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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07_억울해 했던 마음이 무색해졌다, 자꾸 그림으로 남아서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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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07_억울해 했던 마음이 무색해졌다, 자꾸 그림으로 남아서

KNACKHEE 2019. 4. 12. 22:30

억지로 선보러 나갔는데 이상형을 만난 기분이 이런 걸까 싶은 울산 출장기


울산은 처음이었다. 퇴사를 앞두고 출장으로 울산에 갔다. 생각보다 멀지 않았다. 광명역에서 KTX를 타니 두 시간이 조금 넘게 걸렸다. 짜둔 경로가 없어서 매체 특성상 중심이 돼야 할 외솔 기념관을 중심으로 방문지를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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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에서 외솔 기념관까지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있었다. 종점에서 내려 낯선 동네를 산책하는 기분으로 지도를 보며 걸었다. 매거진들의 동네 특집,에서나 볼 법한 풍경들이 펼쳐져서 취재와는 상관 없는 풍경들을 잔뜩 카메라에 담았다. 그런데 자꾸 동네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라 '이 길이 맞나?'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초행길은 늘 의심 가득한 얼굴로 지나게 된다. 길에 사람도 없어서 물어볼 수도 없고. 일단 가는 수밖에. 그런데 맞더라고. 기념관은 '정말 여기에 있다고?' 싶은 곳에 있었다. 대학 때 혜화동 아파트 단지 안에 있던 현대 시 문학관이 생각나기도 했다. 취재를 위해서 해설사님의 도움을 받았다. 해설사님은 TMT셨다. 아. 나는 시간이 별로 없는데. 너무 친절하셨다.




봄이 오기 전이라 동백이 피지 않은 학성공원에서는 무엇을 봐야 할지 알지 못했다. 일단 꼭대기까지 올라가 전망을 봤다. 태화강 옆으로 오밀조밀 정겨운 마을을 이룬 낮은 건물들 뒤로 건설이 한창인 고층 주상복합단지가 보였다. 곳곳에 역사적인 흔적이 남아 있는 도시인 것 같은데, 이를 지키면서 무언가를 하고 있는 걸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야 할 텐데. 꼭대기엔 화장실 공사가 한창이었다. 작업을 하시던 아저씨가 어디서 왔는지 묻기에 답했더니 멀리서 왔다며 길도 모르는데 차도 없이 어떻게 다니냐고 걱정을 한참 해 주셨다. 자신도 인천에서 일한 적이 있어 인천에 친구들이 꽤 있다며 친근감을 표하셨다. 배가 고파서 어디서 밥을 먹으면 좋을지 추천해 달라고 하니 순두부가 맛있는 곳을 알려주셨다. 하지만 상호명을 기억하는 데는 실패하셨고 말씀해주신 병원을 중심으로 찾으려고 살짝 애를 쓰다가 빠르게 포기했다.




튀김옷이 꿔바로우만큼 쫀득한 치킨남방정식을 촵촵 야무지게 먹고 오는 길에 봐둔 인더스트리얼 인테리어의 카페에 갔다. 싸장님이 마들렌 툴에 까눌레 식감이 느껴지게 구운 땡땡,을 써어비스로 주셨는데 뭐였는지 까먹었다. 커피도 써어비스도 감탄을 자아내는 맛이었다. 싸장님은 호주에서 커피를 공부하고 오신 것 같았다. 원래 다른 사람 카페에서 일하다 더는 남 밑에서 일하고 싶지 않아서 본인 카페를 차리셨다고. 이제 시작 단계라 매출이라든지 앞으로에 대해 말할 단계는 아니지만 지역 상권이 자꾸 죽어가고 있는 건 확실한 것 같다고 말했다.


















기대 이상이었다, 태화강 대나무숲은. 아니 사실 일로 간 거라 기대를 하고 말고 할 마음이 없었는데. 와. 정말 와. 대나무 사이에 서 있으면 바람이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도 옷자락이 움직이는 소리도 아닌, 정말 바람의 소리. 숲의 뒤편에서 빼곡한 대나무 사이로 햇빛에 반짝이는 태화강을 바라보면 꼭 액자에 담긴 그림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해가 저물어 가는 하늘이 시시각각 아름다워서, 생각한 것보다 오랜 시간을 들여 산책을 했다. 오랜만에 좋은 기운을 주는 도시를 만났다. 아무래도. 다시 오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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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