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 Bossanova,
점심시간에 호다닥 본문
작가의 컬렉션이 전시되어 있는 호기심의 방에서 초면인 그의 세계와 어색한 인사를 나눴다. 앞으로 그의 여정을 따라 가는 배를 몇 번 더 경험하며 시간을 쌓아 나가야 궁금해지는 사이가 될지, 아니면 오늘 첫 항해에서 속수무책이 될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다 잠시 후 만난 <긴 오후의 미행>에서 직감했다. 속수무책이고만. 이렇게나 흥미로운 시선이라니.
<긴 오후의 미행>은 은밀하고 귀여웠다. 1982년부터 1988년에 걸쳐 찍은 사진 연작이었다. 이렇게나 오랜 시간을 들여 풍경을 미행하다니. 무엇이 언제, 어디의 풍경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가 관찰하며 산책했을 긴 오후의 시간을 아무렇게나 상상하며 사진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무척 즐거웠다.
<생각의 바다> 연작 중에서는 그물망을 활용한 작품을 오래 들여다보게 됐다. 은유적이면서도 직관적인 작품. 생각의 그물망은 너무 촘촘해서 한 번 엮기 시작하면 헤어나올 수 없다. 한동안 그렇게 생각을 엮다 보면, 그물망 틈 만큼의 시야밖에 남지 않게 된다. 건져 올려질 수 있는 그물 안에 있지만 익사는 시간 문제.
<시간의 그림> 연작 앞에서는 시간의 초상을 표현했다는 발상 자체에 감탄했다. 시간의 초상이라니! 시간을 회벽에 쌓인 먼지, 즉 흔적으로 풀어낸 작품이라고 했다. 내가 시간의 초상을 표현한다면 무엇을 담게 될까, 생각했다. 이건 시간을 들여 생각해보고 싶다. 마음에 드는 답을 찾아서 올해 크리스마스 카드의 키워드로 사용해도 좋을 테다.
<숨> 연작이 놓인 전시 공간에서는 그 마지막을 흙이 장식하고 있어서 탄식이 흘러 나왔다. 숨이 탄생하고 소멸하는 매개.
<오션> 연작을 보면서는 지금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파주의 어딘가로 호수를 보러 갔던 날이 떠올랐다. 그날 처음으로 물결이 다양한 크기와 모양으로 존재한다는 걸 알았다. 그때는 그걸 보면서 사람의 결에 대해 생각했다. 큰 결은 비슷한 듯 보이지만 사실 작은 결들은 너무 다른 우리에 대해서. 그런데 그 덕에 삶이 좀 더 풍성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 크게 엇나가지 않는 비슷함 안에서 아주 다른 세계들을 나누는 거니까.
전시의 끝무렵에 놓인 <문라이징Ⅲ>와 <지화>는 청아함 그 자체였다.
곳곳에 작가의 동료이자 멘토가 되어 주었던 이들의 이름이 촘촘하게 언급된 것도 인상적이었다. 그동안 놓친 그의 항해 일지를 앞으로 부지런히 따라잡아 봐야지.
자기가 기획하고 실행한 것을 명확하게 설명하는 사람은 그 속은 어떨지 몰라도 겉은 무척 흔들림이 없어 보였다.
업무 때문에 M그룹의 자료를 찾다 보니 의외로 팬들이 직접 만든 콘텐츠가 잘 보이지 않았다. 직찍조차 찾기 어렵더라고. 팬덤의 크기나 코어의 가늠은 팬 콘텐츠로 할 수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거야말로 본진이 준 콘텐츠를 수용해 자기의 시간과 재능과 에너지를 들여 자신만의 방식으로 소화해내는 거니까. 애정은 상대가 주는 것만이 아니라 내 것을 쏟아부었을 때 더 커진다. 그래서 그 애정의 방향이 삐뚤어지지 않게 잘 관리해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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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번째 상담에서는 선에 대해 이야기했다. 언젠가 웹툰에서 본 표현을 빌려 나는 보통 홀케이크를 든 사람이라고 말했다. 또 편해졌을 때 선을 잘 못 보는 편이기도 한데, 첫 회사의 편집장님에게는 그가 편해져 하급자가 상급자에게 사용하기 적절하지 않은 표현을 썼다. 사실 지금 그게 뭔지도 기억이 잘 안 나고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솔직히 그게 그렇게 정색하고 혼낼 일인가 싶긴 하다. 그래서 당시에도 편집장님이 화를 내기 전까지는 그게 실수인 줄 몰랐다. 서로의 선은 아무래도 좀 다를 수밖에 없지. 내가 좀 사회성이 떨어지는 걸 수도 있고, 그냥 이기적인 걸 수도 있고.
나는 언제나 유능한 사람이고 싶었다. 똑같이 살이 쪄도 공부를 잘하면 또래들에게서 받는 놀림의 정도가 좀 달랐다. 나는 유능을 세상을 좀 더 편하고 즐겁게 살 수 있게 해주는 방편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일종의 프리 패스권. 그런데 지난 연말에는 소중한 게 없어서, 소중한 사람이 없어서 유능, 그러니까 그것이 단적으로 드러나는 일에 더 집착하는 건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내 편이 없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선생님은 힘듦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 물었고, 나는 지금은 없다,고 답했다. 엄마나 친구들에게 시도해봤지만 해결도 안 되고 오히려 내가 상처만 받을 뿐이어서 더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게 되었다. 소용이 없다. 그리고 말했을 때 상대의 반응에 따라 내 힘듦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겨지는 것도 싫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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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운동을 하는데 다들 코어를 못 잡아서 흔들리고 포기하고 싶어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자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코어는 불안정한 상황에서 강화되는 거예요." 속으로 이마 탁 쳤지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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