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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아 쓰는 크리스마스 바이브

KNACKHEE 2019. 12. 17. 23:00

*몰아 쓰는 크리스마스 바이브

I AM SO ME. AND I AM NOTHING.

 

예루살렘아, 이 고난을 경고로 받아들여라. 그렇지 않으면, 나의 마음이 너에게서 떠나갈 것이다. 그래도 받아들이지 않으면, 내가 너를 황무지로 만들고, 아무도 살 수 없는 땅이 되게 하겠다. _ 예레미야 06장 08절 / 예루살렘에 대한 경고지만 사람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 하나님이 떠난 사람의 마음은 황폐해져서 그 마음에 아무도 살 수 없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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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동이 있는 라인을 몇 번씩 왔다 갔다 하면서 우리 집이 왜 사라졌지? 하고 생각했다. 뒤로 가 볼 생각은 전혀 하지도 못했다. 머리가 너무 굳었다, 지금.

 

일 년 내내 크리스마스를 기다리고 크리스마스가 끝나는 순간 다음 크리스마스를 기다린다. 뭘 특별히 하는 것도 없으면서 그냥 그 분위기가 좋아서. 기독교 집안에서 자란 것도 한 몫 했겠지. 1년 중 가장 큰 축제의 느낌이다. 한국의 명절들이 가족 모임의 느낌이라면 크리스마스는 정말 축제. 서로를 위해 선물을 고르고 카드를 쓰고 애써 기꺼운 마음으로 얼굴을 보려고 하는 그런 축제. 모두가 조금씩 평소보다 마음이 들뜨고 풀어지는 것도 좋다. 올해는 희망에 대해서 많이 생각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 카드에는 희망과 세렌디피티를 담았다.

대개 내가 받고도 좋을 것 같은 마음을 준다. 그렇다고 그 마음을 돌려받아야 한다는 건 아니다. 내가 주는 마음은 그런 것에서 비롯된 것임을 얘기하는 거다. 그리고 사실 사사로운 마음이기도 하다. 밥 먹을 때인데 마침 때에 맞춰 배도 고프면, 신나서 메뉴를 고르게 되지 않나. 겨우 그 정도의 마음일 때도 있다. 그러니까 부담스러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네. 가끔 부담을 내비치는 사람들을 마주할 때면 내가 또 내 방식대로만 마음을 줬나 싶어 아차, 싶기도 하다. 누군가의 마음을 받아주는 게 생각보다 더 쉽지 않은 일이구나 싶어 기쁜 얼굴로 마음을 받아준 사람들에게 새삼 고맙고. 배경의 역할을 하고 싶다고 우아하게 말했지만 실은 매번 마음을 구걸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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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에게 말해줘야지. 꽤 오래 전 끝난, 결혼을 생각했던 그 연애도, 지금 당장 네가 아주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지는 않은 것도 모두 실패가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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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하기 위해 침대를 보면서 옷을 갈아입다가 퇴근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윤기의 돈은 벌어야죠, 일은 해야됩니다, 가 생각났다. 돈도 벌고 일은 해야 하고 일이 좋기도 하지만 출퇴근은 난 반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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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맞다. 크리스마스에 뭐 할 거냐며언- 그날 신으려고 아직 개시 안 한 크리스마스 양말 신고 예배 드리러 갈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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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TV 앞을 지나가다 비연예인의 사연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에서 그 여자랑 닮은 사람이 나오는 걸 보고 나도 모르게 서 있던 자리에 그대로 굳었다. 심장이 너무 강한 세기로 뛰었다. 나는 그 여자가 멀쩡한 사람인 척하면서 사는 걸 다시 볼 준비가 아직 안 된 듯하다.

 

 

 

*이번 주에 대박 졸아서 대신 기록하는 지난주 말씀 / 누가복음 10장 25절-37절 "내 이웃이 되어줄래요?"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지 않는 건 불가능하다. LOVE GOD, LOVE YOUR NEIGHBOR. THEN, WHO ARE MY NEIGHBOR? 우리는 왜 이웃을 제한하는가? 강도당한 사람을 그냥 지나친 제사장과 레위인을 그냥 나쁜 사람,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안타깝게도 그들은 바쁘고 신경 쓸 여력이 없었던 것일 수도 있다. 그들은 생각했을 테다. 저 사람의 어려움이 해결됐으면 좋겠지만, NOT US, NOT NOW, NOT HERE. 사마리아인은 혼혈종족으로 가장 낮은 대우를 받던 사람들이다. 이 단어를 입에 올리기조차 꺼릴 정도로. 하지만 예수님은 사마리아인과 이웃을 같은 문장에 사용하셨다. 누구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긍휼,을 느끼는지가 중요하다.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으며 값없이 사랑을 베푸는. 이웃을 위해 내가 손해를 보기도 하고 내 일정을 포기해야 하기도 한다. 이 마음을 주시는 건 하나님이시다. 이웃이 되는 데엔 대가가 클 수도 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일은 절대, 결코, 값싸지 않다. 이웃과 나누고 나면 내가 지키고자 하는 것을 잃을까 걱정이 되기도 할 테다. 하지만 우리가 타인의 필요를 채워줄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실 것을 믿어야 한다. 그 신뢰가 필요하다. 모든 인류가 우리의 이웃이다. 모든 사람은 공허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채워진 사랑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