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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을 했다, 평소보다 긴 시간을 들여서

KNACKHEE 2018. 10. 26. 01:23

아홉수를 앞두고 백수가 돼 떠나는 동유럽 여행_02


시차 적응에 완벽히 실패했다. 이른 세 시 반부터 어설프게 정신이 들다가 네 시 반엔 완전히 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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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 플래시는 너무 밝아서 액정의 조도를 낮추고 QT 책을 펼쳤다. 여행 때마다 챙기는 편은 아닌데 이번에는 꼭 가져가야 할 것만 같았다. 본문 말씀을 읽고 세속적 탐욕으로 가득한 나를 돌아보며, 한순간도 세상에 취하지 않고 깨어 겸손을 구해야만 할 거란 묵상 내용을 적었다. 그러고 나서 두 손을 모았는데 그것들에 취해 내가 나를 궁지로 몰아넣은 삶을 살다가 죽음에 가까워지려 했던 날들이 떠올랐다. 소리 없이 조금, 울었다.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빛을 전하기는커녕 어둠이 돼 사그라들었다. 주신 삶을 소망의 눈으로 보지 못하고 절망하기 바빴다. 이 한 번의 묵상과 회개가 일상을 바꾸어 놓을 거란 기대는 하지 않는다. 분명 나는 같은 수렁과 마주할 테다. 그렇기에 지금은 일단. 생명의 언어를 말하고 살아 있는 돌이 돼 주님의 덕을 전하는 삶을 살 수 있는 믿음을 구했다.





5인 도미토리를 함께 쓰게 된 S와 프라하에서의 실질적인 첫날을 함께하기로 했다. 스물두 살이라기에, 나와 G는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애기이-!' 하고 앓는 소리를 냈다. S는 일 년 휴학계를 내고 반 년 동안 알바를 해 모은 돈을 탕진하러 왔다며 조금 멋쩍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부모님께 손벌리긴 싫었다면서. 기회가 될 때마다 부모에게 더 받지 못했음을 무기로 삼았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S는 한 달은 체코에, 한 달은 터키에 있을 거라고 했다. 얼굴이 낯익어 계속 생각했는데 한창 예쁘던 시절 아라시의 사쿠라이 쇼를 닮았다. (말했더니 다들 오해하던데, 긍정적인 의미다. 중학생  나는  게이오 보이의 팬이었다.) 입고 버리려 가져왔다는 과잠 등판에 K가 보여서 설마, 설마- 하는 마음으로 후드 모자를 들쳤다. 맙소사. 우리 셋은 동문이었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숙소에서 하벨 시장을 지나 구시가 광장을 향해 가는 내내 유럽풍 건물에 감탄하면서도 뭔가 밍숭맹숭한 기분이 들었다. 생활의 공간이었다. 아주 낯설지도, 이질적이지도 않았다. 그냥 볕이 좋은 날, 좋은 사람들과 눈길 닿는 곳마다 아름다움이 잔뜩 묻어나는 곳으로 산책을 하러 온 것 같았다. 평소보다 조금 더 긴 시간을 들여서.





구시가 광장의 비눗방울은 행복이었다. 이게 뭐라고. 같은 사람이 반복해서 만들어 내는 같은 광경을 같은 자리에 서서 몇 번이고 봤다. 질리지도 않아서. 

오후엔  투어에 합류할 예정이었는데 점심을 먹으러 간 곳에서 음식이 늦게 나오는 바람에 불가능한 일정이 돼 버렸다. 크게 마음 쓰지 않고 되는대로 돌아보면 된다는 생각으로 음식을 맞았다. G와 S는 체코 전통 음식이라고 표시된 메뉴를 주문했는데 G의 치즈 프라이드는 정말 치즈 프라이드였고 S의 고기는 카레 소스에 빠져 있었다. 치즈 프라이드는 정말이지 익숙하지 않은 메뉴라 주문을 하면서 웨이터에게 이게 뭐냐고 물었더니 그는 이해가  된다는 투로 "치즈 프라이드." 했다. 마치 어린 장금이가 '홍시 맛이 나서 홍시 하였는데 어찌 홍시 생각하였냐 물으시면,...' 하는 표정으로. 그런 의미였군. 하지만 햄버거는 언제나 실패하지 않지.











카렐교엔 사람이 정말 많았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뷰였다. 온종일 프라하성이 보이는 블타바강 맞은편 벤치에 앉아 있을 수도 있겠다, 고 생각했다. 아름다워서 가만 보고 있기만 해도 좋은, 그런 장면. 하지만 아름다움과 별개로 프라하성까지 가는 길은  언덕이라 도착하자마자 스타벅스를 찾았다. 스타벅스 만세. 사랑해요, 스타벅스. 이곳에서 처음으로 입장료가 있는 화장실을 이용했는데, 영수증을 점원에게 보여주면 토일렛 코인을 준다는 영수증 하단의 문구를 보지 못하고 새로운 경험에 설레하며 20코루나를 기계에 넣었다.

프라하성 앞 광장에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의 독립 100주년을 기리는 재즈 공연이 계속됐다. 음악 문외한이 듣기엔 재즈 같았는데 날이 날인 만큼 체코 민속 음악이었을 수도 있겠단 얘길 S와 나눴다. 남자 보컬의 목소리와 눈빛이 무척 스윗했고 여자 보컬은 모든 제스처가 사랑스러움 그 자체였다. 몇 곡이 끝나도록 한참을 그 앞에  있다 보니 성 내부 입장 시간이 끝나 있었다. 하지만 아직 체코에서의 날들이 많이 남았으니까.







낮에 마음을 밝혀줬던 풍경은 어둠이 깔리자 마음을 감싸줬다. 여행 준비를 하면서 세운 계획은 딱 하나였다. '매일 엽서를 사서 그리운 얼굴들에 편지를 써야지.' 그런데 기대와 달리 엽서를 살 곳이 마땅치 않았고, 구시가 광장으로 가는 길에 겨우 두 장을 샀을 뿐이었다. 그것도 같은 그림으로. 길거리에서 흡연하는 사람들이 가는 곳마다 한 트럭이었는데, 민트 향이 나는 걸 피우는 사람들이 많아 직전 회사에서 수많은 새벽을 함께한 P 생각이 났다.

엽서 사기가 어려운 만큼 노트를 사기도 어려운 곳이었다, 프라하는. 한국에서 마음에 드는 노트를 찾지 못해 결국 빈손으로 비행기에 탑승했기에 해가 저물기 시작하자 전전긍긍하는 마음이 됐다. '오늘 반드시 노트를 사야 해. 핸드폰 메모장으로 더는 버틸  없어!' 조금 절박한 마음으로 들어간 디자인 숍에서 그나마 눈에 차는 갱지 노트를 120코루나, 그러니까 6,000원이나 주고 샀다. 예상외로, 프라하는 문구의 도시가 아니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엔 한 외국인 아저씨가 우리를 향해 '짜란-' 하는 제스처와 함께 "깜쫙이야-!" 하고 소리쳤다. 아, 깜짝이야. 그러고는 이내 장난이었다며, 좋은 저녁을 보내라고 했다. 자신이 '안녕하세요'나 '고맙습니다'가 아니라 무려 '깜짝이야'를 알고 있다는  자랑하고 싶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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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