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ILY LOG

함께 잘 쓰는 사람이 될 것

KNACKHEE 2022. 8. 13. 18:17

 

HPV 마지막 접종 하는 날. 예약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했길래 가보고 싶었던 카페에 갔다. 그런데 영 별로더라고, 맛도 분위기도.

 

 

어제의 부고를 오늘에야 들여다봤다. 작가의 그림을 따라 여러 이야기들을 읽어나간 덕분에 유년이 조금 더 풍요로울 수 있었다. 평안하시길.

 

 

몸에 두르고 있는 색들이 난리가 나서 좀 집에 가고 싶었다. 그래도 잘 이겨내고 광역 버스를 탔다.

 

 

바다를 향한 이렇게나 열렬한 고백이라니. 바다는 좋겠다.
작품에는 언제나 수평선이 있었다. 작품 속 인물들은 아득하게 반짝이는 그 수평선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궁금했다. 바다를 찾는 마음에 대해 생각한다. 보통 이해심이 넓다는 비유로 '바다와 같은'이란 표현이 사용된다. 그러고 보면 이해받지 못해서 또는 누군가를 이해하기가 어려워서 속이 시끄러울 때, 그럴 때 바다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 같기도 하고.
<마음의 중심>은 보고 있자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저렇게 몸을 거꾸로 들어 올려 평온해지기까지, 얼마나 길고 지난한 단련의 시간이 있었을까 싶어서. <우리의 장소를 향해 가는 중>을 지나 <우리의 장소에 도착하다>를 만났을 때도 마음이 일렁였다. 가려던 곳에 도착한 거, 그거 진짜 대단히 멋진 일이잖아.
<존재하다> 앞에서는 한참을 서 있었다. 사실 바다는 색이 없다. 담고 있는 것, 비춰지는 것들로 물들 뿐이다. 나는 어떤 색으로 존재할까, 무엇을 담고 무엇을 비추며 존재할 것인가. 그리고 특히 이 작품에서는 물의 양감과 촉감이 느껴지는 듯해서 가까이에서도 보고 옆에서도 보고 멀리서도 봤다.
코너를 돌아 만나게 되는 동선 덕분에 <산호(2)>는 꼭 물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올 여름에 바다를 못 봐서 아쉬웠는데 과분하게 봤네. 너무 머지 않은 미래에 작가님의 바다로 또 놀러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은 말한다. 작품을 크게 만드는 이유는 단 하나, 낯익은 것을 갑자기 거대하게 보는 것만큼 감동을 주는 것은 없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내게 무언가가 낯설어지는 건 감동보다는 기이함과 두려움을 동반한 호기심에 가깝다. 작년 국현미에서 양혜규 작가님의 <소리 나는 가물>전을 봤을 때도 그랬다. 그때도 지금도 커져버린 오브제들이 주는 느낌은 기이하고 조금은 징그럽거나 공포스럽기도 했다. 대개 무언가의 본질을 논할 때 유용성 부분을 제거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은데 쓰임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에서 쓸모를 무력화한다면 어느 지점에서부터 정체성과 본질을 이야기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써내려갈 수 있는 가능성으로 보면 되는 걸까. 그런데 사회적 약속이 여전히 통용되는 곳에서 그것을 벗어나는 움직임은 어떤 가능성을 야기할 수 있는 것일까. 물컵은 왜 참나무가 되어야 하는가.
이런 식으로 기존의 사회적 약속을 전복시키는 작업을 할 때는 소재의 선택도 중요하겠단 생각이 들었다. 보는 이들이 큰 오차 범위 없이 비슷한 관념을 떠올릴 수 있어야 할 테니 말이다. 작가는 스타일이 없는 그림을 그리고자 했는데 스타일이 없는 게 스타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는 지점도 인상적이었다. 자기가 아는 범위 안에서 규정하고 정의해야만 안심하는 세계 속에서 그것들 밖의 정해지지 않은 무언가가 된다는 일은, 그러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가능한 것일까. 어쨌거나 예술가는 이러한 시도를 하는 사람이란 측면에서 불편함은 예술의 필연적인 속성일 수밖에 없겠네, 싶기도 했다.
전시에서는 작가가 사물의 세부 정보를 제거하고 일부를 파편처럼 떼어내 표현한 것을 두고 close-up이 아닌 fragment로 표현했다. 클로즈업은 주체적으로 궁금해하는 느낌이고 프래그먼트는 수동적으로 궁금해지는 느낌이다. 면밀하게 들여다보기와 궁금해하며 상상하기의 차이라고 말할 수 있으려나.
<Zoom>에서는 노트북들이 줌의 첫 글자인 'Z'를 떠올리도록 배치했다고 한다. 이를 설명하면서 사용한 '시각적 의성어'라는 표현이 흥미로웠다. 언젠가 나도 써먹어야지. 낄낄. <Las Meninas Ⅱ>는 작가가 오브제에 의미를 두는 방식에 도전힌 작품이었다.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시 같네. 아니 그런데 <flirstshirt>는 단어 사이의 운율이고 뭐고 그냥 단어랑 이미지가 찰떡으로 다가와서 실실 웃음이 났다.

 

 

전시장을 나오면서 마주한 쟉고 귀여운 뒷모습들과

 

 

더러운 거울에도 거울 셀카를 참을 수 없는 으른.

 

 

그리고 정말 너무 맛이 없어서 억울했던 커피.

 

 

결제해두고 미루다가 강의를 들을 수 있는 기간이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대서 온갖 대중교통 안에서 UX 라이팅 강의들을 들었다. 마지막 강의에서 선생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이 강의에서 딱 하나만 기억해야 한다면 그건 당연히 '공감'일 거예요. 사용자에게 공감하고 기업의 목표에 공감하고 다양한 이해관계자에게 공감해야 하는 거죠. 글을 잘 써야 하지만 혼자 잘 쓰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잘 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정말 너무 공감돼서 받아적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그리고 얘 왜 이렇게 예뻐. 아, 요즘 진짜 확실하게 깨달았는데 나는 살짝 긴 머리에 5:5 가르마, 그러니까 약간 테리우스 머리라고 해야 하나 그런 서타일 좋아하더라고. 박보검 님 그 머리일 때도 사진 엄청 저장했고, 드라마 〈남자친구〉도 그런 스타일링으로 나오는 초반에만 열심히 보고 중도하차했다. 심지어 〈미생〉에서 한석율 씨 초반 헤어를 더 좋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