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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랐다, 이렇게 유쾌한 곳일 줄은

KNACKHEE 2018. 11. 21. 00:53

아홉수를 앞두고 백수가 돼 떠나는 동유럽 여행_12


뜻밖의 기쁨. 내게 헝가리는 그런 곳이었다. 앞의  나라와 달리 아무 정보도 없이 발을 들였고, 발을 동동 구르며 지갑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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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모닝을 먹으러 맥도날드에 갔는데 영어 메뉴판이 없었다. 그림을 짚어가며 주문을  요량으로 카운터에 갔는데 '+200Ft' 파트에 있는 음료, 해시브라운 등이 세트로 추가되는  아니라 각각 200포린트를 내고 추가해야 한다고 해서 일단 후퇴했다. 유로보다 커진 화폐 단위에 잠시 주저했는데 먹고 싶은   시켜도 우리나라 돈으로 삼천  정도밖에  된다는  깨닫고 다시 주문 줄에 합류했다.





중앙시장은 숙소에서 걸어서 십오  정도 거리였고 오늘도 어김없이 날이 좋았다. 여행의  할은 날씨라던데. 럭키!  층엔 식료품 가게가 즐비했고,  층에는 자수 제품을 비롯한 마그네틱, 거울 등의 관광객용 제품들을 팔고 있었다. 이곳에서 선물을 해결해 보겠단 심산으로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열심히 발품을 팔았다.

딱히 사고 싶은  없다는 생각이  즈음 세로줄 무늬의 도자기 컵이 취향을 저격했다. 덩달아 커피, 맥주, 토레타 등 마실  좋아하는 액체 괴물 W 생각이 났다. 수공예품이다 보니 같은  미묘하게  조합이 달라서  개의 컵을 들고 고민하다 주인한테 뭐가  괜찮아 보이는지 물었다. 그는 똑같은  아니냐며 웃고는 하나를 골라줬다. 카드는  된다기에 어제 뽑은 현금을 탕진했다. 룰루.

숙소로 돌아가는 길엔 앞의  나라에서 보지 못했던 대형 문구점을 발견해 소리를 지르며 들어갔다. 물건이 정말 많아서 "와, 문구의 도시는 헝가리였네!" 하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무지 노트  권을 집어 들고 계산대에 줄을  있다가 계산대 옆에 놓인 반짝이 스테들러 사인펜도 집어 들었다. 문구 최고! 문구 좋아!








감기 기운이 있는 G의 상태가 점점  좋아져 숙소에서 쉬게 하고, 숙소로 오는 길에   디자인숍과 카페가 있는 골목에 갔다. 디자인숍에서 정말이지 헝가리는 문구의 도시, 라는  다시 한번 깨달으며 많은 것들을 만지작거리다 내려놓기를 반복했다. 카드 사정을 생각해 엽서  장과 노트  권으로 나와 타협하고 가게를 나오는데 계속 미련이 남았다.

디자인숍 맞은편 카페는 망원동st의, 가장 익숙한 형태의 카페라 정말 기뻤다. 심지어 부다페스트에서는 잠깐 돌아다녔을 뿐인데도 이런 류의 카페가 많이 보여서  자체로 안심이 됐다. 카페의 메뉴가 조금 독특했는데 싱글/더블 에스프레소  하나를 고르고 small milk/big milk/oat milk를 옵션으로 추가하는 식이었다. 사장님이 커피에 대한 자부심이 있는 분인지 테이블에는 'no sugar'가, 메뉴판에는 'no americano, no milk in drip coffee'가 쓰여 있었다. 싱글 에스프레소에 small milk를 추가했고 지금껏 유럽에 와서 마신 커피  가장 맛있었다.

가져간 시집을 이제서야 캐리어에서 꺼냈는데 시집 제목인 『눈앞에 없는 사람』과 테이블에 붙은 'no sugar'가  프레임에 들어오자 왠지 서글퍼졌다. 왜때문에 민슈가 눈앞에 없는 사람이지요? 흑흑. 문구 쇼핑에 맛있는 커피까지 더해져 잔뜩 들뜨는 바람에 눈에  들어오지 않게  시를 두어  읽고 밀린 일기를 썼다. 그런데 여기도 커피   시키고 두어 시간씩 앉아 있는 문화는 아닌지, 책을 읽던 사람도 삼십여  만에 자리를 정리하고 나가서 조금 눈치가 보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시간 반을 버텼고, 일기는 이제야 겨우 빈에 진입했다.







카페에 앉아 있는 내내 디자인숍에서 사지 않고 나온 스탬프 팔찌가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카드 수수료가 별로 안 비싸고, 데려오지 않은 건 돌아와서도 미련이 남더라는 유럽 여행  경험자 B의 조언을 새겨들은 터라 다시 그 아이를 데리러 디자인숍에 갔다.

팔찌는 같은 디자인으로 체인 형태와 링 형태가 있었다. 아까처럼 한참을 고민하다 직원에게 너무 다 사랑스러워서 못 고르겠으니 하나만 골라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난처해다 브랜드 설명부터 시작해 파인애플, 병아리 등이 귀엽다고 했다. 링 형태 중 행성 디자인이 마음에 든다고 하자 착용해 볼 수 있게 해 주면서 이건 잃어버리기 쉬운 형태라 원래 보고 있던 체인 형태를 사는 게 나을 거란 말도 덧붙였다.

그의 최종 픽은 체인 형태의 토끼 디자인 팔찌였다. 예쁜 언니의 픽인데 여부가 있나. 바로 겥. 사는 김에 '인생에서 해봐야  유쾌한 경험 콜렉트 북'  권도 곁들였다. 소장용과 선물용. 탕진잼의 현장이었다. 하지만 후회는 없지!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음악학원과 댄스학원인  같은 곳을 지나치며 부다페스트는 역동적이고 흥이 많은  같네, 하고  그렇듯 단면에 의지한 섣부른 판단을 했다. 옥스퍼드 사전을 종류별로 파는 서점에도 들렀다. 문학 코너에서 『The 1,000 year old Boy』를 한참 만지작대다 일단 놓고 나왔다.   외에도  권을 살펴봤는데, 요즘 미주 유럽  소설에선 일인칭 시점으로 챕터를 나눠 각각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서술하는 형식이 보편적인 것 같았다.









따뜻한 국물로 속을 채우고 배를 타야 감기가 악화되지 않을  같아서 숙소 바로  구글 리뷰어들의 평이 좋았던 레스토랑에 갔다. 직원이 아주 아주 아주 친절했는데 핸드폰으로 자신이 추천하는 메뉴 사진을 보여주기도 했다. 할슈타트에서 오리고기를 맛있게 먹었던 기억에 의존해 직원 추천 메뉴  하나인 오리고기 요리와 체코에서 만난 사람들이 혹평을 아끼지 않았던 굴라쉬를 주문했다. 메뉴 선택은 성공적. 접시를 치워주러 온 직원에게 몇 번이나 당신이 추천한 메뉴가 진짜 맛있었다며 엄지를 들어 보였다. 그는 리액션도 좋았다. 굴라쉬는 본토인 헝가리에서 먹어야 했던 것인지 우려와 달리 정겹게 맛있었다.

계산서를 달라고 하자 직원은 장난스레 웃으며 우리가  머물다 가야 한다고 만류했다. 늦은 일곱  정각에 배를 타야 한다는 말로 그를 재촉해 계산서를 받아내고 거의 뛰다시피  빠른 걸음으로 선착장에 도착했다. 숙소에서는 걸어서   정도. 다시 한번 숙소의 위치에 감탄했다.

프라하성과 카렐교가 주축이  만들어내는 프라하의 '야경.'은 은은하게 빛을 발하는 느낌이었다.  장면을 바라보고 있자면, 차분한 노래를 듣거나 낮엔 미처  꾸지 못했던 꿈을 꾸고 싶어졌다. 그런데 국회의사당과 어부의 요새가 주축이  만들어 내는 부다페스트의 야경은  그대로 '야경!'이었다. 화려하지만 과하지 않았고 웅장하지만 권위적이지 않았다. 힘찬 행진곡을 곁들여   힘을 내서 내일을 살아봐야지, 싶게 만드는 그런.

좋네, 유람선.




아. 오늘의 의상에 관해 이야기해야만 한다. 왠지 부다페스트와 찰떡일  같아서 사놓고  달을 쟁여둔 레드  네이비 체크에 노란색 스티치가 있는 양말을 드디어 개시했다. 거기에 노랑 니트도 맞춰 입었지. 여러분, 오늘의  양말과 니트를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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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