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ODLE 잃다.

2012.10.30 23:56

 

 

 

  연민. 으로 끝나길 바랬다.
  하지만, 마음이 아프게도- 연민. 으로 끝내지 못했다.

  그래서 결국... 길을 잃고 말았다.



    *



  버스에 올랐다. 카드 인식기에 지갑을 갖다 대자,   감사합니다.   하는 입력되어 있는 기계음이 흘러나왔다. 빈 자리를 찾아 두리번거리다 뒷문 바로 옆에 자리가 비었다는 것을 인식하고는 조금은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 그 자리에 앉았다. 가방에서 MP3를 꺼내 이어폰을 귀에 꽂다가   아차.   싶었다.



  내가 어디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탔는지 잊어버렸다.



  한참을 전원도 켜지 않은 MP3의 이어폰을 귀에 꽂고 내가 어디에 가기 위해 버스 위에 올랐는지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 생각해 내지 못했고,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서 부저를 눌러 버스에서 내렸다.



  큰일났다.



  아무도 없는 한산한 길을 혼자 걸었다. 내가 신은 파란색 하이힐에서 나는   또각또각.   하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거슬렸다.



  겨우 5cm밖에 되지 않으면서, 그래도 하이힐이라고 소리를 냈다. 계속해서.   운동화를 신고 올걸.   하고 별 소용없는 후회를 했다. 한참을 더 또각 소리를 내며 걸었지만, 사람도 가게도 보이지 않았다. 계속 보이는 거라곤 내가 걸어가고 있는, 끝이라곤 없어 보이는 시멘트 바닥과 고개를 조금만 위로 들면 보이는 회색빛의 하늘 뿐.



  조금, 불안해졌다.



  얼마나 걸었는지 모르겠다. 어느 순간 무심코 걷기. 에서 심코 걷기. 로 돌아오니 하이힐이 푹푹 빠지는 흙바닥으로 바뀌어 있었다. 더 이상 하이힐의 소리가 나지 않아 소음 공해에서는 벗어났지만 걷기가 힘들어져 하이힐을 벗어 손에 들고 걷기 시작했다. 양말을 신지 않은 맨 발바닥에 닿는 흙의 입자가 조금은 거칠게 느껴졌다. 그렇게 흙의 느낌을 음미하며 또 한참을 걷다보니 몽실몽실한 느낌의 강아지. 한 마리가 나를 빤히 보며 서 있었다.



  불쌍했다.



  아무도 없는 곳에 내가 나타날 때까지 혼자 서 있었을 녀석이 불쌍하다. 라고 느껴졌다. 그래서 그 녀석을 들어 품에 안고 계속 걸었다. 그 녀석을 안고 걷자니, 손에 들고 있는 하이힐이 거추장스러워져 며칠 전에 산 새 것임에도 불구하고 땅바닥에 던져버렸다. 그리곤 내 품에 안겨 있는 녀석에게 말을 묻고, 내가 물은 말에 내가 답을 했다.



  "왜 혼자 거기 있었어? 나? 나는 버스에 탔는데, 내가 어딜 가려고 버스를 탄 건지 생각이 전혀 안 나는 거. 계속 계속 생각했는데, 계속 계속 생각이 안 나서 이러다 종점까지 가겠다 싶어서 무작정 부저를 누르고 아무데서나 내렸어. 그랬더니 말도 안 되는 곳이 펼쳐졌지 뭐야. 그치만 무작정 걸었어. 그냥 걸었어. 응. 그러다 너를 만난거야. 너도 나처럼 네가 가야 할 곳을 잃어버린 거야? 그래도 그렇게 혼자 있으면 외롭잖아. 응? 나도 혼자 있지 않았느냐고? 응. 그랬지. 외로운데 왜 그랬느냐고? 음... 글쎄... 내가 왜 그랬을까... 갈 곳을 잃으면서 닿으려고 했던 사람도 잃어버린 것 같아. 차라리 그 사람이 내가 갈 곳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게 무슨 소리냐고? 푸훕. 실은 나도 잘 모르겠어. 내가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건지..."



  누가 보면 미친 여자라 손가락질을 하겠지만, 그치만, 여긴 아무도 없으...



  사람이었다.



  한참을 걸어 강아지 한 마리를 만났고, 또 한참을 걸어 사람 한 명을 만났다. 내 품에 안겨 있던 녀석은 그 사람을 보자마자 내 품을 벗어나 그 사람의 품으로 가버렸다. 자신에게 안겨 오는 녀석을 해맑은 미소와 함께 맞이한 그 사람은 나에게 허리를 약간 숙여 인사하고는 뒤돌아 가버렸다. 나는 걸음을 멈췄다. 아까 버린 하이힐이 그리워졌다.



  연민. 이었다면. 그 녀석을 연민으로 인해 이 곳까지 안고 걸어온 것이었다면, 새로 산 하이힐까지 미련 없이 버려버릴 만큼의 연민으로 그 녀석에게 마음을 쓴 것이라면, 분명... 분명... 그 녀석이 원래의 자리를 찾아간 것을 기뻐해야 했다, 나는.



  하지만, 나는 그 녀석이 제자리를 찾음으로 인해 기쁨. 을 느끼지 못하고 슬픔. 이라는 몹쓸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을 깨달음으로 인해 나는 내가 가려고 했던 곳을 찾음과 동시에 그 곳으로 가는 길을 잃어버렸다.





  _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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