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해볼 수 있을지도 몰라
영화관에서 광고 티저를 본 순간부터 '저건 영화관에서 봐야 해!' 했던 <디어 에반 핸슨>을 봤다. 영화에서 가장 먼저 일어나는 '사건'은 코너의 죽음이었다. 이를 필두로 이야기가 전개되기 시작했음에도 나는 내내 그 사건에 생각이 머물렀다. 코너는 어떻게 죽을 수 있었을까. 어떤 방법으로 죽었을까.
영화에서는 '내가 너의 이야기를 들어줄게'라는 메시지를 전했고, 나는 그 앞에서 또 속절없이 무너졌다. 이게 방탄의 노래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마케팅에서 <라라랜드> 제작진만 부각이 돼서 엔딩 크레딧에서 감독 이름을 보고는 화들짝 놀랐다. 감독을 알고 나서 되짚어보니 이 영화 안에 <원더>도 있고, <월플라워>도 있었다. 또 다른 얼굴의 찰리, 그러니까 또 다른 이야기를 가진 월플라워가. 이 감독님 진짜 꾸준하네.
다음 학기를 끝내면 졸업을 한다.(제발 내가 논문 또릿하게 잘 써서 졸업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수업을 들으면 들을수록 관련 학부 배경도 실무 경험도 없는 내가 발이라도 걸칠 수 있는 판인지 의심이 됐다. 공부를 할수록 내가 모르는 세계가 좁혀지기는커녕 배속으로 확장됐다. 시간과 돈을 모두 낭비하고 있는 것일까 봐 두려웠고, 그곳에 들어가려면 그동안의 시간을 모두 버리고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 게 아닐까 싶어서 또 두려웠다.
사실 이 두려움에는 나이도 제 몫을 했다. 앞자리가 바뀌었다고 아무도 주지 않은 제약을 스스로 결계 치듯 쳐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교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여기는 누군가의 삶을 전해야 하기 때문에 나이가 들수록 잘할 수 있는 판이고 다른 분야에서 들어오더라도 경력이 단절되는 게 아니라 자기가 맥락을 만들기에 따라서 충분히 경력을 활용할 수 있는 곳이라고. 의사를 하다 와도 집에서 밥을 하다 와도 내 프로페셔널을 어떻게 살릴지 찾기만 하면 되는 곳이라고. 늦었다,의 개념이 없다고. 듣다가 울 것 같아서 마스크 안에서 입술을 꾹 눌렀다. "30대가 어딜 껴"라는 말이 그렇게 좋더라고.
이제야 비로소, 몸은 편한데 마음은 안 편하다는 하소연에 엄마가 "그렇겠지, 엎어진 김에 쉬어 가. 다들 그렇게 살아"라고 했던 말을 조금은 내 걸로 만들어볼 수 있을 것도 같다. 그런데 사실 이건 오늘의 기분이라. 자고 일어나면 또 어떨지 모르겠네. 내 마음만 한 전쟁터도 없다. 나는 내가 나라서 늘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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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트 상품에 대한 부분을 배우며 우리 물건이 왜 팔리지 않았는지, 왜 즉각적인 반응을 얻지 못했는지 알게 됐다. 이도저도 아닌 걸 만들었으니까 그렇지. 확실히 굿즈였어야 했고, 그러려면 그런류의 제품을 만들면 안 됐고, 또 그렇게 성급했어도 안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