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생각,
요며칠 오른손에 밴드를 붙여서 조금 불편하게 지내고 있다. 불편하네,에 대한 생각은 왜 주로 오른손을 다치지,로 이어졌고 당연하게도 주로 쓰는 손이니까,에 도달했다. 일도 마음도 그렇지. 자주 쓰고 열심히 쓰니까 다치지. 그래도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고여 있는 것보다는 다치고 돌보는 게 낫다.
생각해보면 첫 회사에서는 취업 후 학자금대출 상황 개시 조건에 못 미치는 연봉을 받았다. 서울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학교를 나와서 그런 연봉을 받고 일했다는 게 새삼 어이가 없었다. 그러다 나는 왜 기꺼이 그런 조건을 수락하고 일했는가,로 생각이 이어졌다. 표면적으로는 그렇게 해도 올려 나갈 수 있을 거라는 세상물정 모르는 생각이었고, 사실 그 기저에는 더 멋진 곳에 도전하기에는 좀 두려웠던 게 아닐까 싶다. 내가 지금 선택한 곳이 내가 기꺼이,가 아니라 여기라도,가 될까 봐. 어쩌면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갔던 홍대 앞 미술학원에 등록하지 않은 이유와도 비슷한 것일지 모르겠다. 그때부터 지금껏 두려워서 도전다운 도전은 하지 않은 것일지도. 또 어쩌면 그냥 그만큼의 노력을 할 자신이 없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면 오늘도 수렴하는 생각은, 그래서 이 모양 이 꼴인 건가, 지금.
이건 나의 기질에 있다던 회피와 연관이 있을 수도.
초등학교 4학년 때는 동네 주민 센터 도서관에 거의 매일 출석 도장을 찍었다. 그곳에서는 재미있어 보이는 책들을 손에 잡히는 대로 읽었고 그중 하나가 <찰리와 초콜릿 공장>이었다. 영화 시작과 동시에 울려 퍼지는 티모시의 솜사탕 같은 목소리와 곧이어 등장하는 말갛고 아름다운 얼굴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N차 각. 영화를 보다가 적어둔 대사들을 옮겨 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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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일은 모두 꿈에서 시작됐단다. 그러니 꿈을 잃지 마."
"왜 안 날아갈까?"
"생각해보지 못한 게 아닐까?"
"뭐라고?"
"정말이야. 플라밍고들은 이끌어줄 것이 필요하지."
"칭찬이 과하지만, 사실이에요."
"주머니를 털어 웡카 초콜릿 사세요."
"이 기분이 영원했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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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 중독자 모임을 상상했다. 미드에 나오는 중독자 모임처럼 둥그렇게 모여 앉아 한 명씩 돌아가면서 자신의 중독 썰을 푸는 거지. 저는 뫄뫄고요, (침묵) 중독자입니다. 제가 맛본 최고의 춰컬릿은 일하다 돌아버릴 것 같은 시간인 수요일 오후 세 시에 먹은 블라블라 -. 웡카가 초콜릿 파는 걸 보면서 역시 예나 지금이나 서동요가 짱이고만, 하다가 주머니를 털어 <웡카>를 보고 또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랜만에 영화 속 장면을 그리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웡카 스토어 정말 최고의 팝업이고, 웡카는 최고의 퍼포머. 웡카 이제 보니 진짜 최고의 영웅 서사네. 의지할 사람이 있다는 것만큼 확실한 낙원도 없다. 영화 진짜 행복이었다. 재능과 진심과 자본의 컬래버레이션.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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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곡이 되건 편집이 되건, 상황은 모두의 것이지만 기억만은 내 거다. 그래서 아티스트들에게 기억과 추억이 중요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자기만의 세계를 보여줘야 하는 사람들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