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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31-0801_응, 여름 휴가는 안 가고 신라호텔은 가

KNACKHEE 2020. 8. 1. 15:36

 

 

OOTD IS CARR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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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에 후다닥, 회사 근처 작은 갤러리에서 진행 중인 허연화 작가님의 개인전을 보고 왔다. 작은 공간 가득 서로 다른 '물'이 있었다. 물 속에서도 호흡이 편해서, 도록을 사지 않을 수 없었다. 근처 카페에서 요기를 하면서는 생각했다. 잠깐 올라온 기운을 내 것, 내 에너지의 평균값으로 여기지 말아야겠다고. 에너지의 바닥을 경험하고 나니 힘을 내는 것조차 온전히 나의 영역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여름이 되면 '휴가는 어디로 가요? 휴가 계획 있어요?' 등의 질문을 자주 받는데, 이번에는 그럴 때마다 '아, 휴가 계획은 특별히 없고, 그냥 퇴근하고 친구랑 신라호텔에서 하루 호캉스 하기로 했어요!' 하고 답했다. 여기서 중요한 건 '호캉스'가 아니라 '신라호텔 호캉스'다. 낄낄. B가 수영장 불포함으로 뜬 특가를 잡았고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적절한 크기의 창을 통해 보이는 남산뷰는 이게 뭐라고 자꾸 눈이 갔고, 침구는 기분탓인지 그동안 묵었던 어떤 호텔보다 사용감이 좋았다. 한 달도 더 지난 생일을 챙겨주겠다고 이것저것을 챙겨온 B에게 고마워서 호기롭게 룸서비스는 내가 담당하겠다고 했다. 룰루. B와 알고 지낸 건 10년이지만 함께 밤을 보내는 건 처음이어서 어떨까 싶기도 했는데 어색이고 나발이고 맨날 만날 때마다 막차 시간을 초조해하며 마음 불편해하던 상황을 반복하지 않아도 돼서 너무, 너어어어무 좋았다.

 

 

 

나오는 길에는 폭우가 내려 우산을 써도 소용이 없었고 아이보리 색이던 컨버스는 모래색이 됐다. 산 지 일주일 만에 세탁을 맡겨야 하는 상황에 처해버렸지. 커피라도 한잔할까 해서 태극당에 들어가 앉아 있으니 비가 잦아들어서 배신감이 느껴졌다. 그래도 빗속에서도 아하하하하, 하는 명랑한 B와 함께여서 기분이 아주 최악은 아니었다. 아니 원래는 옷 젖는 거 진짜 싫어하거든. 집에서도 대체로 양말을 신고 있는데 욕실 슬리퍼를 신었다가 양말이 젖는 건 자주 있는 일이면서도 그럴 때마다 자주 화가 난다. 창가를 바라보며 앉아서 돈이 좋다고, 다음에 또 방 잡아서 놀자는 얘기를 한참 하다가 B를 데리러 온 그의 남자친구와 짧게 인사를 하고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게, 다음에 또 방 잡아서 놀면 좋겠다. 지하철 안에서는 결국 외로울 수밖에 없는 거라면 그 끝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사실 안다. 이 생각에 진심이지 않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