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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아 그 전시 텍스트를 없애지 마오,...

KNACKHEE 2021. 12. 5. 20:38

전시 텍스트 없다고 왜 또 아무도 안 알려줬어요, ... 이럴 거면 전시 개막 전에 교육이나 영상 자료를 공개하고 텍스트나 도슨트를 지금보다도 더 보조적인 수단으로 활용하게 하면 안 되는 걸까, ... 어렵네.
만 레이의 <선물>은 책의 이미지를 보면서 상상했던 것보다 아담한 사이즈였다. 사진 작가로만 인지하고 있었기에 그의 회화가 많았던 건 뜻밖이었다. 전시장에는 인터넷 검색을 해도 자료를 찾을 수 없는 작가나 작품들이 많았다. 내가 영어 검색에 능숙했다면 좀 달랐을 수도 있지만. 시인들이 초현실주의에 함께 참여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초현실주의 화파로 분류되는 작가들은 대체 여자를 뭘로 생각했던 걸까. 좀 화나네. 여성 초현실주의 작가로 구색을 맞췄지만 자꾸 치고 올라오는 욱,을 완전히 삭이기는 어려웠다. 시대가 시대이기도 했지만서도, ... 휴.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이 친숙해서인지 정말 좋았는데, <삽화가 된 젊음>은 죽음을 향해 가는 길에 하나씩 현실과 타협해 포기하거나 자연을 거스를 수 없어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던 것들로 읽혔고, <자유의 문턱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라는 것을 고려했을 때 전쟁을 끝내고 자유를 얻으려면 어쩔 수 없이 최후의 일격이 필요하다는 아이러니로 읽혔다. <유리 집>은 집에 비유한 신체의 유약함을 보여주는 느낌이었고 돌 난간 너머 물이 놓인 것은 자살을 암시하는 것 같기도 했다. <독>은 하늘 위로 독가스 같은 것이 퍼지고 달과 밤 자체가 집에 숨은 듯한 느낌이었다. 숨은 '밤'은 무엇일까.
요즘 레디메이드에 과몰입해 있어서인지 호안 미로의 <신사와 숙녀>를 보면서는 또 '레디메이드!' 하고 생각했다.

눈이 즐거웠던 미디어 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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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위사람인 대학원 동기분들을 만나서 내내 독립하란 얘길, 서울에 살아야 한단 얘길 듣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계속 기분이 나빴다. 청년주택도, 전세자금대출도 몰라서 이러고 있는 게 아니다. 그걸 위해 내가 가지고 있어야 할 최소한도 없기 때문에 이러고 있는 거다. 20년 가까이 대기업에 다니고 강남에 자가가 있고 무소유를 지향하지만 경험의 맥시멀리즘을 지향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자기 딴에는 진심을 담아 하는 얘기들은 내게 전혀 흡수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내가 산 그림을 보고는 자기도 그리겠다고 했다. 화가 났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말에 4가지 안을 생각 중이라고 했고 그들은 나와 커뮤니케이션을 많이 해보거나 같이 일을 해봤던 사람들은 '다 잘할 것 같고, 이건 네가 너무 아까울 것 같아'라고 보인 반응과 정반대의 반응을 보이며 '네가 그걸 하기엔 좀 어렵지 않을까'와 같은 말을 했다. 당신들은 나를 띄엄띄엄 알고 나는 당신들에게 속내를 내비친 적도 없는데 뭘 안다고 나를 재단하고 판단하는 걸까.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는 전시를 보러 다니고 무언가를 얻기 위해 종종거리는 것도 전부 지겨워져버렸다. 순간의 감정이라는 걸 알지만, 지금은 그냥 여기에 주저앉아야겠다. 자꾸 말이 안으로 쌓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