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 Bossanova,
20200426-29_야 오늘은 쪼꼬 케이크 각이다 본문
20200426
이번 주 말씀 / 마태복음 14장 22절-33절 "주께 더 가까이"
우리는 위치를 알려주는 전치사들을 살펴보면 성경을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풍랑이 이는 바다 위에서 어느 곳이 가장 안전할까?
IN ; 풍랑이 일 때 처음 베드로가 있던 곳은 배 안이었다. 가장 확실하고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배 안은 학교, 직장, 경제, 가족 등등 다양한 것으로 대변될 수 있다. 베드로는 배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배에 몸을 묶었을 것이고 배가 뒤집히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했을 것이다. 인생의 풍랑을 맞이했을 때 우리는 우리가 무엇에 의존하고 있고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OUT ; 베드로는 예수님이 있는 곳이 안전하다는 것을 깨닫고 기존에 안전하다고 믿었던 것을 내려놓고 배 밖으로 나가 물 위를 걸었다. 이는 모든 지식과 과학을 초월한 행동이다. 내가 나와야 할 배는 무엇일까?
ON ; 배에서 나와 물 위를 걸을 때는 바로 이것, 이 순간이 진리이며 하나님과 나의 가장 가까운 순간이라고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런 경험의 시기는 오래 가지 않는다.
UNDER ; 마음속에 두려움과 의심이 찾아든 순간 베드로는 물 속으로 가라앉는다. 두려움을 극복하고 믿음으로 배 밖에 나와 물 위를 걸으면서 우리는 이러한 놀랍고 순조로운 체험이 지속되길 바란다. 그렇기에 물 속으로 가라앉은 그 상황이 가장 우리의 마음을 어렵게 할 수도 있다. 그런데 반대로 이 상황이 가장 귀하고 안전한 시간일지도 모른다. 이제 죽었구나, 하면서 누군가 손을 내밀어 건져주기만을 바랄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 오직 주님만이 나를 건져주실 수 있다는 걸 기대하고 의존하게 되는 이때가 가장 안전하다. 본인의 지식과 힘에 의지하는 배 안보다 예수님을 의지하는 배 밖이 더 안전하다. 그런데 그렇게 배 밖으로 나와 물 위를 걸으면서도 여전히 본인의 기대는 내려놓지 못한 상태일 확률이 크다. 자신의 믿음에 대한 보상을 바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물 위보다 예수님밖에 기대할 것이 없는 물 안에 더 안전하다. 현재 내 상태를 가장 잘 나타내주는 전치사는 무엇인가?
TO, TOWARD ; 그런데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보다 더 중요한 것은 '더 가깝게 주님께 나아가고 있는가'이다. 베드로는 IN-OUT-ON-UNDER의 순서를 밟으며 주님께 조금씩 가까이 가고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께선 언제든 손을 내밀어 우릴 구해줄 준비가 되어 있으시다. TO JESUS, TOWARD JESUS. 어디에 있는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디를 향해서 가고 있는가, 이다.
> 어디에 있는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디를 향해서 가고 있는 것이다,라는 말씀을 들으면서 어제 커뮤니티 그룹 리더 언니가 공유해준 김기석 목사님의 직업과 소명에 대한 영상이 떠올랐다. 나는 자주 꿈과 직업적 성취에 대해 생각한다. 최근에는 이 영역에서 두려움 '속에' 있었다. 명확한 최종 목적지를 알고 싶었고 내가 서 있어야 하는 곳에 서 있는 건지 확신할 수 없어서 두려웠다. 그런데 어제의 영상과 오늘의 설교 말씀을 통해서 초점을 '방향'으로 옮겨오니 많은 것들이 뚜렷해지는 느낌이었다. 물론 나는 앞으로도 자주 물에 빠져 허우적대겠지만 지금 잠시 얻게 된 튜브에 감사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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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의 실명을 쓴 일기들을 모두 바꾸고 싶었는데 대학 때부터 6여 년을 무척 가까이 지낸 바람에 검색 결과의 한 페이지를 바꾸다 지쳐서 나가떨어졌다. 못 하겠는데, 이거. A, B, M 등등 친구들의 실명도 바꿔주고 싶은데, ... 불가능할 듯.
2020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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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일 '생명'을 쓰고 있다. 일과 중 그 어디에도 생명이 사용되지 않는 곳이 없다. 그래서 이왕이면 하루의 많은 시간을 사랑하고 감사하는 데에 쓰고 싶은데 잘 안 된다. 자꾸만 절망하고 낙담하고 지겨워하는 데에 생명을 쓴다.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은 생명인데 엄청 허투루 쓰고 있네.
20200428
꿈에 아렘이랑 석찌가 나왔는데 본보 같은 프로그램을 같이 찍는 상황이었다. 배경은 약간 이탈리아 같은 너낌. 전체적으로 스릴러물 같은 긴장감이 흘렀는데 후반부는 그래도 좀 괜찮았다. 두 팀으로 나눠서 배를 탔고 둘과 다른 배를 타서 다른 경로로 가는 바람에 녹조 폭포(폭포라기엔 분수에 가까운)를 봤다. 아이스크림을 사서 숙소로 가니 둘이 있었고 나는 석찌의 손을 조물거리며 저녁에 녹조 폭포를 보러 가지 않겠느냐며 치근덕댔는데 석찌가 그러자, 고 했다. 아렘은 옆에서 그거 인터넷에서 본 적이 있다며 알은 체를 했다. 좋은 꿈을 꿨네.
2020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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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업무를 종료하면서는 생각했다. 아. 오늘 쪼꼬 케이크 각이다. 운동 갔다 파바에 들렀는데 요란한 초코 케이크들 사이에 베이직한 게 딱 하나 남아 있었다. 뒤에 들어온 사람이 케이크 쪽으로 오길래 빠르게 점원을 찾아 케이크를 집어왔다. 아니 사공 핵 많아 진짜. 앞날의 일기들이 무색하게 생명을 분노와 낙담에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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