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ILY LOG
신비한 동물 사전, 라라랜드
KNACKHEE
2016. 12. 9.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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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는 신비한 동물 사전을 조조로 보고 바로 이어서 라라랜드를 보는 것이었다. 그러고 나서 점심을 먹는 완벽한 계획. 하지만 눈을 뜨니 아홉 시. 나를 너무 과대평가했다. 그래도 아홉 시면 선방했다 싶어 부지런히 씻고 집을 나섰다. 모닝 라테(나에게는)와 함께 본 신동사는 샷을 하나만 넣은 라테 만큼이나 밋밋했지만 에디의 얼굴과 너드미가 모든 걸 상쇄했다. 텀을 줄이기 위해 라라랜드는 아이맥스로 봤다. 아이맥스는 처음이라 예매하면서 매표소 직원에게 가격 말고 다른 게 뭐냐며 너무 입체적이진 않으냐며 꼬치꼬치 캐묻고도 불안한 마음이었다. 하지만 이게 신의 한 수였다. 이왕이면 라라랜드는 다음에도 아이맥스로 보는 걸로.
오랜만에 어떤 스토리 때문이 아니라 직관적으로 다가오는 아름다움 그 자체 때문에 울고 싶었다. 서로를 알아보지 못했던 겨울, 서로의 심지를 간질이며 초를 켰던 봄, 꺼지지 않을 것만 같았던 여름을 지나 여러 가지가 어그러지고 사그라지는 가을이 왔다. 모든 것이 떨어지는 그 가을의 한가운데서도 다음 봄을 위한 씨앗이 낙엽 밑에 있음을 알려줘서 안심했다. 인고의 겨울을 거쳐 둘의 사이는 내면적으로는 견고해졌만 표면적으로는 각자 다른 봄을 맞았다. 마지막 세바스찬의 피아노 연주는 먹먹했지만 그럼에도 서로의 개화를 응원하는 것만 같아서, 통속적이지 않은 해피엔딩이라 좋았다. 아마 별그대였던 것 같다. 두 주인공만 행복해지는 해피엔딩이 얼마나 잔인한 것인지를 인지했던 게. 그 뒤로는 그런 해피엔딩을 마주할 때마다 좋으면서도 불편한 양가의 감정이 들었다. 또, 어쨌든 세바스찬이 원하던 재즈바를 차리고 미아가 배우가 됐기에 해피엔딩인 것 역시 아니었다. 서로를 향해 있던 감정과 신뢰 그 자체가 해피엔딩이었다고 생각한다. 타인의 서사를 보면서 처음으로 나의 서사를 생각했다. 좋은 서사를 쌓아올리고 싶다. 삶으로,
또 보러 가야지.
또 보러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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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도착한 녹색광선. 커피보다는 핫코코가 어울릴 것 같아서 핫코코를 주문하고 마호가니에 자리를 잡았다. 기존 도레도레에서 이전/리뉴얼을 한 후로 처음 가는 건데 적당히 어두운 조명이 내는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다만 사람이 많이 조금 소란하고 습한 게 흠이라면 흠. 책에 대해서는 거의 무지한 상태에서 딴짓의세상이라는 브랜드 네임만 믿고 펀딩을 한 건데 캐릭터들이 모두 귀여워서 우려했던 것보다 즐겁게 읽고 있다. 역시 믿고 보는 딴짓의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