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만에
오늘의 만남을 이야기하려면 어제의 갑작스런 연락을 얘기할 수밖에 없다. 외할머니 댁에 들렀다 집에 가는 지하철 안에서 문득 생각 나서 J오빠한테 연락을 했더니 내일 서울에 온다고 했다. 서운하게 오면서 연락도 안 하냐고 했더니 내가 백수인 걸 몰랐고, 연락했다가 시간이 안 맞아 못 보는 건 좀 그래서 연락을 안 했다고 하기에 사실이든 착한 핑계든 어쨌든 신기한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다.
오늘의 만남에 대해 일기를 쓰면서 제목으로 /6년 만에/를 쓴 것에 대해 얘기하려면 6년 전의 비전 캠프를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여러 교회가 모여 진행되는 수련회였고 무작위적이고 강제적으로 조를 짜 주는 형식이었다. 조원이 7~8명 정도 됐던 것 같은데 그 중 예쁘고 참한 K언니랑 세상 착해보였던 J오빠랑, 동갑이라 계속 붙어 다닌 이름에 /금/자가 들어가는 여자 아이에게 수련회가 끝나고도 나는 계속 치댔다. 어쩌다 보니 동갑이었던 아이와는 연락이 끊겼고 둘만 남아서, K언니와는 1년에 한 번쯤 보는 사이로, J오빠랑은 한 번 꼭 봐야지! 하는 사이로 유지됐다.(둘 다 광주에 산다)
여하튼, 그래서 6년 만에 보는 얼굴인데, 심지어 광주에서 새벽 차를 타고 올라오는 사람인데 늦잠을 자는 바람에 약속 시간에 늦었다.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 하며 빨리 준비해서 가겠다는 내게 오빠는 중간중간 /나도 그 시간 맞춰서 갈게, 빨리 오는 거 아니지?/ /맞춰서 갈 거니까 맘 편히 와ㅋㅋ/ /천천히 와ㅋ 맘 편히 오면 좋겠는데ㅋ/라고 응했다. 진짜 이 오빠가. 말 예쁘게 하는 것 좀 보라며.
오빠는 당연히 내가 음식점을 안내할 거라고 생각했고 나는 오빠가 그래도 서울에 오니까 뭐라도 찾아보지 않을까 싶었다. 나는 종로 나와바리가 아니고 합정 나와바리니까 다음엔 합정에서 보자고 했다. 오는 길에 대충 찾아 본 음식점을 찾아가다가 자신이 없어져서 눈 앞에 보이는 쌀국수집을 제안했는데 정말 좋다며 응해서 한 시름 놨다. 우린 계속 6년 만에 만난 것에 대해서, 그때의 인연이 어쨌든 이어지고 있음에 대해서 신기해했다. 부른 배를 두드리며 뜨거운 햇볕 밑을 걸어 지난번 B가 내게 소개해 준 개화기st 카페로 안내했다. 골목이어서 조금 헷갈려 하다 감을 잡고 씩씩하게 걸어가니 오빠가 내 걸음걸이에서 확신이 느껴졌다며 웃었다. 교생 때와 계약직 교사를 할 때의 느낌이 어떻게 다른지, 어떤 생각의 변화가 있었는지를 묻고 시험 외에 다른 관심사는 무엇인지 물었고 오빠는 성실히 대답해줬다. 무엇보다 여행을 많이 다니고 싶다고 했다. 자신은 여행지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 새로운 문화를 접하고 알아갈 때 가장 큰 기쁨을 느낀다며. 자신이 뭘 할 때 행복한지 아는 사람의 얼굴은 건강해 보였다. 중간에 오빠가 걸려온 친구의 전화를 받으며 존대를 섞어 쓰는 것에 나는 조금 문화 충격을 받았다. 이를 테면, /알았어.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지는 마요/ 하는 식이었다. 남자애들끼리도 저렇게 예쁘게 말을 하다니! 전체적인 대화에서도 말을 너무 예쁘게 하길래 나는 끊임없이 감탄하며 말을 어쩜 그렇게 예쁘게 하냐, 정말 참하다, 하는 진심을 남발했다. 예쁜 말을 들으니 덩달아 기분도 좋더라고.
같이 서울에 온 친구와는 저녁에나 다시 만나기로 했고 나와는 일찍 헤어져야 해서(외할머니 댁에 가야 했다) 오빠 혼자 움직일 예정이었는데, 그 친구도 생각보다 할 게 없었는지 일정이 일찍 끝났다는 연락이 왔다. 뭘 하는 게 좋을지 묻기에 지금 있는 곳에서 거리도 가깝고 개인적으로 무척 좋았던 이중섭 아저씨 전을 추천했다. 친구는 그런 것에 별 관심이 없어서 어떨지 모르겠다며 혼자라도 볼 거라고 긍정의 표시를 했는데, 친구분도 자신이 아는 몇 안 되는 예술가라며 전시 관람 동참의 뜻을 전해왔다. 걷는 게 괜찮은지 묻고 종로에서 덕수궁까지 같이 걸었다. 친구분이 늦으셔서 역 개찰구까지 배웅을 해줬다. 오빠가 너무 짧게 봐서 아쉽다고 계속 아쉬워해서 괜히 정말 너무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나는 계속 계속 손을 흔들다 계단으로 사라졌다.
놓고 싶지 않아 치대게 되는 관계에는 다 이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