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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이 떨어지지 않았던 건

KNACKHEE 2022. 4. 8. 23:00

출근이 직업이어서 출근하자마자 퇴근했음 좋겠다. 직전 회사의 얘길 누구한테든 하기가 힘이 들었던 건 한때는 유토피아의 실존 가능성을 꿈꾸게 했던 그곳을 부정하는 게 어려웠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점심 때는 전전 회사의 H차장님이 회사 쪽으로 와주셔서 함께 식사를 했다. 집으로 가시는 차장님을 배웅하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에는 자꾸 눈물이 나서 무척 곤란했다. 요즘은 너무 숨을 오래 참아와서 어떻게 호흡해야 하는지 잊어버린 듯한 기분에 자주 휩싸인다. 인생에 내가 파 놓은 무덤들이 너무 많아서 어디로 뛰어들어도 무덤이다. 피곤하네. 사실 존재한다는 그 자체가 매일 너무 지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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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한 노마 작가님 화선집이 도착했다. 분명 돈을 썼는데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언제든 펼쳐볼 수 있는 안식처가 생겼다. 예술가들이 궁금한 건 세상에 꺼내 보이고 싶은 절실한 자기 얘기가 있는 사람이어서인 것 같다. 나는 사람도 좋아하고 이야기도 좋아하니까. 그래서 좋은 건가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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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언니와 오랜만에 수렴하고 주저앉는 대화가 아니라 발산하고 나아가는 대화를 했다. 즐거웠네. 얼마 전에는 교수님이 한 채용공고를 공유해주시면서 생각 있으면 추천을 해줄 수 있다고 하셨다. 교수님과 왕래가 잦았던 것도 아닌데 이런 기회에 나를 생각해주셨다는 게 놀랍고 너무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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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에는 병원에 검진을 받으러 갔다. 6개월 만에 다시 한 검사에서는 작아지거나 사라질 수도 있을 거라고 예상했던 몸 속의 혹이 두 배로 커졌다는 소식을 접했다. 6개월 뒤에 다시 한 번 보자고 했는데, 그때는 떼어내야 하지 않을까. 이날은 아직 꽃이 다 피지는 않았지만 대기의 색이 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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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을 할 것인지보다 어떤 사람으로 살 것인지가 더 중요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