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이 궁금해지는 출발
내가 타인에게 궁금한 것은 '지금'이다.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그래서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러니까 지금, 그 사람만이 이야기해줄 수 있는 것들.
늘 캐릭터의 옷을 입은 상태로만 마주하던 배우들이 인터뷰 형식을 통해 보여주는 자신들의 이야기라는 콘셉트는 정다웠고, AI라는 요즘의 화두를 생각지 못한 분야에서 낚아채 풀어내는 시도는 반짝였다.
전시는 류덕환 배우가 묻고 천우희, 지창욱, 류승룡, 박정민 네 배우가 대답하는 영상을 토대가 되어, 각 배우의 인터뷰 키워드에서 파생된 짧은 연출 영상들로 구성됐다. 배우들은 이 프로젝트에 흔쾌히 참여한 이유에 대해 작품이나 상과가 아닌 배우 개인에 대해 묻고 그들의 지금을 기록해 아카이빙 한다는 측면에서 마음이 동했다고 말했다.
천우희 배우는 기능적으로 변하고 있는 연기 현장과 인간에게 매겨지는 점수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이디어를 시도해볼 겨를도 없이 효율적인 연기를 해야만 하는 빠른 호흡과 일방적인 평가로도 모자라 본인에게 직접 자신에 대한 점수 측정을 요구하는 상황들. 지창욱 배우는 AI의 연기에 대한 물음에 그럼에도 진짜를 보고 싶어 하지 않을까, 하는 답을 내놓았다.
류승룡 배우의 인터뷰에서는 "(영화는 내 것이 아니니까) 책임을 질 수는 없지만 책임감 있게 한다. 협업이고 누군가의 사활이 걸린 것이니까"라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말이자 태도. 이는 곧 옆의 공간에서 <짐진자JIM JIN JA>라는 2분 남짓의 영상 콘텐츠로 이어졌다. 그리고 박정민 배우, 진짜 너무 웃긴 새럼.(<우시사>더 잘 받아보고 있읍미다,...) '예술 호소인ART WANNA-BE'이란 표현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마지막에는 배우들이 인터뷰를 하며 앉아 있었던 르동일 작가의 의자 작품이 놓인 공간에서 직접 작품에 앉아 류덕환 배우의 질문에 답해보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었다. 전시의 맥락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전시 경험이나 마케팅 측면에서 탁월한 기획이라고 생각했다. 또 NFT의 개념을 굿즈에도 차용해 배우마다의 짧은 영상을 물성이 있는 리미티드 에디션 도록의 형태로 소장할 수 있게 한 점도 인상적이었지.
이 전시의 출발은 '기술의 발전으로 많은 것들이 빠르게 대체될 수 있는 시대에 한 사람의 이야기는 대체될 수 없다'는 류덕환 배우의 기획이었다고. 아이 웨이웨이가 <The Guardian>에 기고한 칼럼이 떠올랐다. 그는 AI의 출현이 예술 그 자체에 대한 도전이 될 수 없다고 말하며 반 고흐와 피카소, 렘브란트 등을 예로 들었다. 일부를 이해한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AI의 출현을 예술적 기술 습득의 전통적 이해에 대한 도전으로 볼 수는 있지만, 반 고흐와 피카소, 렘브란트 등의 사례를 보면 그마저도 완벽한 매칭은 아니다. 그들은 계속해서 비슷한, 혹은 같은 것들을 반복해서 그려냈지만 이는 단순한 기술의 습득과 향상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의 성장, 인생 경험, 신념, 감정이라는 렌즈를 통해 예술적 표현을 다듬어 나갔다. 이는 자아 성찰의 과정이며 이러한 내면 세계의 탐험은 용기와 자신감으로 치환돼 삶에 대한 두려움을 걷어내게 해준다. AI가 특정 기술을 대체할 수는 있지만 일몰, 눈보라, 아기의 울음, 노인의 눈물 등의 뉘앙스를 표현하는 데에는 인간보다 서툴지 모른다."
다음이 궁금해지는 출발이었다.
상담에서 얘기를 할수록 나는 유능한 사람, 쓸모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게 선명해졌다. 왜일까, 생각하다 보니 결국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할머니와 따로 살게 되면서부터는 엄마가 어색했다. 시간을 많이 못 보냈으니까. 특히 초등학교 3학년 때는 공부에 재미를 못 붙였는데, 그러니 공부를 하지 않는다고 또 답답하게 군다고 많이 맞았다. 그때는 그저 그 상황이 두렵고 빨리 끝나기만을 바랐는데 지금 와서 보면, 엄마는 나를 미워하나, 하고 생각했던 것 같다. 사실 맞아서 뭐가 나아지는지, 그리고 이게 왜 맞아야 하는 일인지 모른 채로 맞았다. 엄마와 그나마 관계가 괜찮아진 건 내가 성적을 잘 받기 시작했던 때부터였던 것 같다. 4학년 때부터는 공부하는 학원에 다녔는데 학원 가는 게 진짜 좋았다. 집에 안 있어도 되니까. 그리고 학원에서 잘하면 학원에서도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모두 칭찬을 해주니까 열심이 안 해 볼 이유가 없었다. 와중에도 신기한 건 엄마가 한 번도 내가 되고 싶다던 거에 안 된다고 했던 적은 없다는 거다. 부모의 장래 희망에는 언제나 나의 그것과 같은 것이 적혀 있었다. 엄마가 나에게 공부를 강요하기 시작했던 건 엄마가 기자 일을 그만두고 방과 후 논술 선생님으로 일하기 시작했던 시기랑 비슷했던 것 같기도 하고. 자기 생각을 똑바로 말하는 사람이 유능하다고 생각하는 건 엄마한테 혼날 때 맨날 입 꾹 다물고 있다가 더 혼났던 것과도 연관이 있을 듯도 싶다. 신기하게도 중학교 때 가족과 보냈던 그 많은 시간에 대한 기억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어떤 감정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상담 말미에 선생님은 오늘 어린 나를 돌아보며 어떤 감정이 들었는지 물었는데 그냥 혼란스럽기만 할 뿐 별다른 감정은 들지 않았다.
박사까지 이어서 하고 있는 대학원 동기 분이 내가 졸업자 명단에 있는 걸 봤다며 이런 걸 보내줬다. 다정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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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닝머신을 뛰는데 종아리가 당기고 뒤꿈치가 아팠다. 평소 같으면 일단 뛰기 시작했으니 참고 끝까지 뛰거나 아예 그만두거나 둘 중 하나였을 텐데, 이번에는 그러지 않고 잠시 멈춰서 스트레칭을 했다. 걷기와 뛰기와 세 세트로 이루어진 날이라 한 세트가 끝날 때마다 멈춰서 스트레칭을 했고 뛰다가도 자극이 심해지면 속도를 늦춰 달렸다. 그렇게 잠시 멈춰서 스트레칭을 해도 목표 지점에 닿을 수 있었다. 이 경험이 내게는 좀 특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