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첫 주의 서울은 위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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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휴가를 받아서 원랜 저녁에 보려던 K씨를 낮에 만났다. 세 개의 노선을 타고 경리단길에 갔다. 살치살과 고추참치맛이 나는 스파게티를 배부르게 먹고 목적지인 마얘를 찾아 땡볕을 헤치며 걸었다. 찾아가는 건 어렵지 않았으나 휴가인지 굳게 닫힌 마얘와 마주해야 했다. 너무 더워 실망할 기운도 없었다. 그래서 주저없이 바로 옆에 있던 카페에 들어갔다. 온 몸에 타투를 새겼으나 얼굴과 말투, 커피를 내려주는 행동은 무척이나 순박해 보이는 주인 아저씨가 있는 곳이었다. 나는 카푸치노를 주문했는데 에스프레소를 담은 컵과 우유를 담은 병을 따로 들고 와서는 우리가 앉아 있는 자리에서 바로 라떼아트를 해주셔서 눈이 휘둥그래졌다. 새로운 경험. 카페 한쪽에선 레오 아저씨의 리즈 시절이 담긴 영상이 나오고 있어서 K씨와 얘기하는 중간중간 넋놓고 어린 아저씨를 감상했다. 노래가 무척 크게 나오는 편이었는데 그럼에도 거슬리지 않을 만큼 선곡이 좋았다. 날것 그대로의 시멘트 벽 곳곳에 드라이플라워가 걸려 있어서 타투로 뒤덮인 팔로 부드러운 커피를 제조해 주던 주인 아저씨가 연상됐다. 아저씨는 갑자기 우리에게 각각 꽃다발을 건넸다. 원랜 생화를 드리는데 요즘 꽃시장이 휴가철이라 드라이플라워를 드린다며. 우리는 또 감동했다. 심지어 각자의 꽃다발에 쓰인 문구가 달랐는데 내 것엔 /잘했고 잘해왔고 잘할거야/라고 써 있어서 괜히 울컥, 했다.(사실 꺼야, 라고 써 있었지만)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을 때 자리를 털고 일어나 호기롭게 해방촌에 있는 스토리지북앤필름을 찾아 나섰다. 지도엔 높낮이 표시가 되지 않아서 몰랐는데, 찾아가는 길은 등산 수준의 것이어서 우리는 코너를 돌 때마다 당황했다. 최고의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날에 의도치 않게 등산을 해 가며 찾아갔는데 문은 또 굳게 닫혀 있었다. 8월 첫 주의 서울은 위험하기 짝이 없구나. 여행을 가는 것만큼의 사전조사가 필요한 것이었다. 다시 우리가 아는 해방촌 메인 스트리트에 있는 치읓을 찾아가며 작년 청담동에서 했던 서울투어 2탄을 하고 있는 것 같단 말을 주고받았다. 그만큼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는 뜻. 치읓은 조용히 그러나 한껏 목소리를 내는 공간이었다. 좋았지만, 역시 뜻하지 않은 선물과 한껏 마주했던 사루가 더 좋았다. 나는 K씨에게 사루에 다시 가고 싶다고 말했고 K씨도 동의해주었다.
K씨가 오늘 가장 많이 한 말은 /부럽다/였다. 그래서 집에 가는 길에, 모든 걸 다 잘 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 가을이 되면 짧게라도 여행을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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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씨에게도 말했지만, 요즘 가장 짙게, 자주 하는 생각 중 하나는 /내일 죽을지도 몰라/다. 이전부터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그래, 한 치 앞도 알 수가 없지. 당장 내일 죽을지도 몰라/ 하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는데, 요즘엔 부쩍 그 생각을 더 자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더 열심히 살게 됐다거나, 오늘의 삶에 대한 열정이 가득한 사람이 됐다거나, 그런 건 아니다. 그저 조금 덜 불평하려고 노력할 뿐이다. 그게 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