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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 Bossanova,
연차를 내고 비행기를 타면서 회사 일정을 낑겨 보너스 연차를 종종 받아낸다. 이번에는 부산에 배달해야 하는 그림이 있는데 걔가 혼자 무언가를 타고 가는 것보다는 내게 반차를 더해주고 비행기 편도 값을 대주는 게 더 이득이라서, 잡아뒀던 부산행 비행기표를 취소하고 다시 끊었다. 또 법카 찬스로 공항에서 그림 배달 장소까지 택시를 탔는데 마침 퇴근 시간이라 택시 기사님과 긴 얘기를 나눴다. 5시 정도였는데 길이 막히길래 "이 시간에 왜 길이 막히죠?" "어, 아무래도 퇴근 시간이라 그런 것 같은데요." "헙, 정말요? 5시인데 다들 이 시간에 퇴근을 한다고요? 허업- 짱이다!"에서부터 서로 대화가 트여서 기사님이 이탈리아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택시 기사를 하게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택시도 부업이..
어딜 가나 문제인 건 마찬가지라 이왕이면 멀리 떠난, 뜨거운 생활 in 제주_04_ 이번 여행의 마지막 일정은 늦잠을 자고 숙소의 체크아웃 시간을 꽉 채운 뒤에 M이 찾아둔 브런치 카페에서 점심을 먹는 것이었다. 여행 내내 우리는 나 있는 곳이 내 집이다,라는 한 교수님이 했던 말을 자주 주고받았다. 농담의 농도가 짙은 말이었지만 왜 하필 그 말이었을까. 겨우 이틀을 머물 숙소를 집, 이라고 부르면서도 왜 이질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우리가 함께이지 않았어도 우리의 숙소가 아늑하고 따뜻했을까. 친구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아닐 것 같다,고 생각했다.여행에서는 시간에 맞춰 해내야 하는 게 없는 것이 가장 좋았다. 데드라인은 나를 일하게 만들고 종종 효율을 높여주기도 하지만 그동안 '데드라인'의 탈을 쓰고..
어딜 가나 문제인 건 마찬가지라 이왕이면 멀리 떠난, 뜨거운 생활 in 제주_03_ 자정에 새로운 뮤비가 공개됐고 내내 아, 덕후인 거 너무 힘들다! 덕후가 아니었으면 좋겠어! 하고 투덜거렸다. 아침에는 옆방의 소란함에 일찍 잠에서 깼고, 다시 잠들 수는 없었지만 침대에서 나오지는 않았다. 아침 이불 속 행복이라니. 바지런한 T는 나와 M이 이불 속에서 밍기적대는 동안 아침 수영을 다녀왔다. 내일도 T가 아침 수영을 가면 우리의 수영장 이용권을 알차게 쓸 수 있겠구나 싶어 괜히 좋았다.T가 돌아오고 지난 밤에 사둔 샌드위치를 아침으로 먹었다. 정해둔 일정은 2시에 있는 수풍석 뮤지엄이 전부여서 오전에는 뭘 할까 하다가 D가 근처에 있는 수목원을 추천한 게 생각났다. T와 M은 선뜻 수목원이란 선택지에 V..
어딜 가나 문제인 건 마찬가지라 이왕이면 멀리 떠난, 뜨거운 생활 in 제주_02 _ 아침에는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버스를 타러 가는 길에 문득 그동안 너무 많은 남의 인생을 생각하며 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대부분은 질투를 하고 부러워하느라. 그리고 걸어가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볕이 너무 강렬해서 어제에 이어 다시 한 번 티를 더 챙겨오지 않은 걸 후회했다. 농담처럼 말했지만 정말 자칫하면 옷을 사야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이너로 티에 니트가 아니라 티만 입는 걸 염두에 두고 짐을 챙겼어야 했다. 앱은 도착까지 2시간을 잡아줬는데 기사님이 엉덩이가 아프도록 달려준 덕분에 1시간 만에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 로비의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하고 앉아 가져온 시집을 꺼냈다. 잠시 후 출장을 온..
어딜 가나 문제인 건 마찬가지라 이왕이면 멀리 떠난, 뜨거운 생활 in 제주_01 _ 3년 만이었다. '뜨거운 생활'이란 이름으로 독서모임을 빙자한 잡담회를 시작한 지 3년 만에, 그리고 같은 학교, 같은 과 동기로 만난 지 10년 만에 우리는 셋이 함께 여행을 가기로 했다. 작년 초에 내가 발제 주제로 '잘츠부르크'를 정하면서 기간을 정하고 돈을 모아 잘츠에 가자! 했으나 어쩐지 요원해졌고 일단은 국내에서 가장 멀리 갈 수 있는 곳으로 가자, 하고 각자 이틀의 연차를 받았다. 그 사이 회사 업무로 제주도에 사는 저자와 계약을 진행할 일이 생겼고, 이왕이면 만나서 하면 좋으니까 상사에게 연차 동안 마침 제주도에 가게 되었으니 잠깐 만나고 올 수도 있겠다는 뉘앙스로 말을 흘렸다. 솔직히 다른 방법을 찾아주..
K언니를 만난 건 스무 살 때다. 교회에서 여러 교회가 모이는 비전 캠프에 갔었고 거기서 언니와 같은 조가 됐다. 언니는 예쁘고 착하고 야무졌다. 나는 언니와 친해지고 싶었고 계속해서 질척였다. 이후에는 언니가 방학 때 서울에 올라와 나에게 시간을 내어줬다. 나는 매번 말로만 이번엔 제가 갈게요! 하다가 구 년 만에야 언니를 만나러 광주에 갔다. 신혼집은 넓고 깔끔하고 아늑했다. 언니는 분주하게 움직이며 음식을 준비했고 나는 철없이 앉아서 받아먹기만 했다.학교 생활에 대해 얘기할 때면 즐거워하던 언니가 올해는 조금 지쳐보였다. 선생님의 권한이 자꾸만 축소되는 사회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서 마음이 어렵다고 했다. 언니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인권이라는 말로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는 것인지 어지러워졌..
전국 친구 투어,로 명명하고 보니 이번이 올해의 두 번째였다. 처음은 지난 봄에 갔던 포항. 그리고 이번엔 부산과 세종. 내려가는 날이 마침 수능이라서 딱 10년 전의 오늘과 그때에서 지금까지 이어진 선들을 곱씹어봤다. 수능은 인생에 검지발톱 정도의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는 데 생각이 다다랐다. 그 정도의 일이었다. 함께 부산현대미술관에 가기로 했던 A언니가 갑자기 탈이 나는 바람에 미술관은 혼자 다녀오고 언니가 좀 괜찮아지면 저녁에 밥이나 같이 먹기로 했다. 아, 이동하기 전에 숙소에 들러 짐을 놓고 나왔는데 침대 헤드에 쿠션이 달려 있어서 친구에게 호들갑을 떨었다. 저것의 용도가 무엇이냐며, ... 하핫. 기존의 우리와 새로운 우리. 멈춰서 서로의 몸짓을 듣지 않으면 우리는 붕괴되겠지. 서로의 무게..
포항에 가기로 했다. G언니를 만나는 것 외엔 아무 이유도 없었다. 그거면 충분하지._ 포항으로 가는 KTX에서는 물음표와 마주했다. 대학원을 가긴 가야 할 것 같은데 지금 준비하고 있는 과가 맞는지에 대한 물음표가 시작부터 생기더니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일단은 멈춰야 할 시점인 것 같다. 호접지몽. 생각지 못한 근사한 바다를 만났다. 하늘과 땅과 빛바랜 문명이 모두 맞닿아 있었다. 여행에서 혼자 쓰는 숙소는 잠시 온전한 혼자만의 공간을 가져보는 경험을 하게 했다. 사실 조금은 무섭기도 했다. 왜인지 숙소에 신약성경이 있기에 펼쳤다가 마태복음 12장 말씀을 읽었다. 몇몇 구절을 기록해 둔다. 20절 / 상한 갈대를 꺽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몇 ..
억지로 선보러 나갔는데 이상형을 만난 기분이 이런 걸까 싶은 울산 출장기 울산은 처음이었다. 퇴사를 앞두고 출장으로 울산에 갔다. 생각보다 멀지 않았다. 광명역에서 KTX를 타니 두 시간이 조금 넘게 걸렸다. 짜둔 경로가 없어서 매체 특성상 중심이 돼야 할 외솔 기념관을 중심으로 방문지를 정했다._ 역에서 외솔 기념관까지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있었다. 종점에서 내려 낯선 동네를 산책하는 기분으로 지도를 보며 걸었다. 매거진들의 동네 특집,에서나 볼 법한 풍경들이 펼쳐져서 취재와는 상관 없는 풍경들을 잔뜩 카메라에 담았다. 그런데 자꾸 동네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라 '이 길이 맞나?'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초행길은 늘 의심 가득한 얼굴로 지나게 된다. 길에 사람도 없어서 물어볼 수도 없고. 일단 가는 수..
십 년 차 친구 이 센세와 떠나는 첫 해외여행, 다카마쓰_03 아침엔 눈이 왔다._ 공항행 리무진 버스에 타 핸드폰을 켰는데 갑자기 화면이 보라색 톤으로 바뀌어 있었다. 소니를 쓰고 있는 터라 "왜 그래, 너네 나라잖아!" 했더니 센세가 "고국을 떠나야 하니까 슬퍼서 그렇지." 하고 받아줬다.공항엔 커플이 많았다. 센세가 나더러 다음 여행은 남자친구랑 오라기에 아니 뭘 좀 데려다주고 그런 말을 해야 할 거 아니냐고 답했다. 어떤 타입이 좋은지 묻길래 대답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센세가 "걔네 다 빼고, 내가 들어 본 이름 다 빼고." 하며 선수를 쳤다. "그런 애들은 현실에 없잖아! 있으면 내가 가졌지." "어차피 그런 스타일 안 좋아하잖아!" ",... 다다익선?" "오?" 매일 타들어 가는 느낌으로 나를..
십 년 차 친구 이 센세와 떠나는 첫 해외여행, 다카마쓰_02 전날 협의한 대로, 먼저 일어난 센세는 한 시간 일찍 공원으로 출발했다. 혹여 내 의지가 바뀌었을까 해서 같이 나갈 것인지를 묻는 센세에게 이불 속에서 손을 흔들었다._ 센세가 나가고도 좀 더 이불 안에 있다가 느긋하게 준비를 하고 잠깐 QT 책도 펼쳤다. 고린도전서의 말씀이었고 본문 해설 중 '자발적인 사랑의 의무'란 표현을 곱씹었다. 타인을 위해 더 유익한 방식으로 내게 주어진 자유를 사용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또한 먹든지 마시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라는 말씀이 엄격한 율법의 지킴이 아니라 타인의 상황을 배려하라는 맥락에서 등장한다는 것에 놀랐다. 말씀을 조각조각 아는 건 위험하다. 등교, 출근 시간대에 거리로 나가니 다양한 연령의 ..
십 년 차 친구 이 센세와 떠나는 첫 해외여행, 다카마쓰_01 출국 이틀 전에서야 모네의 그림이 있는 나오시마 섬의 지추미술관이 휴관이란 사실을 알았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대하고 있던 부분이 뒤틀려 당황했다._ 다카마쓰 근처 다른 섬들의 정보를 기웃거려 보기도 했지만 딱히 끌리는 곳이 없었다. 1월에 휴관인 지추-이우환 미술관이 클래식한 미술관이라면 휴관이 아닌 베네쎄 뮤지엄, 집 프로젝트 등은 현대 미술 작품을 볼 수 있는 곳인 것 같았다. 후기가 나쁘지 않아서 일단 가 보기로.대학교 입학 전 예비 대학에서 만나 여태 친구로 지내는 이 센세와 처음 떠나는 해외여행이기도 하고 둘 다 시간을 많이 내기도 어려워 '일본'을 큰 틀로 두고 세부 목적지를 정했다. 센세가 일본의 소도시를 가고 싶다며 항공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