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ILY LOG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KNACKHEE 2016. 11. 9.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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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 월차를 받아 앞머리도 자르고 영화도 보고 옷도 사러 옆 동네에 갔다. 오늘도 하니 씨를 닮은 언니에게 머리를 맡겼다. 스트라이프 슈트가 완전 취향을 저격해서 마음에 있는 말을 그대로 내뱉었다. 슈트 진짜 예뻐요. 자신은 여자여자한 원피스 같은 거 입으면 부끄러워져서 이런 걸 주로 입는다고 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좀 여성스럽게 입으라고 한다고. 그래서 나는 또 마음의 소리를 밖으로 냈다. 취향이 중요하죠 뭐, 하고. 지난 번 나눴던 대화들도 기억해줘서 좀 놀랐다. 앞머리를 자르고 영화 시작까지 시간이 남아 교보에 갔다가 옆 문구 매장에 크리스마스가 와 있어서 담아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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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메뉴라 도전한 투썸의 피스타치오 라떼에선 감기약 맛이 났다. 맛있을 줄 알고 라지로 주문했는데. 아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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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은 무슨 내용인지도 모른채 포스터가 너무 포근했고 또 좋아해 마지않는 미야자키 아오이 씨가 나온다기에 무작정 보러 갔다. 영화는 죽음에 대해 이야기했다. 남자주인공은 자신의 마지막 날이 언제인지 알게 되고 /악마/로 가장해 자신을 찾아온 자신의 내면과 마주한다. 악마는 거래를 제안한다. 목숨을 하루씩 연장해주는 대신 자신이 세상에서 없애고 싶은 걸 없애겠다고. 남자주인공은 어영부영 제안을 수락한다. 가장 처음은 퇴근 후에도 남자주인공을 괴롭히던 전화기. 그 다음은 목숨을 유지하는 데 하등 쓸모 없어 보이는 영화. 그리고는 사람들을 시간에 쫓기게 만드는 시계. 마지막은 고양이. 처음엔 별 생각이 없던 남자는 전화가 사라지고 영화가 사라지면서 그로 인해 과거에 맺었던 자신의 소중한 인연들과 그 기억들이 모두 사라지는 것에 자괴감을 느낀다. 고양이가 사라진 세상까지 경험한 후엔 악마와 다시 마주한다. 사실 너는 악마가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죽고 싶지 않은 마음의 발현인 것이 아니냐고. 네 덕분에 나의 마지막 날을 알게 됐고 또 덕분에 삶을 정리할 시간을 얻었으니 그걸로도 괜찮은 것 같다고. 네가 그런 제안을 했던 덕분에 삶이 얼마나 소중한 것들로 가득 차 있는지 알게 됐다고. 그러니 고양이는 없애지 말자고. 사라졌던 모든 것들은 다시 제 자리에서 존재하게 되고 남자는 마음의 정리를 하며 아버지에게 전할 유서를 적어 내려간다. 결국 죽음과 동시에 삶에 대해 이야기했다.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모두 잃고 유지하는 삶과 조금 일찍 마무리해야 하지만 소중한 것들을 곁에 둘 수 있는 삶. 꼭 앞에 둔 것이 /죽음/이 아니어도 자주 화두가 되는 선택지인 것 같다. 영화는 중심이 하나로 모이지 않고 다소 산만한 느낌이었지만 그래도 좋았던 건 죽음을 다루는 방식이 대부분의 우리나라 영화처럼 /울어라/가 아니었다는 거다. 무척이나 일상적이고 담담하게 그려낸 죽음이 좋았다. 요즘 히사이시 조 아저씨의 에세이를 읽으면서 영화 음악을 비롯한 영상 음악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는데, 이 영화에 쓰인 음악들은 노골적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아서 또 좋았다. 기억하기로는 마지막 남자가 자신의 유서를 내레이션으로 읽어나갈 때는 왈츠의 느낌이 나는 음악이 흘러나왔던 것 같다. 주제를 다루는 방식도 곁들이는 음악도 노골적이지 않아서 속이 편안한 저염식을 먹은 느낌이었다. 아, 미야자키 아오이 씨는 여전히 예뻤다. 정유미 씨 같은 느낌. 정말 러블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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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충동구매. 시계는 스와치지. 사진엔 제대로 안 잡혔는데 펄이 들어가 있어서 굉장히 오묘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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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도 우리나라지만 미국은 어쩌려고, ... 지구가 멸망하려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