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
우리 큐레이터님은 이렇게 말했다. "세상 모든 것에 관심이 있지만 아무 것에도 흥미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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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부인한다는 건 어떤 걸까. 여전히 이것 하나 명확하게 말하지 못하면서 신앙인이라고 하는 게 부끄럽다. 아니, 실은 안다. 그저 자꾸만 반발심이 들어서 여전히 여기에 머물러 있는 거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을 만나고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까지 우리와 같이 그냥 일하는 사람이었다. 마태복음 3장 17절은 이 시기의 예수님을 향한 이야기였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꼭 사역자가 되거나 어떤 사역을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엄마로서도 사도 바울 만큼이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 대부분은 달란트와 은사를 보면서 사람들에게 감탄한다. 중요한 건 겸손이다. 겸손한 사람이어야 제자가 될 수 있고 배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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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라는 프리미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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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민감성이 낮은 편이라는 걸 알게 된 후로는 마음이 좀 편해졌다. 나는 내가 눈치를 엄청 봐서 남들한테 휘둘리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으니까. 남의 말에 끙끙대긴 하지만 언제나 선택은 내가 하고 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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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라는 걸 드물게 하고 있는 삶이 너무 오래 지속되고 있어서 큰일인 걸 알면서도 여전이 이러고 있는 건 혼이 덜 난 거지. 오랜만에 이런 기도가 나왔다. '제가 꿀 수 있는 가장 큰 꿈을 당신의 시선으로 꾸게 하시고 제가 꿈꾸지 못한 일들을 당신의 능력으로 이루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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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관심사로 대화를 나눌 수 있고 그 대화 안에서 이해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 그 시간이 즐겁고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생각한 것과 반응이 너무 다르거나 단답으로 대화가 뚝뚝 끊기거나 결혼과 육아처럼 너무 먼 나라 이야기일 때는 그 시간이 너무 아깝다. 이런 판단과 계산을 하고 있는 것에 죄책감이 들었는데 이렇게 들여다보고 나니 그래서 그런 거였군, 하고 마음의 짐을 좀 덜 수 있었다. 내 가치가 거기에 있는데 어떡해 그럼.
근면은 장기적인 거고 끈기는 단발성의 의지였다. 장기적으로 해오고 있는 운동이나 영어 공부는 확실한 동기 부여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었고. 그때 이렇게 말했어야 했는데,와 같이 상황을 곱씹는 건 타인의 평가를 신경쓴다기 보다는 상황에 대한 자기 평가에 가까운 것 같다고도 하셨다, 선생님은. 나는 결국 내 마음대로 할 거면서 왜 인정 받는 게, 쓸모를 입증하는 게 그렇게나 중요한 사람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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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적막하게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