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 Bossanova,
술이 마시고 싶었다 본문
오늘 새벽에 애들 회식 영상을 보면서 인생 처음으로 술을 마시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회사 사원들 단톡방에 그 새벽에 술 마시자고 난동을 부려 술자리가 성사되는 듯했으나 각자의 사정으로 그러지 못하고 심지어 나는 뜻하지 않게 야근을 했다. 아니 퇴사가 말그대로 내일모레인데, 오늘 오후에 아직 정리할 게 남아 있었다며 200여 명한테 일일이 협회 가입 여부를 체크하고 출연 회차, 금액, 기타 세금 내용을 체크한 파일을 정리하라고 하면, ... 뭐 어떡해. 해야지. 심지어 이 일을 처리하느라 하루에 문자를 200건 넘게 보냈다고 통신사에서 스팸 위험이 있으니 당분간 월 10건으로 무료 문자를 제한한다는 통보도 받았다.
조금 늦은 퇴근을 하고 집에 가는 길에 아쉬워서 편의점에서 크루저를 사 빨대를 꽂았다. 천천히 동네를 산책하면서 술을 먹게 된 것도 겨우 작년이고 술의 맛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도 아닌데 왜 술이 먹고 싶었을까, 를 생각했다. 실은 어제 그 회식 영상에서의 분위기나 주고받은 마음들이 부러웠던 것 같다. 예전엔 술을 빌미로 마음을 터놓는 걸 싫어했는데, 요즘엔 뭐 그렇게라도 터놓을 수 있는 게 어딘가 싶기도 하고. 적당히 마시고 대체로 따뜻해지는 그 분위기가 갖고 싶었던 것 같다. 근데 사실 나는 그런 거 커피 마시고도 잘 하지롱! 낄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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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땐 사랑스러운 W님과 몇주 전 퇴사한 옆팀의 J과장님을 만나 점심을 먹었다. 과장님과는 대화를 해본 게 정말 손에 꼽을 정도이지만 프로 업무러로 칭찬이 자자한 데다 얼굴도 너무 취향이시라서 ㅠㅠ 혼자 흠모하고 있었다. 그냥 그분이 존재하고 있다는 자체로 마음이 든든해지는 그런 느낌이랄까. 그래서 과장님 퇴사하시는 날 장문의 메시지와 예전 대화에서 막걸리를 좋아한다고 하셨던 게 생각나 그에 어울릴 것 같은 약소한 선물을 보냈다. 정말 너무 좋아서 ㅠㅠ 과장님은 그게 너무 뜻밖이라며 밥을 먹자고 해주셔서 성사된 오늘의 점심이 성사됐다. 성덕이 된 기분이라 좋긴 했지만, 예전 직장들을 거치며 일의 특성 때문이기도 했지만 처음 보는 사람하고도 말을 곧잘 하게 됐는데 이곳에 들어온 후론 쭈굴쭈굴하고 눈치보는 게 일상이 돼서 예전에 습득한 것들을 거의 잃은 상태라 조금 걱정이 됐다. 다행히 W님의 합류로 자리를 어렵지 않게 끌고 갈 수 있었다. 퇴사하는 날 어떻게 인사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자 과장님은 어렵겠지만 그래도 잘 마무리하고 나오는 게 좋지 않겠느냐며 이런저런 조언을 해 주셨고 헤어지고 나서는 나만 당당하면 된다는 격려도 더해주셨다. 울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