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 Bossanova,

190410-12_그곳에선 매일 다른 바다를 만났다 본문

TEMPERATURE

190410-12_그곳에선 매일 다른 바다를 만났다

KNACKHEE 2019. 4. 12. 22:33

포항에 가기로 했다. G언니를 만나는 것 외엔 아무 이유도 없었다. 그거면 충분하지.

_


포항으로 가는 KTX에서는 물음표와 마주했다. 대학원을 가긴 가야 할 것 같은데 지금 준비하고 있는 과가 맞는지에 대한 물음표가 시작부터 생기더니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일단은 멈춰야 할 시점인 것 같다.











호접지몽. 생각지 못한 근사한 바다를 만났다. 하늘과 땅과 빛바랜 문명이 모두 맞닿아 있었다. 여행에서 혼자 쓰는 숙소는 잠시 온전한 혼자만의 공간을 가져보는 경험을 하게 했다. 사실 조금은 무섭기도 했다. 왜인지 숙소에 신약성경이 있기에 펼쳤다가 마태복음 12장 말씀을 읽었다. 몇몇 구절을 기록해 둔다.


20절 / 상한 갈대를 꺽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몇 번이 아니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신다. 그는 절대 우리를, 나를 포기하지 않으신다.


25절 /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질 것이요, 스스로 분쟁하는 동네나 집마다 서지 못하리라.

>교회 공동체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지금 스스로 분쟁하며 붕괴되고 있다. 이는 어쩌면 우리 내면에 대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28절 /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명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우리에게 임했다.


39절 /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으니라.

>다를 바 없다. 이미 부활의 표적이 있음에도 현실의 불안에 표적을 구한다.


50절 /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하시더라.

>구할 건 표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믿음이다.


그러고는 가방에 넣어 온 유희왕의 시집을 읽었다. <무사>라는 시가 좋아서 또 기록해 둔다.

_


한 아이에 대해 쓰는 시는 앞을 보지 못한다. 우묵한 저물녁 아이가 길을 배워가는 그런 시를 나는 쓰고 있다 아이가 내민 길고 가늘고 하얀 지팡이가 길고 가늘고 하얗게 빛난다 그것을 본 적 없이 아이는 웃는다 나는 아이의 즐거움을 모르겠다고 적는다 아이의 뒤에서 선생은 구령을 붙인다 하나와 둘 사이를 짚고 아이는 넘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나를 불안하게 만든다라고 적은 문장은 지우기로 하지만 여전히 나는 조마조마하다 무엇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것이 깨질 듯 종내 깨져버리지 않고 거기 어둠이 있어 좁고 아득하기 때문이다 그런 것들은 너무 많다 그런 것이 너무 많다 그러나 그들이 돌아오는 길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적지 않기로 한다 나는 그것을 보지 못하였다

_














다음 날은 G언니를 만나 옆 동네의 바다를 보러 갔다. 물결은 질리지도 않았다. 그들은 힘을 내 부서졌다. 맞닿은 채로. 본투비 인싸인 개를 만났는데 개가 배를 정리하는 아저씨 옆에 쓱 가서 치대는 바람에 아저씨가 어이쿠, 놀랐다가 개인 걸 알고 아니 이 녀석- 하고 민망해 하셨던 게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귀여운 장면. 어제의 바다로 돌아와서 맥주를 한 잔 하고 언니가 예약한 멋진 숙소의 바스락거리는 침대로 들어갔다.












어슴푸레한 시야에 밝아지는 바다를 놓고 어슴푸레한 잠을 자는 건 근사한 일이었다. 짐을 챙겨 옆 동네로 가서는 <미성년>을 봤다. 김소진 배우님이 정말 좋았다.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더 빨리 깨달았다. 아무것도 바뀌거나 나아지지 않을 거라는 것을. 지금,을 받아들이는 것밖엔 할 수 있는 게 없음을. 그러고는 생각한 듯하다. 그렇다면 지금,에 자신이 줄 수 있는 마음을 아낌없이 던져 보기로. 돌아가는 날의 바다는 금빛이었다. 매일 다른 바다를 만났다. 바다를 원 없이 보고 간다고 생각하지만 돌아가면 또 원하겠지. 원은 채워지지 않고 자주 그립겠지.

_


1904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