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ILY LOG

자꾸 시절을 뺏긴다

KNACKHEE 2020. 11. 7. 17:05

 

 

가을의 어디쯤 와 있는 건지 가늠도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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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머니가 뇌졸중으로 쓰러진 지 두 계절 정도가 지났고 재활병원에 계시다가 기관 사람들이 너무 불친절하니 집에 가고 싶다는 약간의 억지에 일단은 퇴원을 하신다고 했다. 솔직히 처음 쓰러지셨다고 했을 때부터 큰 감정의 동요는 없었다. 나이가 많으시고 삶보다는 죽음에 가까운 게 사실이니까. 그런데 엄마는 나에게 자신만큼의 감정적 동요와 마음 씀씀이를 기대하는 듯했다. 나는 그걸 줄 수 없다. 그리고 이미 딸이 셋이나 있는데 나까지 보탤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고. 이런 생각이나 하는 나는 도대체 뭐가 문젠가 싶기도 하다.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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ㅈㅂㅂ의 성범죄 소식을 접했고 대학 내내 듣던 ㄱㅇㅂㅎ 노래와 덕질 중인 방탄, 두밧두의 몇몇 곡들은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다. 자꾸 시절의 플레이리스트들을 뺏긴다. XY들은 대체 뭐가 문제인 건가. 근 3-4년 사이에 각 분야의 숨겨져 있던 성범죄자들이 수면 위로 떠올랐고 여러 곡의 노래와 좋아하는 드라마와 글들을 잃었다. 도무지 창작자와 창작물을 별개의 것을 볼 수 없다. 그래서 요즘엔 인디 뮤지션 음악을 디깅하다가도 XY의 것은 부러 들어보지 않는다. 일단 지금은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싶다. 시절을 빼앗기는 건 속상하지만, 그래도 예전보단 유명인들이 처벌을 받는 케이스가 많아지고 있는 건 긍정적인 변화이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