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ILY LOG

2008년 가요대전 같았던 전시

KNACKHEE 2021. 2. 20. 19:18

문인과 예인. 글과 삽화. 그렇게 어울렸을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작품을 보는 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너무 즐거워서! 2008년의 가요대전과 같은 전시였다. 그땐 지금과 달리 파인아트와 일러스트의 경계가 더 모호해서였을지도 모르겠지만, 작가들이 작품 활동을 하면서 잡지와 같은 상업 작품에 참여한 것도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그건 잡지를 만들던 사람들이 다 내로라 하는 작가들이었기 때문이었을지도. 게다가 그들과 인간적인 교류까지 있었으니까. 같이 작품을 하는 사람들이므로 상업의 세계이면서도 그들의 작품 세계를 존중했을 테고. 오늘날에도 그 영역이 충족되면 파인아트 작가들을 상업의 세계로 불러올 수 있을까? 또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글도 쓰고 글을 쓰는 사람이 그림도 그리는 것을 보면서는 글과 그림의 밀접함에 대해 생각했다. 각자의 작품을 더 잘 표현하기 위한 방법으로 서로의 것을 선택한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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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출판계를 떠나서 아쉽거나 미련이 남지는 않느냐는 질문을 받았고 나는 머리를 거치지 않은 채로 아니요,라는 답을 내놨다. 그러고는 놀라서 횡설수설했다. 내가 어떤 말이나 반응을 얼마나 거름망 없이 하는 사람이냐면, 대학 때 동아리 모임에서만 나를 마주했던 후배는 졸업 후 다시 만난 자리에서 '저는 언니가 너무 가벼운 사람인 것처럼 보여서 별로 안 좋아했어요. 그래서 이런 진지한 얘기들을 나누게 돼서 좀 놀랐어요'라고 말했을 정도다. 가벼운 이미지인 것은 좋지만 여전히 말이 어려운 건 좀 문제다.
여하튼, 그런 식으로 항상 대충 뱉고 나서 후회하며 며칠 동안 하고 싶었던 말을 곱씹는 편이라. 이번에도 그 질문을 다시 주워서 생각했다. 나는 왜 그 이별에 미련이 남지 않는 거지. 그동안 회사에서는 늘 사람이 어려웠는데 이번엔 일이 어려웠다. 일단 책 한 권을 만드는 데 기획부터 발간까지 최소 1년이 걸린다. 그 긴 업무 호흡이 나와는 잘 맞지 않았다. 또 '원래 틀에 맞춰야지'가 강한 분위기라 나는 어느 순간부터 생각하기를 그만뒀다. 그냥 기존의 것을 답습하고 오너의 취향에 맞춰 어려움 없이 빨리 작업을 끝내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작년 가을에 그런 상태의 나를 발견하고는 정말 놀랐다. 다른 건 몰라도 그건 안될 것 같았다. 그런데 사실 다 핑계고, 능력이 안 됐다. 그래서 진심으로, 책을 만드는 모든 분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다른 것보다 이제 정말 책을 '좋아하는 것'으로만 대할 수 있다는 기쁨도 미련 없음에 한 몫 했다. 그런데 내가 그 판으로 돌아가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긴 하다. 정말이지 단언할 수 없는 일이다. 죽기 전까지 완전한 끝은 없고 나는 종이를 좋아하니까. 물론 내가 가고 싶다고 갈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리고 어쩌면 내가 큰 개념의 무언가를 바꾼다고 생각했으면 일곱 번의 이직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업종과 직장이 바뀌어도 언제나 내 정체정은 누군가의 흥미로운 경험과 단단한 사유를 발견해 글이라는 수단으로 전하는 사람이었다. 잡지사와 사보회사, 엔터에선 그걸 담는 그릇이 정기간행물이었던 거고 홍보 에이전시에서는 웹진과 블로그 포스팅이었고 출판사에서는 단행본이었을 뿐이다. 여기서는 그 그릇이 일단은 뉴스레터와 홈페이지이고 운이 좋다면 유튜브와 잡지로까지 확장될 수도 있을 거다. 솔직히 어디로 가고 있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을 하고 있다. 일단 하고 수습하는 삶을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