄마가 해준 음식도 먹을 거지. 그동안 너무 바쁘게 보냈어.
한국에 다시 돌아와?
- 응. 내년에 와. 삼 주 동안 있어.
휴가야?
- 응.
와. 진짜 길다.(진심 대단하다고 생각했음. 휴가가 3주라니) 엄마 음식은 소울푸드인 것 같아.
- 오, 진짜. 맞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너는 크리스마스에 뭐해?
교회 갔다가 집에 가지. 크리스마스는 가족과 보내야지.
- 그럼 동생도 집에 오겠네?
잘 모르겠네.
- 왜?
친구들이 다 대전에 있으니까?(영어가 짧아서 대충 이런 이유를 댐)
- 남자친구?
아니. 여자친구지.
- 여자친구?
헐. 아니아니, 그냥 평범한 여자친구.
- (겁나 웃음. /시치미/라고 쓰인 소스 통을 집어 듬) 이건 무슨 뜻이야?
그게 일본어로는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 그런데 한국말로 시치미는 모르는 척 한다,는 거야. 시치미를 떼다.(한국말로 말해줌)
- 아 진짜? 오- 너 영어 모르는 척 해줘서 고마워.
헐.
- 너는 남자친구 있어?
없는데.
- 왜?
그러게. 남자들이 다 어딨는지 모르겠어. 남자를 어디서 찾아야 하지?
- (대박 웃음) 교회에는 없어?
없어.
- 왜?
사실 원래 다른 교회를 다니다가 이 교회로 온 지는 1년 정도밖에 안 됐어. 어느날 TV에서 목사님 설교를 들었는데 너무 좋은 거야. 그래서 다니게 됐거든.
- 오. 내가 5월부터 한국에 살았으니까 우리가 만날 운명이었나봐, 운명.
(진심 할 말이 없어서 대충 표정을 지음)
- 마지막 연애는 언제였어?
음. 3년 전?(사실 5년 전인데 뻥침)
- 대학생 때?
응. 그런데 같은 학교는 아니었어.
- 왜 헤어졌는데?
그냥 더는 좋아하지 않아서?
- 그런 게 어딨어. 이유가 뭔데?(이때 쫌 짜증남. 그냥 안 좋아하면 안 좋아하는 거지)
아니 뭐. 나는 걔보다 내 공부나 일이 더 중요했거든.
- 오, ... (뭔가 되게 안타까움? 안쓰러움? 넌 사랑을 모르는구나- 뭐 이런 눈빛으로 한참 쳐다봄)
왜?
- (말 없이 계속 쳐다봐서 나는 내가 뭐 잘못한 줄)
아무래도 너 지금 다시 일하러 사무실로 돌아가야 할 것 같아.
- , ... 음. 그래.(시계를 보더니 일어남. 야근해야 한다고 뭐 비슷한 말을 했었음 처음에)
/외쿡인이랑 밥 먹으면서 대화해 본 건 처음이라 신기해서 적어 놓음. 순서는 아마 기억에 의해 조작됐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