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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ather : 오늘 당신의 날씨는 어떤가요

KNACKHEE 2018. 6. 26.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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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God said, let there be light : and there was light.

 

빛이 있으라. 전시를 통과하는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던 말.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모든 것은 빛으로부터 시작됐다.

 

 

물에 담궜다 탈탈 털어 햇볕에 바싹 말리는 마음.

 

 

분야를 막론하고 덕심은 숨길 의지가 없는 편이라 Maira Svarbova 작가님 작품 옆에서 사진을 찍으려다 광대가 폭발했다. 그런데 이 작가님도 그렇고 올리비아 비 작가님이나 김강희 작가님 등의 인스타를 팔로우하고 있던 상태여서 전시는 인스타 피드를 확대해 놓은 것 같은 느낌을 주기도 했다. 빛덕후라 첫번째 전시 파트는 여지없이 좋았고 안개를 지나 만난 비(rain) 전시 파트에서 빗소리와 비 오는 날의 한기가 더해져 좋았다.

 

전시를 함께한 쓔는 최근 재취를 했다 삼일 만에 그만뒀는데, 상사로 함께 일하게 된 아저씨가 성희롱을 일삼는 사람이란 얘길 듣고 빠르게 결단을 내렸다고 했다. 너무 늦지 않게 알아서 다행이지 싶었다. 만약 계속 다녔으면 다음 달에 둘이 지방 출장을 가게 됐을 거라고 해서 섬찟했다. 먹고살기 힘드네.

 

원래 가려던 음식점이 만석이라 웨이팅을 걸어 놓고 다른 곳을 물색하다 사운즈한남까지 갔다. 이제 시작하는 단계라 그런지 삭막하고 조용했다. 들어간 음식점은 인터넷에서 본 것과 메뉴가 달라 깐부나 가자, 하고 일어났다. 마침 급작스레 비가 쏟아졌고 셔츠 등판과 왼쪽 팔이 모두 흠뻑 젖었다. 깐부에서 안정을 찾고 생블랑도 털어 넣고 나니 젖은 옷을 견뎌볼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되었다. 블랑을 한 잔 더 할까 하다 쓔가 가볍고 좋다며 적극 추천해서 라거를 시켰는데 아주 쓰고 무거웠다. 쓔도 한 입 마셔보더니 자기가 전에 먹은 건 이렇지 않았다고 바꿔달라고 해야 할 것 같대서 급하게 잔을 비우고 됐어! 이제 없다! 하고 외쳤다. 급하게 마셔서 조금 알딸딸해진 기분으로 집에 돌아가는 길엔 별 생각이 들지 않아 초여름밤의 더위도 견딜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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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로디 위에 아이들의 목소리가 레이어 겹쳐지듯 차곡차곡 쌓였다. 소년일 때 만나 잠시 헤어진 지금까지의 시간을 꼭꼭 씹어보려는 것 같았다. 체하지 않게 잘 소화해 내고 앞으로 나아가려고. 치워두는 게 아니라 담아두고 지금까지와 같지만 달라진 삶을 살아내 보려고. 아이가 마지막으로 보고 간,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어둠 속에서 빛을 길어올리면서. 오늘은 짧게 예고된 장마가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