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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29-0301_백수들이 꾸역꾸역 공휴일에 가는 여수 여행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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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29-0301_백수들이 꾸역꾸역 공휴일에 가는 여수 여행

KNACKHEE 2016. 3. 5. 21:31

누구의 시작이었는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우리는 3월이 가기 전에 분기모임을 해야 했고, 그렇다면 이번엔 여행을 갈까? 했다. 2박 3일, 1박 2일, 그렇다면 월차 등등 의견이 분분하다가 공휴일을 껴서 1박 3일의 여행을 하기로 했다. 이때만 해도 백수 둘이 여행을 하게 될 줄은 몰랐지. 어째서인지 여행지는 여수와 순천으로 좁혀졌고, 지금 시기엔 순천이 여수보다 볼 게 많을 것 같다는 주변의 의견을 적극 수용해 여수로 결정했다. 셋 다 엄청 추진력이 좋고 계획적인 타입이 아니라 일은 조금씩 진행됐다. 우린 코레일 아이디가 없어!라는 말에 일전에 전주 여행을 위해 가입해뒀던 게 생각나서 가는 기차편을 예매하고, 돌아오는 건 버스를 탈까 하다가 셋 다 고터보다 용산이 집에서 가까워 돌아오는 기차편을 추가로 예매했다. B가 여긴 3인실이 있는데 깨끗하고 꽤 괜찮은 것 같아!라며 벨루가 게스트하우스와 통화를 했고, 우리는 별다른 이견 없이 좋아! 좋아! 해서 여수엑스포 역 근처의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했다. 출발 일주일 전엔가 만나서 느릿느릿 해상케이블카를 예약했다가 다시 보니 2월까지만 쓸 수 있는 거라 어떻게 될지 모르니 일단 취소를 하자, 해서 취소를 하고 유일하게 면허증이 있는 B가 쏘카를 예약했다. 우리의 여행 준비는 그게 전부였다. 출발 며칠 전, B에게 좋은 일이 생겨서 여행을 함께하지 못하게 됐고 B는 자신의 선물이라며 그냥 3인실을 쓰라고 했다. 나는 아니 그래도 어떻게, ... 라고 말해놓곤 B의 아니야, 괜찮아, 선물이야, 가서 내 몫까지 잘 놀다 와, 라는 말에 더 토를 달지 않고 넙죽 받았다.

 

1박 3일의 짐쯤이야, 생각하곤 출발 직전에 짐을 챙겼다. K가 폭죽을 잔뜩 들고 올 예정이었으므로 지하철역 다이소에 들러 성냥을 찾았다. 남자애는 성냥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라이터는 아니지만 라이터처럼 불을 켤 수 있는 게 있냐고 물었고 남자애는 벙졌다. 삐질삐질한 얼굴로 잠시만요, 하더니 대빵인 것 같은 언니에게 내 말을 그대로 읊었다. 언니는 아, 부엌용 블라블라(들었는데 또 까먹었다) 말씀하시는 거죠? 긴 거, 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애가 보여준 게 대충 생각한 그게 맞는데, 가스충전식이라 부탄가스를 같이 사야 한다고 했다. 그건 너무 번거로워서 우물쭈물한 얼굴을 해 보이자 뭘 할 거냐고 물었다. 불꽃놀이를 할 거라고 하자 남자애는 아니, 그럼 그냥 라이터 쓰면 안 돼요? 했다. 나는 라이터는 너무 뜨겁잖아요, 하고 무소득으로 다이소를 나왔다. 일단 내려가서 정 없으면 라이터에 도전해보지 뭐, 하는 마음으로 용산역에 갔다. 마지막 알바를 마치고 오는 K의 기분이 썩 좋아 보이지 않아 내심 걱정이 됐다. 괜찮을까, 이 여행. 화사한 B도 없이. 나는 지금 속이 좁아질 대로 좁아져 있고 K는 몹시 피곤해 보이는데. 정말 이대로 기차에 올라타도 괜찮을까. 그래도 뭐. 타야지 어쩌겠어. 슬쩍 나온 입과 조금은 복잡한 심경으로 올라탄 기차 안에서 우리는 앞좌석에 앉은 사람들이 신경질을 낼 만큼 신 나게 떠들고 웃었다. 스미마셍. 그러고보니 여행 출발 당일은 4년에 한 번씩 온다는 2월 29일이었고, 본격적인 여행을 즐길 다음 날은 3월 1일이었다. 의미 있는 날들을 내 인생에서 꽤 의미 있는 K와 함께 보내는구나 싶었다.

 

 

여수는 추웠다. 눈도 오고. 역 안내소에 가서 우리 숙소까지의 길을 물으니 걸어갈 수도 있지만 지금은 날이 험하니 택시를 타는 게 좋겠다고 했다. 택시 아저씨는 빙글빙글 돌아 숙소에 내려줬는데 나중에 보니 숙소에서 역까지는 걸어서 십분 정도 거리였다. 츤츤거렸지만 친절한 아저씨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차를 돌려 온 걸 보면 그냥 거친 아저씨인가 싶기도 하고. 숙소는 깨끗하고 화장실도 딸려 있었다. B상~ 아리가또. 짐을 풀고 밥을 먹으러 버스를 타고 간 곳은 이곳의 시내인 듯 싶었다. 백화점에서나 볼 수 있는 브랜드들이(심지어 메트로시티와 톰보이가 개별 매장으로 있었다) 모여 있어 연신 감탄했다. 꼭 자유공원과 차이나타운으로 이어지는 동인천 일대 같은 느낌이었다. 초딩입맛을 가진 나 때문에 밥 먹을 곳을 정하는 데에 시간이 꽤 걸렸다. 그나마 갈치구이가 무난했으나 그건 2인분부터 가능하다고 했다. 서대회를 안 먹는 건 날것이기 때문이고 장어탕이 탐탁지 않은 건 장어가 느끼하기 때문이다. 그냥 반찬하고 먹을게, 하고는 들어가서 서대회와 장어탕을 시켰다. 서대회에 콩나물(숙주였나?)이 몇 가닥 떠다니는 장어탕 국물이 같이 나와서 반찬 가짓수가 늘었다. 조금 탁한 동태찌개 맛이었다. 근처 카페에서 날이 좀 더 어두워지길 기다리며 폭죽들의 사용법을 연구했다. 이렇게나 주체적인 불꽃놀이는 처음이어서 비닐을 벗겨야 하는 건지 마는 건지부터 난관이었다. 비닐을 벗긴 것들을 다시 봉투에 담아 쭐래쭐래 바다에 갔는데, 바다가 아니었다. 아니, 그러니까 바다는 바다인데 우리가 기대한 모래사장이 있는 해변이 아니라 고기잡이 배가 늘어서 있는 항이었다. 항. 항항. 항. 심지어 야경도 구렸다. 실소가 터져나와서 깔깔대고 있는데 부산 남자인 듯한 둘이 다가오더니 대뜸 /여가 여수 밤바다 맞아요? 여가 거 맞아요? 와- 너무 기대를 했나?/ 하는 바람에 더 빵 터졌다. K는 아무래도 여기가 우리가 생각한 그 곳이 맞는 것 같다고 친절히 답해줬다. 숙소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반은 부산이고 반은 서울 녀자인 K가 그 남자의 찰진 사투리를 그대로 구사해줘서 또 한참 깔깔댔다. 시간은 겨우 여덟 시였고 이대로 숙소에 들어가긴 아까워서 엑스포 부지를 구경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수도 없이 장범준 네이노무시키, 여기가 아니잖아!를 외쳤다. 분명, 장범준이 여수에 와서 여수밤바다를 만들 때는 겁나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여자가 있었던 거다. 그렇지 않고서야.

 

숙소에 돌아와서는 관광안내소에서 집어 온 관광지도를 침대 위에 종류별로 펼쳤다. 원랜 둘째 날 해상케이블카를 탈 예정이었으나 그 돈을 주고 방금 우리가 본 야경을 보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라는 결론을 내리고 오동도에 가기로 했다. 동백꽃이라도 볼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그리고 가져온 불꽃을 터뜨리긴 해야겠으니 만성리검은모래해수욕장에도 다녀오기로 했다. 여수는 관광지가 오밀조밀 모여 있어서 차 없는 우리가 다니기에 꽤 좋은 좋건이었다.

 

 

 

 

 

이른 기상이 몸에 밴 K가 먼저 일어나 있었다. 나는 회사 그만둔 지 겨우 일주일이 지났을 뿐인데 기상시간이 너무 잘 늦춰져서 당황스러웠다. K의 휴먼 알람으로 잠을 깬 내게 그녀는 오늘의 날씨가 영하권이라는 무시무시한 소식을 전했다. 똑똑하고 부지런한 그녀는 오동도대신 아쿠아리움을 제안했고, 나는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좋아, 라고 했다. 사실 첫 아쿠아리움 방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생각났다. 초등학교 때 63빌딩에 있는 아쿠아리움에 갔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갔던 기억만 있다. 뭘 보고 어떤 기분이었는지는 무의 상태다)이라 내심 무척 설렜다. 어제부터 노래를 부르던 조식을 먹으러 내려갔는데 사람이 많았다. K가 흰 우유를 안 먹어서 씨리얼을 말아 먹을 초코우유를 사러 옆 슈퍼에 마실을 다녀왔다. 어떤 여자애가 초코우유는 어디 있는 거냐고 물어서 사온 거라고 답하자 아, 하며 아쉬운 표정을 해보였다. 괜히 우쭐한 기분. K가 달걀을 부치고 나는 토스트를 구웠다. 오븐처럼 생긴 토스트기는 처음이라 잘 구워지고 있는 건지 확신할 수 없었다. 테이블에 접시를 내려놓고 마주 앉아 식빵이 잘 구워지지 않았음에 대해 고해성사를 하고 있는데 K가 베어 문 식빵에서 와사삭, 소리가 났다. 황급히 내 식빵도 시식을 해 보았으나 눅눅했다. 그래. 하나라도 잘 된 게 어디야. 식빵의 굽기는 조금 아쉬웠지만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운 아침식사였다. K가 달걀프라이도 완숙으로 해줬다. 급할 게 없으니 11시 꽉 채워 체크아웃을 하고 아쿠아리움으로 향했다. 우려보다 덜 추웠고, 햇살이 좋아 밤에 본 것보다 반짝반짝한 풍경이 펼쳐졌다.

 

 

언제 봐도 귀여운 펭귄을 지나 벨루가 고래를 만났다. 무척 우아하게 유영했는데 사진을 찍으니 꼭 거친 참치 같이 나와서 동영상 촬영을 했다.

 

 

K는 용감하게 닥터피쉬에 도전했는데, 으아- 으아- 으아악-의 경험이었다. 기분이 이상했다고 했다. 세 번째 넣었을 땐 얘네가 개떼처럼 몰려들었는데 그 순간을 포착하지 못한 게 못내 아쉽다.

 

 

 

 

 

 

해파리는 몽환적이었다. 꼭 들숨 날숨의 느낌이었고 폭- 폭- 하고 작은 숨소리를 낼 것만 같았다.

 

 

그리고 가오리 친구. 눈처럼 보이는 건 콧구멍이라고 해서 어쩐지 아쉬웠다.

 

 

 

멤버십 할일을 받으면 제값을 내고 아쿠아리움만 결제하는 것보다 아쿠아리움과 트릭아트 패키지를 결제하는 게 더 저렴해서 별 생각 없이 패키지를 구매했는데, 트릭아트전에 가지 않았으면 어쩔 뻔 했나 싶게 우리는 신이 나 여기 저기서 사진을 찍었다. 좋은 선택을 해서 다행이었다.

 

 

 

K가 알아 온 떡갈비 맛집을 찾아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다가 이곳 시민인 듯한 아주머니께 관광지 추천을 요청했다. 아주머니는 자산공원 야경을 추천하셨고, 걸어서 올라가긴 힘드니 엘리베이터를 타라는 팁도 알려주셨다. 떡갈비는 맛있었고 K는 아무리 그 지역에 해산물이 유명하다고 해도 늘 고기가 우위인 것 같다,는 명언을 남겼다. 무척 공감했다. 불꽃놀이는 해가 져야 할 수 있는데 그럼 그때까지 뭐하지? 하다가 근처 카페에서 해 지길 기다리자는 결론에 다다랐고, 다행히 해변 바로 옆에 카페베네가 있다는 블로거의 정보를 접했다. 프랜차이즈 카페 만세. 해변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면서는 서로 런지 자세를 해보였는데 이상한 할아버지가 K의 발목을 찼다. 깜놀. 우리가 자신을 이상하게 보자 민망해하며 아픈가 보다? 했다. 당연히 아프지. 원 별. 지금에 와서 다시 생각해봐도 그 할아버지의 행동은 이해가 되질 않는다. 바다 쪽 면을 통유리로 해 놓은 카페베네는 지금껏 내가 가 본 카페 중 가히 최고의 뷰를 가졌다고 할 만큼의 뷰를 자랑했다. 맙소사. 평화롭기도 해라. (K가 여기 사장님 하고 싶다,고 해서 농담인 줄 알았는데 진담이었다고 한다.)

 

 

 

 

 

 

 

 

일몰 시간 보다 조금 앞서 나와 어떤 커플의 기록을 발로 뭉개가며 모래사장에 폭죽들을 파묻었다. 여자애 둘과 남자애 하나로 이뤄진 무리가 지나가며 남자애가 폭죽들을 보고 너무 많은 거 아냐?라고 했는데 당시엔 그게 무슨 말인가 싶다가 불꽃놀이를 끝내고야 그 말의 깊은 뜻을 알았다. 하나가 불을 붙이고 하나가 사진을 찍기엔 폭죽이 너무 많았구나. 적어도 둘이 불을 붙이고 하나가 사진만 찍어야 했구나. 해변에 가며 내심 불 붙여 줄 멋진 오빠들이 있기를 기대했지만 판타지는 충족되지 않았고, 우리는 주체적으로 불꽃놀이를 할 수 있는 여성들이 되었다. 아. 그래. 성냥을 숙소 근처 슈퍼마켓에서 찾긴 했는데 너무 많이 들어 있기도 하고 패키지가 구리기도 해서 아주머니의 추천대로 달칵달칵 켤 수 있는 라이터를 샀다. K가 좋아하는 라임색으로. 그런데 손이 얼어서 그것도 만만치 않았다. 둘 다 겁도 많아서, 몇 개를 연달아 붙여야 하는데 하나 붙이고는 으아아아아- 도망가! 하고 도망가고, 폭죽이 터지는 순간 또 놀라며 도망가고 하는 바람에 불꽃놀이도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누가 보면 전쟁난 줄. 그래도 하트와 U자를 그리는 데엔 성공했다. 다음엔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 불꽃이 그렇게 멀리 튀지 않는다는 것도, 불꽃이 우리에게 위해를 가할 만큼 위험하지 않다는 것도 알았으니까. 불꽃은 그저 잠깐 타오르고 꺼질 뿐이었다. 정신없는 불꽃놀이를 하는 바람에 틀어놓은 BGM을 즐기지는 못했지만, 위아더나잇의 별불밤은 좋은 선곡이었다. 하늘의 별은 보고 있을수록 많아졌다.

 

 

너무 추워서 자산공원 야경은 잠깐 눈요기만 하고 투썸에 들어갔다. 그곳엔 여러 체인점들이 있었는데 투썸은 야경이 보이는 2층에 자리했고 이디야는 건물 벽으로 막힌 1층에 자리하고 있어서 자본의 힘을 다시 한 번 체감했다. 투썸 마감이 9시 반이라서 기차 시간인 11시 20분까지 역 내 맞이방에서 역사 다큐를 보며 기다렸다. K는 얼마 전 한국사 시험을 위해 공부했던 부분이라며 조곤조곤 설명해줬다. 밤기차는 사람이 별로 없었고, 그래서인지 난방을 해주지 않아서 추웠다. 자다 깼다. 덜덜 떨며 새벽 4시 20분쯤 용산역에 떨어졌고, 역 안엔 문을 연 곳이 없어 밖으로 나가 두리번거리다 닭곰탕집을 찼았다. 뜨끈한 국물이 들어가니 좀 정신이 들었다. 아주머니가 아침드라마를 연속해서 보고 계셨는데, 왜 서하준이 아침드라마에 나오는가?에 의문을 갖고 찾아보다가 서하준이 소속사 문제로 10개월간 방송출연 정지 처분을 받고 아침드라마로 재기를 하고 있는 것도, 저 아침드라마의 제목이 내 사위의 여자, 라는 것도 알게 됐다. 아침드라마는 흥미로웠다. 공포영화 사운드와 카메라 동선을 사용했으며 배경은 중요하지 않고 인물들을 계속해서 클로즈업컷으로 잡았다. 또 후반부에 가서야 관계들이 드러나는 미니시리즈들과 달리, 모든 관계도를 초반에 까발리며 시청자들로 하여금 어떡해- 어떡해- 하며 보게 만들었다.

 

그렇게 여행이 끝났다. 시간이 돼 각자의 탈 것을 타고 집에 가서 쿨쿨 잤다. 이번 여행을 통해 내가 여행에서 가장 중점을 두는 게 뭔지 알았다. 나는 가서 내내 햄버거가 먹고 싶었을 정도로 지역 음식 먹는 것 혹은 맛집을 방문하는 것엔 큰 관심이 없었고, 그곳의 어딘가를 즉흥적으로 가는 것도 별 상관이 없었다. 내가 발붙이고 있던 현실을 떠나 있다는 자체로 좋았다. 늘 내가 지금 있는 여기만 아니면 괜찮을 것 같다는 작은 마음 탓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