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315-17_어떡해 너무 재미있겠다
20200315
벌써 재작년의 일이 된 동유럽 여행기를 다시 읽으며 먼 곳의 아름다움을 떠올리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요즘 코비드19 때문에 주일 예배를 온라인으로 드리고 있는데, 예배 초반에는 자꾸 딴짓을 하기도 하며 집중을 하지 못했다. 마음의 문제였겠지. 찬양 시간의 말미에는 다른 사람이 보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있는 환경과 상관없이 언제라도 예배자가 될 수 있길 구하는 마음을 주셨다. 그렇게 예배자의 마음과 자리를 쌓아 내 삶 자체가 자연스럽게 예배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오후에는 창밖에서 검은 연기가 보였다. 공장이 있는 방향이 아니었다. 몇 년 전 해운대에서 봤던 화재 연기가 떠올랐다. 잠시 후 졸업한 고등학교 인근에 있는 산에서 산불이 났단 알림이 왔다. 바람이 너무 거세서 걱정했는데 인명 피해 없이 진압된 것 같았다. 시국 때문에 학교에 있던 학생들도 없었던 듯하고. 다행이네.
이번 주말은 정말 침대와 한 몸인 채로 보냈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게으르게 지냈다. 주일이 끝나갈 즈음엔 이런 주말을 계속 누리려면 평일의 내가 좀 더 부지런져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릿속을 소진하는 것도 채우는 것도 모두 평일에 끝내야 한다. 그런데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사실 자신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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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말씀 / 누가복음 06장 12절 "기도로의 부르심"
성경은 항상 기도로의 초대를 열어준다. 우리는 기도로의 부르심을 받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기도 생활에서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우선 기도할 장소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방해 없이 하나님과 이야기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이 시간을 소홀히하면 삶에 힘과 활력이 사라지고 주님이 우리를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일을 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얼마나 오래 기도해야 할지 알아야 한다. 제자와 사도는 다르다. 제자는 배우는 사람이고 사도는 훈련을 거쳐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다. 기도의 길이보다는 그 강도와 진정성이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누구에게 기도해야 할지 알아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셨다. 예수님이 아니고서는 하나님께 나아갈 방법이 없다.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고 문을 열어 기도의 도달을 가능하게 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기도해야 한다.
20200316
인쇄 상태가 완벽하지 않은 것을 금요일에 전화로 보고하지 않고 메모를 남겨놔서 오늘 오후에야 발견하게 했다며, 이건 책임 회피로 보인다며 화를 냈다. 여러 사람의 의견을 종합했을 때 괜찮다는 판단이 돼서 그랬던 건데 그런 말을 들으니 정말 내가 그런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얘길 들은 대리님들은 별일 아니니 괜히 신경쓸 거 없다고 격려해줬다. 그러고 보면 이 책을 어쨌거나 끝낼 수 있었던 데에는 대리님들의 응원이 컸다. 쉬운 책이라며 일 쉽게 하는 취급을 받을 때도 대리님들은 세상에 안 어렵고 안 힘든 책이 어딨냐고 해주며 안 봐도 잘될 거라고 말해주곤 했다. 대리님들이 아니었으면 이곳에서의 나는 진작에 쪼그라들어 지금보다 더 자주 도망을 생각했을 테다. 그럼에도 사실 마음이 괴로웠는데 이내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이 나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하는 편을 선택하기로 결정했다. 사실 쉽지는 않아서 작게 소리내서 말해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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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기 때문에 나를 믿는 사람은 어둠 속에서 살지 않을 것이다 _ 요한복음 12장 46절(KLB)/
> 이런 이해가 괜찮은 건지 모르겠지만, 빛 속에서 그 빛을 따라 살려고 하기 때문에 오히려 약한 모습과 때론 추한 죄의 모습도 더 잘 드러나는 게 아닐까. 세상은 그 드러난 것을 두고 손가락질 하지만 중심이 잡히고 제대로 나아가고 있는 상태에서 드러난 것들은 더러움을 씻겨내는 과정일 수도 있지 않을까. 빛 속에 있는 사람들은 다시 어둠으로 돌아가려 하지 않을 테니까. 아, 물론 극명한 추악함들을 옹호할 생각은 전혀 없다. 또 언론에 드러날 만큼의 추악함이 아니더라도 종교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개인의 이기를 알고 있다. 내게도 그런 면이 있고. 종교가 어떤 이기의 타협점이 되지 않도록 경계해야함은 분명하다.
20200317
온라인으로 강의를 듣는 첫날이었고, 앞으로의 배움이 너무 재미있을 것 같아 잔뜩 설렜다. 어떡해. 너무 재미있겠다! 그런데 요즘엔 이런 생각이 든다. 예전에는 앞선 세대의 일잘러 집단이 부러웠고 동시에 그럼 나는 내 또래 일잘러 집단에 소속돼야지! 싶었는데 이젠 그마저도 늦어버린 것 같다는, 그런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