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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운전사

KNACKHEE 2017. 9. 16. 18:43

 

*

 

주말에 일을 하겠다고 없는 상영관을 애써 찾아 택시 운전사,를 봤다.

 

영화는 독일인 기자리는 장치와 서울에서 온 개인 택시 기사라는 장치로 그날의 사건과 일종의 상황적, 감정적 거리 두기를 한다. 그렇게 영화는 표면적으로 독일 기자의 동선을 따라가지만 실은 택시 기사인 만섭의 '유턴'을 향해 달려간다. 군인으로 대변되는 진실 앞에서 언제나 후진만을 했던 만섭은 순천의 한 국숫집에서 유턴을 결심한다. 전날 밤, 머리에 총구가 겨눠진 상황에서도 기지를 발휘해 'I'm OK.'를 외치며 피터의 손에 진실을 들려주려 하던 재식이, 재식과 같은 마음으로 전장과 같은 시위 현장에 있을 광주의 시민들이 못내 눈에 밟혔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기엔 왜곡된 보도에 분노한 소시민의 양심이 있었다.

 

극의 초반부, 만섭이 재식의 이름을 묻는 장면이 있다. 그 물음에 답을 한 순간부터 그 둘 사이에는 유대가 발생한다. 이름이 가진 힘이다. 재식이 현지인으로서 겪는 부당한 탄압이 외지인인 만섭에게도 더 이상 남의 일만은 아니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발생한 유대는 두 번이나 광주의 진실로부터 도망치려 했던 만섭의 발목을 잡는다.

 

만섭은 광주 시민을 향해 '미안합니다'라고 말한다. 미안하다는 말은 언제나 정작 발화해야 할 이들은 하지 않고 약자들의 몫이 되곤 한다. 자꾸만 고개를 숙이게 하고 자꾸만 우리를 소시민의 범주로 몰아 넣는다. 사실 모른 척하고 하지 않으면 그만인 말이지만 소시민들은 항상, 미안함을 외면할 수가 없다.

 

영어가 짧은 만섭이 자주 내뱉은 말 중 하나가 'Don't worry.'다. 돈 워리,의 의미는 계속해서 변주한다. 극 초반부엔 비즈니스 관계에 불과한 만섭과 피터 사이에서 만섭이 불안해하는 피터에게 어떤 수를 쓰든 광주로 데려다주겠다며 이 말을 쓴다. 자신은 꼭 십 만원을 벌어야겠단 의미다. 하지만 모종의 사건을 함께 겪고 동지가 된 후반부, 만섭은 일종의 사명감으로 피터에게 네가 김포공항에 반드시 도착할 수 있게 해 주겠단 의미로 이 말을 사용한다. 서울로 올라오는 길의 검문소에서 영화는 우연과 행운에 기대지만 그것 외엔 방법이 없던 시대였다. 검문소를 통과하고도 또 한 번의 위기가 닥치지만 택시 연대의 도로 퍼포먼스로 이를 극복한다. 힘껏 엑셀레이터를 밟는 택시 연대의 눈동자에는 시대에 대한 아픔, 가족에 대한 미안함, 당장 눈앞에 닥친 죽음에 대한 공포가 서려 있었다.

 

어떤 시대를 이야기하기 위해선 '생존'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김포공항에서 피터와 만섭이 주고받은 'You did a good job'과 'You did a good job, too'는 그 시대 우리 모두에게 그리고 지금의 우리 모두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지 않았을까.

 

좋은 영화라고 생각했다. 역사적 진실이 있고 그에 대한 거리감도 있고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던 소시민의 모습도 있었으니까. 다만, 영화의 끝이 광화문을 향해 달려간 건 조금 개운치 못한 마무리였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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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아주 좋았고

 

 

D동부터 B동까지를 걸어 A동을 마주하고 서서는 소비가 사라지면 도시는 무엇으로 연명할까,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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