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ILY LOG

비 무슨 일이야

KNACKHEE 2022. 8. 8. 23:34

 

와. 비 무슨 일이야. 퇴근하는 길은 발목까지 물이 차올랐고 낡은 집의 창틀은 비를 이기지 못해 창과 맞닿아 있는 공간에 물난리가 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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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아홉 번째 상담을 마치고 기억 나는 대화의 조각들.

역대급으로 긴 침묵의 시간이 많았고 결국에는 모르겠어요,를 남발했다. 5년 전과 직전의 회사, 그리고 지금 모두, 내가 어떤 전문성을 갖춰 가는 길목에 있지 않은 것 같아 혼란스러웠다. 그런데 앞의 둘에서는 죽고 싶었고 지금은 어쩌면 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의 마음을 갖게 됐다. 나는 이 변화를 가져온 게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지난번 카페 사장님의 안부를 묻는 물음에 좋다,고 말할 수 있게 된 이유 또한 나는 찾기가 어려웠다.

뭐라도 답이 될 만한 걸 꺼내 놓으려 이런저런 얘기를 늘어 놓았지만 선생님은 그럴 때마다 그래서 그 상황들에 어떤 차이가 있다는 거죠? 하고 되물으셨다. 뚜렷한 원인을 찾을 수 없어서, 이 자리에서 내가 해야 할 몫을 제대로 해내고 있지 못해서, 적지 않은 비용을 쓰고 있는데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수도 있다는 초조함에 고통스러웠다. 내가 침묵하는 시간이 길어지며 아니, 내가 이렇게까지 고통스러워해야 할 일인가, 이런 건 상담사가 찾아줘야 하는 게 아닌가, 하고 서러운 마음이 들 때 즈음 선생님이 입을 열었다. 앞의 두 곳에서는 그 사람이나 팀, 회사가 잘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본인을 갈아 넣었다고 했는데 지금 회사에서는 딱히 그런 얘길 한 적이 없는 것 같다고.

듣고 나서 생각해 보니 일리가 있었다. 배신당했다는 느낌에 분노했던 건 그래서였는지도. 지금의 곳에서 입사 초기에 가장 늦게 퇴근하며 나를 갈아 넣을 때도 회사 자체를 아주 인간적인 마음으로 응원하지는 않았다. 그때는 그냥 내 능력을 인정받고 싶었고 그러지 못할까 불안해서 그랬다. 처음엔 여유가 없어서 회사든 사람이든 좋아하지 못했고 조금 여유가 생긴 지금은 대표 자체가 예술을 사업으로만 대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고 있어서 완전히 응원하기가 어렵다. 그 미친 여자는 어떤 의미에서는 그 일에 진심이긴 했지, 그 분야 자체를 좋아하는 것 같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