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305-08_EARLY, HAPPY SUGA DAY
20200305
일을 하면 할수록 정말이지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존재하지 않고 각자의 자리를 지켜주는 이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든다. 요즘 그림을 그리지 않게 된 이유중 하나는 빛이라고 생각했던 장면들이 그 힘을 잃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빛이 아니고 배신은 시절이 한다. 애초에 내 생각이 잘못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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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내 자신을 위하여 증언한다면, 내 증언은 참되지 못하다." _ 요한복음 05장 31절(RNKSV)/
/"내가 이 말을 하는 것은, 내가 사람의 증언이 필요해서가 아니다. 그것은 다만 너희로 하여금 구원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_ 요한복음 05장 34절(RNKSV)/
/"나는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지 않는다. 너희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것도, 나는 알고 있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는데, 너희는 나를 영접하지 않는다. 그러나 다른 이가 자기 이름으로 오면 너희는 그를 영접할 것이다. 너희는 서로 영광을 주고받으면서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광은 구하지 않으니,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냐?" _ 요한복음 05장 41절-44절(RNKSV)/
/"너희가 모세를 믿었더라면 나를 믿었을 것이다. 모세가 나를 두고 썼기 때문이다." _ 요한복음 05장 46절(RNKSV)/
/너희가, 더 차지할 곳이 없을 때까지, 집에 집을 더하고 밭에 밭을 늘려 나가, 땅 한 가운데서 홀로 살려고 하였으니, 너희에게 재앙이 닥친다! _ 이사야 05장 08절(RNKSV)/
> 지난주에 만난 M언니에게서 작금의 사람들이 사이비에 빠지는 건 예수나 부처 시대 때처럼 자기들이 그런 역사를 써나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겠느냔 말을 들은 이후로 그런 사람들에게 어떻게 다름을 이야기할 수 있을지가 숙제로 남았다. 요즘 요한복음과 이사야서를 매일 한 장씩 읽고 있는데 오늘은 5장을 읽는 날이었고 그 두 말씀 안에 답이 있었다. 요한복음 05장 31절의 말씀이 사이비와의 가장 큰 차별점이지 아닐까(물론 부활도 있고).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무언가를 하신 적이 없다. 항상 하나님을 드러내려 하셨으며 그분의 뜻을 전하기 위해 애쓰시고 때를 기다리셨다. 그리고 기꺼이 십자가에도 달리셨다. 사람들과 제자들을 모은 것도 자신의 권위나 신성을 인정받기 위함이 아니라 그들이 구원을 받고 영원한 삶을 살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주님께선 이를 위해 사람들을 모아 말씀을 전하시고 이적을 행하셨다.
20200306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먹고 배가 불렀기 때문이다.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일하여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줄 것이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자를 인정하셨기 때문이다." 그들이 예수께 물었다. "우리가 무엇을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됩니까?"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일이다." 그들은 다시 물었다. "우리에게 무슨 표징을 행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보고 당신을 믿게 하시겠습니까? 당신이 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 ' 그는 하늘에서 빵을 내려서, 그들에게 먹게 하셨다' 한 성경 말씀대로,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빵을 내려다 주신 이는 모세가 아니다. 하늘에서 참 빵을 너희에게 주시는 분은 내 아버지시다. 하나님의 빵은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시는 것이다." 그들은 예수께 말하였다. "주님, 그 빵을 언제나 우리에게 주십시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내게로 오는 사람은 결코 주리지 않을 것이요, 나를 믿는 사람은 다시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이미 말한 대로,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않는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사람은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또 내게로 오는 사람은 내가 물리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내가 내 뜻을 행하려고 왔기 때문이다.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내게 주신 사람을 내가 한 사람도 잃어버리지 않고, 마지막 날에 모두 살리는 일이다. 또한 아들을 보고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영생을 얻게 하시는 것이 내 아버지의 뜻이다. 나는 마지막 날에 그들을 살릴 것이다." _ 요한복음 06장 26절-40절(RNKSV)/
> 빵을 먹고 배가 불러 다시 주님을 찾는 건 아닌지 늘 경계해야 한다. 그분은 계속해서 자신이 누구의 일을 하기 위해 세상에 인자로 왔는지 말씀하신다. 그리고 이미 마지막 날을 이야기하고 계신다. 결코 인자의 몸으로 이 땅에서 영원히 함께하실 것을 이야기하지 않으신다.
20200307
영화의 초반, 찬실 님은 "시집은 못 가도 평생 좋아하는 사람들이랑 좋아하는 영화 찍으면서 살 줄 알았는데!"라고 말한다. 나의 미래에 존재할 법한 문장이라 귀에 박혔다. 그렇다고 내가 찬실 님처럼 내 분야의 일이 전부인 듯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니고, 다만 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좋아하는 사람들이랑 일도 하고 차도 마시는 지금의 삶이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항상 있기 때문이었다. 영화의 중간에서 찬실 님은 당장의 상황을 나아지게 할 것 같은 쪽으로 도망치고 싶은 듯 보였다. 썩 자신의 취향이 아닌 데다 기준 미달이기도 한 사람을 적당히 기준을 낮춰 좋아해보려는 마음을 갖기도 한다. 물론 잘 되지 않았고.
생각을 깊이깊이 하던 찬실 님은 영화가 전부였던 삶에서 영화'도' 있는 삶을 살기로 결정한다. 영화 속 찬실 님은 이렇게 말한다. "더 젊었을 땐 내가 좋아하는 일이 나를 꽉 채워줄 줄 알았다." 이야기를 관통하며 그는 깨닫는다. "목이 말라서 꾸는 꿈은 행복이 아니다."라는 걸. '영화'라는 요소가 흑과 백으로 존재할 때는, 외부에 의해 그것이 제거당하자 그는 이내 자기 내부에서도 이를 제거하려 한다. 영화와 관련된 물건들을 모두 내다 버리는 장면은 마치 아무렇게나 살기로 결심한 듯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삶의 범주를 넓히고 그 안에 영화도 넣기로 마음먹은 후의 그는 아무거나 할 수 있는 존재가 된 듯한 느낌이었다. 물론 계속해서 녹록지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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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값 없이 발을 들인 카페는 어둠이 깔릴수록 분위기가 깊어지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일주일 만에 다시 만난 덕메와 오밀조밀한 시간을 보냈다. 애들 생일 핑계로 자주 보니까 좋네.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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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해, 생일.
너의 모든 날에 언제나 초록의 즐거움이 함께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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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들고 간 황인찬 시인의 시집 《사랑을 위한 되풀이》에 수록된 <레몬그라스, 똠얌꿍의 재료>도 함께 읽었다.
똠은 끓인다는 뜻, 얌은 새콤하다는 뜻 / 꿍은 새우 // 레몬그라스는 똠얌꿍의 재료 // 혼자서 먹었어요, 망원동의 골목에서요 // 여름이었고, 밤이었고, 너였고, 무한하게 펼쳐진 나랑은 무관한 별들이었고, 새콤한 게 더운 날에는 딱이니까 // 향긋한 파 같은 레몬그라스 / 쑥갓을 닮은 고수 // 이 시는 겨울에 생각하는 여름밤에 대한 시, / 출출한 밤이 오면 생각나는 시 // 똠은 끓이고, 얌은 새콤하고, 입맛 없을 때 아주 좋은 시, / 놀 거 다 놀고, 먹을 거 다 먹고, 그 다음에 사랑하는 시 // 상상만 해봤어요 // 밖에 눈이 와서요 / 따뜻한 우동 국물이 생각나는 밤이라서요 // 똠은 끓인다는 뜻, 얌은 새콤하다는 뜻 / 꿍은 새우 // 레몬그라스는 똠얌꿍의 재료 // 뜻이 있다고, 없다고, 누가 자꾸 말하고
20200308
이번 주 말씀 / 창세기 05장 25절-27절 "풍성한 삶"
성경은 므두셀라에 대해 세 가지 정보만 서술하고 있다. 언제 태어났고 몇 명의 자식을 낳았고 몇 살에 죽었는지. 성경의 인물 중 가장 오래 산 사람인데 정보는 이게 전부다. 기록될 만한, 기억할 만한 일은 없었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다면 타인을 사랑하는 넓이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깊이가 더해져야 한다. 우리의 관심이 자신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범위에만 좁혀진 삶으로는 가치 있고 풍성한 삶을 살 수 없다. 풍성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을 섬기고, 영원한 의미가 있는 것들에 대한 헌신이 깊어져야 한다. "자기 생명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나를 위해 자기 생명을 버리는 사람은 얻을 것이다.(마태복음 16장 25절/KLB)"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러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덤으로 주실 것이다.(마태복음 06장 33절/KLB)" 세상의 사라질 것들이 아닌, 영원한 것에 삶을 투자할 때 영원한 의미를 찾을 수 있게 된다
예수님께서 바로 풍성한 삶의 선례이시다. ""선생님, 모세의 법 중에 가장 큰 계명은 어느 계명입니까?" 하고 물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여라' 이것이 제일 중요한 계명이다. 그 다음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이다. 모든 율법과 예언자들의 가르침은 이 두 게명에서 나온 것이다."(마태복음 22장 36절-40절/KLB)"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똑바로 서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는 존재로 창조하셨다. 이런 삶을 살지 못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 의도에 못 미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므두셀라의 아버지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다. 그는 죽음의 과정을 거치지 않았고 하나님께서 어느날 그를 데려가셨다. 그런데 므두셀라의 신앙에 대해서는 성경에 기록된 것이 없는 이유는 기록할 만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볼 수도 있다.
우리의 삶이 이기적인 관심으로 좁혀지지 않아야 한다. 믿음과 소망은 이 땅에서 시련과 고난을 만나지 않을 거란 의미가 아니다. 모든 이들은 저마다의 고난과 슬픔을 경험한다. 믿음이 있다고 이런 것에서 제외되지는 않는다. 믿음이 약속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동행하시며 힘을 주시며 어두운 상황에서 소망의 빛을 주실 거란 것이다.
969년의 인생을 산 므두셀라와 33년의 인생을 산 예수님의 인생은 여러 면에서 대조적이다. 예수님은 이 땅의 누구보다도 의미 있는 삶을 사셨다. "그러자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 양식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고 그분의 일을 완성하는 것이다."(요한복음 04장 34절/KLB)" 무엇보다 예수님의 삶에는 하나님에 대한 깊은 헌신이 있었다. "그때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게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음을 당했다가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밝히기 시작하셨다.(마태복음 16장 21절/KLB)" 예수님께서는 계속해서 사명을 상기하시고 미래를 보여주셨다. 삶의 의미와 목적, 영원한 의미를 주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씀하셨던 것이다. "도둑이 오는 것은 양을 훔쳐다가 죽여 없애려는 것뿐이다. 그러나 내가 온 것은 양들이 생명을 얻되 더욱 풍성히 얻도록 하기 위해서이다.(요한복음 10장 10절/KL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