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417-18_좋고 얼떨떨했다
20200417
A언니한테 갑자기 전화가 왔다. 갑자기 내가 생각났다면서. 언니는 보통 어떤 것을 보고 연상 작용이 일어나 누군가를 떠올리게 되는데 오늘 독서실에서 나오면서는 정말 아무 맥락도 없이 내가 생각났다고 했다. 기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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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뜨생 발제자인 밍이 선정한 전염병과 관련한 책을 부랴부랴 읽었다. 원래는 3월 말에 만났어야 했는데 거리두기가 심화된 시즌이라 만나지 못했고 밍은 그렇다면 뉴스레터로 대신해보겠다고 했다. 일정이 불투명해지면서 앞부분만 읽고 좀 미뤄뒀었는데 이번 주에 뉴스레터를 보내겠다는 말에 서둘러 마저 읽었다. 역사적 전환점의 곳곳에 전염병이 등장했고 이를 계기로 어떤 악습 같은 것이 완전히 말소되는 경우도 있었다. 전염병은 물론 일어나지 않으면 가장 좋을 일이지만, 이를 계기로 귀찮거나 당시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미뤄왔던 것이 진행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20200428 _ 밍의 뉴스레터에 대해 보낸 답장
뜨거운 친구들 안녕!
서른두 번째 뜨거운 생활은 정말 생각지 못한 방법으로 진행이 되었네요. 상황에 맞춰 인터넷 문명을 활용하면서도 아날로그적인 방법을 사용했다는 점이 무척 뜨생스럽다고 생각했어요. 책은 친구들의 말대로 술술 읽혔어요! 저의 감상은 다음과 같습니다.
#기생충은 원래 모욕적인 뜻이 아니었다(p.13)
이 대목이 흥미로웠습니다. 그저 기생 미생물일 뿐이었는데 인간의 어떠한 행위, 상황과 맞물리면서 모욕적인 뜻을 갖게 된 거잖아요. 역시 인간이 제일 해로워. (? ㅋㅋㅋ
#인류 사회를 바꾼 유행병(p.15)
우리가 카톡방에서 이야기했던 '뉴 노멀'이 떠올랐습니다. 밍이 뉴스레터에서 정리해줬듯이 인류 사회에서 균은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을 변화시키는 결정적인 요인이었더군요. 요즘 '뉴 노멀'이란 단어가 범용되고 남용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구나 싶었습니다.
#양날의 검, 현대 문명(p.20)
범유행병이나 자연재해로 인간 사회가 얼마나 쉽게 부서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는 대목입니다. 이번 코비드19 사태를 통과하며 현대 문명이 한 순간에 멈출 수 있다는 걸 경험하게 된 것 같아요. 우리나라가 방역에서 선방한 것은 기존 감염병들을 거치며 방역 체제를 정비했기 때문인 것도 있지만 미국이나 유럽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서비스업보다는 제조업이 여전히 강세이기 때문이라는 기사를 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또 현대 문명 덕분에 물리적 거리를 두면서도 연결돼 있을 수 있었고 집에서도 많은 것을 즐길 수 있기도 했어요. 그래서 양날의 검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전염병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p.31)
역병으로 봉건사회가 붕괴된 자리에 자본주의의 싹이 돋고, 노동력이 감소하며 농민들의 지위가 향상됐다는 대목입니다. 어떤 것은 전염병으로 인해 기존의 것이 거의 말소 상태에 다다라야만 지체하고 있던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 듯합니다. 사실 재택근무라든지 원격수업이라든지 이런 이야기들은 우리가 초등학교 때부터 교과서를 통해 접해왔던 것입니다. 우리가 대학교에 갈 때쯤이면 이것이 보편적인 상황일 것이라고 배웠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지요. 그런데 이번 코비드19 사태를 거치며 할 수 있는데 굳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서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던 것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EBS는 LG의 도움을 받아 한 달 만에 온라인 수업 시스템을 구축하기도 했잖아요. 인류사의 역사적 전환점과 범유행병의 관계를 곰곰이 생각해보게 되는 지점이었습니다.
#코비드19 이후의 예술과 라이프트렌드(p.32)
페스트 이후에 나라마다 자국어가 번창하고 염세주의적 예술양식이 성행했다는 대목입니다. 이 부분을 읽으며 코비드19 이후에는 어떤 예술 양식과 라이프트렌드가 일어나게 될지 궁금해졌습니다. 우리는 큰 일을 겪은 후 늘 그래왔던 것처럼 염세주의적인 무언가를 지향하게 될까요? 아니면 오히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니 현재를 더 사랑하고 즐기자는 식의 바이브가 형성되게 될까요? 아니면 이런 일이 또 발발해 집 밖으로 나갈 수 없게 됐을 때를 대비해 집을 생활에 더 최적화된 공간으로 꾸미고, 자신이 있을 곳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더 빠른 경제적 자유를 지향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될 수도 있을까요? 어떨 것 같나요?
#쥐!(p.33)
과거에도 쥐에 의한 범유행병을 겪은 것이잖아요. 그런데 의학 실험에서 쥐를 사용한다는 게 이질적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냥 그렇다고요, ... 하핫.
#공중위생 수준의 향상(p.64, 73)
지금과 같은 공중위생이 확립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는 대목입니다. 코비드19는 전세계적으로 참담한 상황을 연출했지만 조금 이기적인 마음으로는 사람들이 손을 더 열심히 씻고, 공공장소에서 마스크를 써서 불쾌한 냄새 특히 아저씨들의 담배 냄새가 차단되는 등의 상태는 무척 좋았습니다. 그런데 정말 인간이 지금 수준의 위생 개념을 갖추게된 게 불과 250여 년 전이라는 건 충격이었습니다. 인간이 제 구실을 하게 된 건 정말이지 얼마 되지 않았군요.
#전염병과 가난(p.77)
가난한 나라에서는 여전히 오염된 식수 등으로 전염병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대목입니다. 넷플릭스에서 본 <인사이드 빌 게이츠>라는 다큐가 생각났습니다. 그 다큐에서 그는 아프리카 지역에 현재 선진국과 같이 거대한 정수 처리 시설을 갖추는 건 너무 오래 걸리고 그곳에선 계속해서 생존의 사투가 벌어지고 있으니 빠르게 설치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나가는 모습이 나옵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부를 누린 사람 중 한 명인 그가 자신의 마지막 업으로 어떻게 보면 사회 환원과도 같은 개념의 일을 선택했다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는 다큐의 초반에 다음과 같은 멘트를 합니다. "뭐, 제가 뭐라도 할 수 있는 건 혁신 기반의 사업이 유일해서요. 리더십과 선견지명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는 일들을 위험 수준으로 밀어붙이길 좋아하죠." 그와 같은 리더들이 많이 생기면 세계는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요? 더 나은 방향,으로 가는 길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지도 생각했습니다. 사실 뭐든 너무 미미할 것 같지만, 내가 매일 사용하고 있는 나의 '생명'을 사랑과 감사에 사용할 수 있으면, 이런 생각을 하는 개인들이 늘어난다면 조금 희망을 가져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요즘에는 '생명'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제가 밥을 먹고 일을 하고 친구들을 만나고 하는 모든 과정엔 저의 생명이 쓰이고 있더라고요.
#질병의 이미지(p.80)
폐렴과 낭만주의가 겹친 대목입니다. 얼마 전 들은 수업에서 문학이나 드라마 등에서 각 질병을 어떤 이미지로 다루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재미있을 거라는 얘길 들었던 터라 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책에서처럼 폐렴은 낭만적이고 아련하게 그려지는 경향이 있는 듯하네요. 암은 치열한 사투의 이미지로 자주 접했던 것 같고요. 백혈병은 주로 아이의 성숙함과 부모의 미안함을 다루는 소재로 사용되는 듯합니다. 이 외에 클리셰처럼 사용되는 질병의 이미지에는 또 무엇이 있을까요?
#재주는 이타심이 넘고 돈은 부의 욕망이 받는다(p.122)
이타적인 의도로 의료계의 돌파구를 개척해도 달성은 더 많은 부를 갖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 의해 이뤄졌다는 대목이 흥미로웠습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붉은 여왕과의 달리기를 하고 누군가는 그 달리기를 관전하며 돈을 벌겠네요.
밍이 추가로 정리해준 공중보건에 대한 내용도 잘 받아보았습니다. 덕분에 책 속의 이야기 대부분이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다음 만남 때 밍이 정리해준 부분에 대해 더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탱의 발제 시작 전에 이야기를 나눠보아도 좋겠어요!
20200418








요즘 상태가 썩 좋지만은 않은 데다 적절치 못하게도 결혼한 혹은 결혼할 친구들에 대한 서운함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라 최상의 마음으로 응한 만남은 아니었는데 세월이 쌓인 친구를 만나니 준비한 마음이 어떻든 함께하는 시간은 편하고 즐거웠다. 짧게 봄날의 산책을 하기도 했는데 걷기엔 너무 정신이 없는 상권이라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역 반대편으로 넘어가 조용한 주택가를 걸으면서야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센세는 자기가 공부하던 때를 떠올리며 골랐다며 이것저것을 봉투에 담아 건넸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이런 거! 우리는 원래 분기에 한 번 정도 봤던 것 같은데 센세는 헤어지면서 다음 달에 또 보자, 고 했다. 왜냐고 묻고 싶었지만 뭐 굳이, 싶어서 그냥 혼자의 생각으로 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