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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리 마지막 날이 다가왔고 알람의 시간을 다시 바꾸며 아쉽기 짝이 없었다

KNACKHEE 2022. 5. 30. 15:57

격리 기간 동안 일드를 많이 봤다. 대책 없이 낭만적이고 이상적인 이야기들. 그런 이야기들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게 가끔은 부끄럽지만 어쩔 수 없이 지금보다 어렸을 때도, 나이가 먹은 지금도 나는 여전히 그런 것들이 좋다. 그리고 얘네는 좀 엽기적이고 어느 부분에서는 미친듯이 가부장적이면서도 변화하는 사회 문화, 의식의 최전선의 어드메라도 붙잡고 이야기를 해보려는 모습이 보이는 게 좀 흥미롭다. <혼인신고서에 도장을 찍었을 뿐인데>에서는 계약 결혼이라는 클리셰를 기반으로 사실혼의 의미를 짚었고 <히야마 켄타로의 임신>에서는 투박하게나마 미러링을 보여줬다. 아, <노다메 칸타빌레>도 다시 봤는데 우에노 주리 님 진짜 새삼 너무 예쁘시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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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몇 년 만에 종영 전에 본방사수,라는 걸 한 드라마가 끝났다. 나름 희망을 던지며 끝났지만 마음은 계속 착잡했다. 모든 인물들이 녹록지 않은 현실을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이 결국은 변하지 않은 상황에서 자신의 마음을 바꾸는 것뿐이어서. 그런데 그 마음을 바꾸는 장치가 결국은 또 연애,여서. 모든 등장인물 중에 창희 캐릭터가 가장 좋았던 건 그러한 맥락에서 조금 빗겨나 있는 인물이어서 인 것 같기도 하다. 와중에 하나 좋았던 건 서울살이,를 드라마틱한 장치로 쓰지 않았다는 거다. 그런데 전체적으로 뭐랄까, 거칠게 표현하면 사회적으로 더 나은 위치에 있는 여성 캐릭터들이 그보다 어떤 측면에서든 낮은 위치의 남성 캐릭터들을 포용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게 내내 좀 걸렸다. 서로가 서로의 구원이었는데!라고 하면 사실 할 말은 없지만, 서로의 구원이 될 수 있는 대상이 왜 그런 층위로 나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좀 딴지를 걸어볼 수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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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리 마지막 날이 다가왔고 알람의 시간을 다시 출근 시간에 맞춰 바꾸며 아쉽기가 짝이 없었다. 격리 정말 좋았다. 합법적으로 너는 아프니까 쉬어야 해, 주말에도 어디 나가면 안 돼,라고 해줘서. 예약해둔 국중박의 재벌가 특별전을 갈 수 없었던 건 좀 아쉬웠지만 주말에도 부지런히 어딘가를 가서 보고 생각하려 애쓰지 않아도 됐던 건 정말 좋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시간, 무언가를 머릿속에 욱여넣고 실무적인 성장을 하기 위해서 애쓰는 걸 조금 더디 해도 됐던 시간. 진짜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