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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LOG

어제 오늘의 걸음, 그제의 꿈

KNACKHEE 2018. 7. 7. 20:02

* 오늘의 걸음



드로잉 수업을 마치고 열여섯 번째 뜨거운 생활 모임 장소로 넘어가는 길은 창덕궁과 /오늘 날씨 무엇?/ 하고 감탄이 절로 나오는 쨍쨍하고 맑은 하늘 덕분에 아주 근사했다.





모임을 한 카페는 조명을 팔기도 하는 곳이었는데 잉스타 용으로 외국 작가의 조명을 설치해 놓은 방이 따로 마련돼 있기도 했다. 탱은 그곳에 들어가 마침 나오는 신나는 음악에 맞춰 춤을 췄다. 탱이 그렇게 신나 해 준 덕분에 장소를 물색한 보람을 느꼈다. 이번 모임 소제로 <레이디 버드>를 택했는데, 혼자 좋은 영화였어, 하고 넘기기엔 아쉬웠기 때문이다. 우리의 사고는 도토리 키 재기이지만 조금이라도 이야기를 확장해 보고 싶었다. 결국 관계와 감정이란 추상적인 개념들로 구성돼 있는 이 영화에 대해 산적해 있는 내 감상을 이걸 계기로 정리해 보고 싶었던 걸 수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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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레이디 버드'와 같이 자신에게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해본 적이 있나?

- 고등학생이 돼서야 겨우 '별명'이 생겼다. 초등학생 때는 덩치 때문에 돼지,로 놀림 받는 게 전부였지. 가장 좋아하던 선생님과 친구들이 붙여준 별명이라 나는 그게 썩 마음에 들었고 이후 모든 온라인 커뮤니티와 심지어 최근까지 소셜 네트워크에서도 사용했다. 나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데 밍은 내가 대학교에서 처음 자기 소개를 할 때 내 이름을 말하곤 편하게 뫄뫄,라고 불러-라고 해서 놀랐다고 했다. 올해부터 이 별명을 내가 만들어낸 다른 것으로 대체하게 됐는데, 뭔가 제대로 된 '내 작업'을 해 보고 싶어졌기 때문인 것 같다.


02. 애증의 감정을 느꼈던 대상이 있나?

- 사실 최초의 애증의 대상은 '자신'이 아닐까. 무리에 던져지면서부터 타인과의 비교를 습득하고, 내가 갖지 못한 것을 태생적 부족함으로 치환해 자신을 싫어하지만 결국은 '나'라는 존재가 그걸 '갖기' 원하는 애틋한 마음. 누군가 나와 자신을 비교했을 때 내가 느낀 감정을 느껴주길 바라는 마음은, 실은 나를 향한 애정이니까. 이렇게 말하고 보니 결국 애증은 정말이지 삐뚤어진 마음이네.


03.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건 어떻게 다를까.

- 좋아하는 건 내 '선택'이 개입될 여지가 있는 대상에 한해 발생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사랑'은 영화에서 비춰진 대로 태생적인 관계, 애초에 내 선택과 취향과 판단이 개입할 여지가 없는 관계에서 의무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얘기를 하면서 생각해 보니 내가 나의 신에게 '사랑'을 구할 때는 대체로 어떻게든 마주해야 하는 상대가 너무 싫을 때였다. 오히려 내가 너무 좋아하는 사람에 대해 기도할 때는 사랑을 구하기보단 신이 상대를 '축복' 해주길 바랐고.




* 어제의 걸음






방학이라 한국에 들어온 노랭이를 만나 피맥을 하고 급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가기로 하면서 의도치 않게 오래오래 밤 마실을 했다. 뜻밖에 날이 썩 괜찮아 오래 걸었는데도 땀이 거의 나지 않았다. 이런 여름밤은 올해의 마지막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공기가 적당했다. 그러고 보니 이번주는 내내 집에만 있어서 일주일 치를 몰아 걷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집에 오는 길엔 매번 지나던 길임에도 별로 눈에 띄지 않았던 발바닥 표시에 눈이 갔다. 가만 그 위에 발을 맞춰 댔다. 쉽지 않다. 지금, 여기-에 발 붙여 사는 게.



* 그제의 꿈

콘서트 꿈꿨다. 현실처럼 완전 안 보이는 자리였는데 마지막 곡 할 때쯤 왜때문인지 1-3층 대부분이 빈자리가 돼 있었다. 그래서 으아아아아 뭐하는 애들이야! 하면서 보이는 데 채워야 한다며 삼층에 있다가 일층으로 뛰어 내려가 앞자리에 앉았는데, 미늉기가 엄청 능청스럽게 왜왜왜 하면서 진짜 코앞에서 돌아다니면서 멘트 쳐줬다. 꿈이지만 행복했찌, ... 막 능글맞게 저 잘생겼어요? 해서 콘서트장 난리나고. 근데 이 꿈 웃긴 건 내한한 켄타로 우리집에서 홈스테이하면서 지냈다. 그제 밤의 나, 뭔가 간절했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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