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ILY LOG

한 잔 두 잔 끝

KNACKHEE 2020. 11. 6. 21:23

 

 

말을 하는 중간에 문득 문득 스스로가 놀랄 정도로 말을 진짜 많이 했다. 신이 많이 났네. M이 자기는 얼마 전부터 10시면 기절이래서 봤더니 9시부터는 눈이 감기기 시작했다. 하는 수 없이 일찍 자리를 파하고 집에 가는데 내내 아쉬워서 어쩔 줄 모르겠는 기분이었다. 집 근처에 괜찮은 바 하나만 있었으면 좋겠다. 동네 친구도 있으면 더 좋고. 아니 정말 너무 아쉬워서. 그런데 이래놓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씻고 빨래 분류해서 착착 망에 넣고 아- 역시 이불 속이 최고네- 하긴 했다. 요즘엔 정말 나의 집이 갖고 싶다. 내가 틀고 싶은 노래 틀어놓고 만나고 싶은 친구들이랑 각자 마시고 싶은 거 마시면서 미친 과자 파티하려고. 얘기하다 핸드폰 보다 얘기하다 졸음이 코끝까지 차면 알아서 씻고 푹신한 지점들 찾아서 자고. 그랬으면 좋겠네.

M을 만난 장소는 정말 마음에 쏙 들었는데, M이 약속 장소 변경을 제안하면서 어제 왔다가 보자마자 내가 좋아할 것 같은 분위기여서 같이 가고 싶은 데가 있다고 한 게 더 마음에 들었다. 정말 감동이지. 나를 떠올려주다니.

 

 

 

동네 애옹이 박스 집에 누군가 쥐 인형을 갖다 놓았다. 다정해. 최근에는 신체적 고통에 대한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것 같단 생각을 했다. 병 같은 거. 덕메는 윤기의 수술 소식을 듣고 아주 걱정하는 듯 보였다. 그런데 나는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된 것에 놀랐을 뿐 큰 걱정이 되지는 않았다. 기사에서도 수술이 잘 끝났다고 했으니까. 거기까지였다. 아, 그동안 영 좋지 않은 상태에서 강행군을 했구나, 그래도 수술이 잘 됐다니 다행이네. 끝. 돌이켜보면 대체로 그랬다. 내 경험의 범위가 너무 작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영역의 차이인 것 같기도 하다. 감정적인 부분에 대한, 특히 불안이나 슬픔, 우울, 피로 등에 대한 공감 능력은 좋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저 소식보다 언젠가 P 언니에게서 슈가가 촬영 현장에서 아이돌 이후를 고민하며 스태프들에게 업계의 일에 대해 진지하게 물으며 얘길 나누더란 말을 들었을 때, 공식적인 자리에서조차 피로한 얼굴과 감정을 숨기지 못했을 때, 무대 위 슈가라는 자아를 제외한 존재는 무엇인지 혼란스러웠다는 인터뷰를 봤을 때 그 아이를 걱정하며 닿지도 않을 마음을 썼다. 지금의 나에게는 신체의 무덤보다도, 마음의 무덤이 더 중요하고 두려워서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