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싫어? 나도 싫어!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누구에게나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이고 싶어서, 누구에게도 일 두서없이 한단 소리 듣기 싫어서 전전긍긍했는데 이젠 그거 좀 내려놨다. 가만 보니까 그런 소리 할 법한 사람들은 나도 이미 같이 일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더라고. 전게임이 옳았다. 나 싫어? 나도 싫어!
_
요즘의 나는 놀라울 정도로 생각이 없다. 진득하니 책을 읽고 정리하는 시간을 갖지 않는 탓이 클 테다. 하고 있는 생각이라고는 어제 본, 치킨을 사들고 가는 청소년의 슬리퍼를 신은 발걸음이 아주 경쾌해서 너무 귀엽네, 정도.
_
3년 전 가을, 저자로 만났던 한 대학 교수가 출판 업계에 대한 사견을 늘어놓다가 갑자기 이런 말을 했다. "그런데 선생님은 계속 이거 하셔야죠. 이제 와서 뭘 다른 걸 할 수 있겠어요." 대학 교수라는 사람이 저렇게 앞날을 차단하는 말을 해도 되나. 그리고 자기가 날 얼마나 안다고. 그래서 이렇게 답했다. "왜요, 뭐든 할 수 있죠. 제가 언제까지 여기에만 있겠어요. 저는 제가 뭐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는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는지 떨떠름한 얼굴로 "아 그래요?" 했다. 지금의 나는 대학원 재학생에서 논문만을 남겨두고 있는 수료생이 됐고 다른 분야, 다른 직종으로 이직해 일을 하고 있다. 봐, 뭐든 할 수 있잖아, 이제 와서, 나는. 아, 그리고 그 미팅, 계약하고 1년이 넘도록 감상적인 핑계만 대며 한 글자의 원고도 주지 않아 계약을 파기하기 위한 자리였다. 그만둔 선배가 나에게 던지고 갔던 꽤나 큰 똥이었다.
_
삶이 분주해질수록 인생이 풍요로워지지 않고 헛헛해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