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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실한 마음과 성실한 노력

KNACKHEE 2021. 11. 13. 22:33

국현에서 박수근 작가의 개인전을 개최한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아니 너무 뜻밖이잖아.
작품만큼이나 눈길을 사로잡은 건 그의 '성실함'이었다. 정규 교육 없이 독학을 하며 만들어낸 여러 권의 꼼꼼한 스크랩북과 노트, 같은 장면을 스케치에서부터 채색까지 여러 번 반복해서 그린 작품들 사이를 지나며 '역시 그냥 되는 건 없다'는 걸 곱씹었다. 요즘 이 생각에 꽂혀 있는데, 너무나도 쉽게 타인의 화려한 단면만을 보고 오르락내리락하는 내 마음을 다잡고 싶어서 그렇다. 전시의 중간에 만난 '절실한 마음과 성실한 노력'이란 표현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것도 같은 맥락이고.
두 번째 전시 공간 입구에서는 세 개의 조명은 그림에, 한 개의 조명은 설명판에 닿아 있는 걸 발견했다. 이런 섬세함이라니. 특히 설명판에 오차 없이 닿아 있는 조명을 잘 기록해두고 싶었는데, 사진으로는 담아내기가 어려웠다. 그렇다면 이렇게 문자로 기록해두는 수밖에. 어두운 공간에서 그림에만 빛이 닿자 그림 특유의 색상 덕분인지 꼭 뒷면에서 불이 들어오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설명판에서 소장처를 확인하는 것도 재미있는 관람 포인트였다. 꽤 많은 수의 출처가 故 이건희 님 컬렉션이었다. 오늘날의 '거장'으로 불리는 이들이 당대 잡지 표지나 사보 삽화 등의 커미션 작업을 했다는 지점은 지난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전 이후로 꾸준히 흥미롭고. 작가가 연하장에 쓴 문장은 단정하게 다정해서 나도 이번 크리스마스 카드에 빌려 써야지, 싶었다. 아, 전시 덕분에 '마티에르'라는 용어도 배웠는데, 이는 회화의 '조형성'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