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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내가 있었다, 열심히 걷기만 하는 본문
아홉수를 앞두고 백수가 돼 떠나는 동유럽 여행_05
타로의 이미지로 익숙한 그림들을 원화 크기로, 그런 미신적인 것과 떼어놓고 보니 무척 아름다웠다. 무하에 대해선 공부를 못 했는데, 공부했던 클림트와 같은 시대 사람이라는 것만으로 이해해 볼 수 있는 요소들이 생겼다. 르네상스의 이성적이고 절제된 기법에 반하는 아르누보 양식은 바로크-로코코 시대의 장식적 화려함을 추구한다고 했던 게 떠올랐다. 그러다 왜 아름다운 여자들을 르네상스의 전형인 고딕 양식 창문에 가둬놨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미간을 좁히다 시각의 차원을 바꿔봤다. 2차원이 아닌 3차원으로 그림을 바라보면 아르누보 양식으로 표현된 여인들은 고딕 양식 창문 바깥, 자연 속에 있는 모습이었다. 자유롭게.
오후 팁 투어까지 시간이 남아 카페를 찾았다. 출국 하루 전, 구독하던 브런치의 한 작가가 프라하의 카페 추천 글을 올렸고 '운명이야!' 하며 그 리스트 중 적어도 한 군데는 가 보리라 마음먹었다. 처음 방문한 곳은 요즘 연남동 인근에 성행하는, 등받이 없는 의자에 작고 낮은 공유 테이블들이 불규칙적으로 놓인 스타일의 카페였는데 만원이라 다른 곳을 찾아야 했다. 안착한 곳은 초록 문의 'Cafe No. 3'. 이곳에 앉아 무하 뮤지엄에서 산 네 장의 엽서 중 P의 싱그러움을 닮은 초록색의 엽서를 꺼내 이번 여행의 첫 번째 편지를 썼다. 이상하게 체코에선 자꾸 P의 얼굴이 그리웠다.
구글맵의 예상 소요 시간을 확인하고 십 분 일찍 출발했는데도 자주 멈춰서 사진을 찍으며 가다 보니 팁 투어 모임 시간에 일이 분 정도 늦었다. 건널목 하나를 남겨두고 막판 스퍼트. 예술의 장소로 활용되는 루돌피눔에 이십여 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가이드는 체코의 국명이 바뀐 시기를 중점으로 전체적인 체코의 역사를 훑고, 이동하며 각 스팟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앱을 통해 신청하는 팁 투어와 달리 오늘 합류한 'RuExp Praha' 팁 투어에는 예약 절차도 정해진 금액도 없었다. 오전/오후로 나눠 정해진 장소와 시간에 맞춰 합류하고 투어 말미에 자신이 느낀 가치만큼의 금액을 내는 방식이었다. 설명이 더는 필요 없다고 느껴지면 이동 중간에 이탈해도 무방한, 자유롭고 자발적인 시스템. 가이드의 유머러스하고 깔끔한 설명에, 앱을 기준 삼아 준비한 팁의 금액이 미안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돌아오는 길엔 숙소 옆 동산에 올라 프라하성 야경을 눈요기 삼아 맥주도 없이 G와 그간 조율이 필요하다고 느꼈던 순간들을 이야기했다. 아마 서로 꽤 많은 마음을 보여줬지만 그보다 더 많은 마음을 속으로 삼켰겠지. 서로 다른 걷는 속도와 보행 스타일이 가장 큰 걸림돌인 것 같아서, 어쨌든 목적지는 같으니 각자의 속도로 가서 만나자, 는 거로 일단락했다. 날 두고 가라. 서로를 살피고 미안한 마음에 배려한다고 했던 언행들이 오해의 소지로 작용하기도 했음을 확인하며 인간관계의 난해함을 새삼 다시 느꼈다.
프라하성이 보이는 뷰는 낮에 봐도 밤에 봐도 질리지 않고 은은하게 아름다웠다. G는 팁 투어로 역사를 알고 나니 이제야 프라하를 사랑할 수 있게 된 것 같은데 오늘이 마지막 밤이라며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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