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한국화의 매력



센세의 신혼집은 극강의 미니멀리즘이었고 센세는 간 맞추기 천재였으며 옆에서 본 안양역 입구는 꼭 9와 3/4 승강장 같았다.






장욱진 작가의 <모기장>은 그림 자체가 너무 귀여웠다. 미국에 바스키아가 있다면 한국엔 장욱진이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아닌가. 이중섭 아조씨려나. 무튼, 작가의 작품 전체적으로 가족들이 집 안에서 보호받는 형태로 있는 게 좋았다. <집>의 오른편 위쪽에 있는 건 꼭 낮달 같았다. 그 그림에서 유독 눈에 띄는 부분이었는데 한 바퀴를 돌고 다시 두 번째 전시장으로 오니 그림 안에 낮달이 있는 것들이 꽤 많았다. 작가가 노년에 그린 <밤과 노인>, <닭과 아이> 등을 보면서는 샤갈의 그림을 떠올리기도 했다. 한 그림의 위쪽 중앙에서 타오르고 있던 태양은 꼭 그림 안에 있는 대상을 향한 작가의 마음처럼 느껴졌다. 집, 가족, 길이 등장하는 그림에서는 주로 부모가 집 안에 있고 아이는 길 위에 있었다. 보편적인 위치이기도 하지만, 자식을 길에 내놓아 나아가게 하려는 마음도 담겨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그리고 그 아이는 언제든 부모가 있는 집으로 돌아올 수 있다. 작가의 많은 그림에 까치가 등장했다. 그는 어떤 좋은 소식을 이다지도 간절히 듣고 싶었던 것일까. 두 번째 전시 공간은 천장의 모양이 집 같아서 <집, 가족, 자연 그리고 장욱진>이라는 전시의 타이틀과 썩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전시를 보면서 '그림을 사고 싶다'는 마음이 든 건 처음이었다.
요즘 한국화들을 접하면서 알게 된 그것의 매력은 현실 초밀착 리얼리티라는 것이다. 꼭 K발라드 가사를 그림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

케이채 님의 전시는 색의 원더랜드가 있다면 여기일까, 싶을 정도로 강렬한 색들이 시선을 끌었다. 무엇보다 노르웨이 숲을 찍은 작품에서는(맞는지 모르겠네. 여하튼 북유럽의 숲이었던 것 같은데) 사진 속 공간의 공기와 바람이 느껴지는 것 같은, 사진 속에 들어가 숨을 쉬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다운타우너는 그냥 지나칠 수 없고,

워. 소ㅑ이니 뮤비 색감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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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에 대리님, 과장님과 우리 때 학교의 불합리한 규칙과 태도들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과장님이 이런 맥락의 말을 했다. "사실 체벌을 못하게 돼서 애들을 컨트롤하기 어려워졌다고 하는데 그건 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원래 그러면 안 되는 건데 그렇게 함으로써 쉽게 갔던 거지 않나." 아. 나는 눈이 번쩍 뜨이는 기분이었다. 폭력은 게으름의 산물이었던 거다. 다른 방법이 없는 것이 아니라, 가장 효과가 좋은 방법인 것이 아니라, 그저 가장 쉬운 방법이었을 뿐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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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의사생활>을 이제야 보고 있다. 정워니 몸 너무 좋고요, ... 낄낄. 신원호 피디와 이우정 작가의 드라마가 즐거운 이유 중 하나는 중장년, 노년 층들을 단순한 배경으로만 세워두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응답하라 시리즈에서도 그렇고 여기서도 그렇고. 주인공들의 부모 세대에게도 각자의 이야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