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TEMPERATURE

월플라워 _ 스티븐 크보스키


거울 속 나에게 묻는 안부

- 영화 <월플라워(2012)>




사람들은 대체로 “좋은 분이신 것 같아요.”라는 말에 쉽게 수긍하지 못한다. 진심은 알 수 없지만 겉으로는 좋은 사람임을 부정한다. 때로는 손사래까지 쳐가며 말한다. “아니에요, 전혀!” 실은 좋은 사람이면서. 타인의 아픔에 눈물을 흘릴 거면서. 손을 잡아주고 따뜻한 포옹을 해줄 거면서. 그런데 어쩌면 정말 좋은 사람이 아니라서 그런 답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나에게 좋은 사람이 아니라서.




보다 SEE

마리화나에 취한 찰리는 거울 앞에 섰다. “찰리.” 거울 속 얼굴을 보며 이름을 불렀다. “역시 이상해.” 아마 이런 행동이 처음은 아닌 것 같다. 찰리는 자신과 마주하는 일에는 어색했다. 모두를 그렇게나 열심히, 바라봐줬으면서.

찰리의 절친한 친구 마이클이 자살했다. 찰리는 바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일 년을 쉬고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혼란이 극대화된 자아를 지닌 아이들 틈바구니에서 지내는 건 끔찍했다. 쉬이 섞이기도, 조용히 지내기도 어려웠다. 성실히 수업만 듣는데도 놀림거리가 생겼다. 공작 수업에서 낙제로 수업을 다시 듣는 졸업반의 패트릭을 봤다. 아이들은 그의 실없음을 비웃고 놀렸지만 찰리는 그가 유쾌하고 배려 깊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럭비 선수인 형의 경기를 관람하러 갔다가 관중 속에 있는 패트릭을 봤다. 다가가 말을 붙였고 그러는 사이 자리를 비웠던 그의 이복 남매 샘이 돌아왔다. 찰리는 첫눈에, 샘에게 반했다. 이후 그들의 친구인 앨리스, 메리, 밥 등과 함께 어울리며 가까워졌음에도 찰리는 모두가 눈치챈 제 마음을 샘에게 말하지 않았다. 찰리는 그저, 샘이 행복했으면 했다. 이미 샘에게 남자친구가 있기도 했고.

처음 파티를 함께한 날, 마리화나에 취한 찰리는 샘에게 마이클의 일을 이야기했다. 샘에게 이를 전해 들은 패트릭은 찰리를 위한 건배를 제안한다. 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자신을 위해 건배를 한다는 게 이상했다. 이유를 묻자 패트릭은 이렇게 답한다. “You see things. You understand. You’re wallflower.” 찰리의 정적인 얼굴이 클로즈업된다. 눈동자가 물기로 반짝이는 것 같기도 하다. “왜 그래?” “날 봐주는 사람이 있을 줄 몰랐어.” 뜻밖의 답에 패트릭이 웃음을 터뜨리며 잔을 든다. “우리도 괜찮은 친구가 숨어 있을 줄 몰랐어. 그러니까 건배하자. 찰리를 위해!”



침묵하다 QUIET

샘은 친절하고 예쁘고 매력적이었다. 꼭 그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객관적으로 봐도 샘은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서 찰리는 그의 남자친구인 크레이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허세 가득하고 샘에 대한 배려도 없다. 패트릭과 메리의 대화를 엿들으니 샘의 전 남자친구들도 썩 괜찮은 사람이 아니었던 것 같다. 이상했다. 패트릭은 유쾌하고 배려심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의 남자친구 브래드는 사람들에게 패트릭과의 관계를 숨긴다. 동성 연인이라는 리스크가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관계를 끝낸 후 공개적으로 패트릭을 비난할 것까진 없었다. 역시. 이상하다.

하지만 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의지하는 문학 선생님을 찾아가 물었다. “Why do nice people choose the wrong people to date?” 선생님은 “We accept the love we think we deserve.” 하고 답했다.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찰리는 계속해서 조용히 생각했다.

브래드는 동성애자란 소문이 나는 걸 막아야 했다. 당장 여자친구를 만들었고 학교 식당에서 공개적으로 패트릭을 호모라고 놀렸다. 이는 브래드와 패트릭의 주먹다짐으로 이어졌고 이내 패트릭이 일방적으로 맞는 꼴이 됐다. 찰리가 모여든 무리 속으로 뛰어들었다. 암전. 화면이 말 그대로 암전됐다. 새카맣게. 화면의 불이 켜졌고, 분노와 당황이 뒤섞인 찰리의 얼굴과 엉망이 된 손이 비춰졌다. 이날 밤, 함께 드라이브를 하고 높은 곳에서 야경을 보며 패트릭은 브래드의 아버지에게 둘의 관계를 들켜 브래드가 죽도록 맞았던 날의 이야기를 찰리에게 꺼내놓는다. 그러고는 묻는다. “Why can we save anybody?”




이해하다 UNDERSTAND

샘의 첫 SAT 점수는 형편없었다.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샘에게 찰리는 함께 공부하자고 말한다. 샘은 원하던 대학에 합격했다. 그때부터 샘의 이야기는 온통 대학을 중심에 둔 ‘미래’로 가득찬다. 어렸을 때 아버지의 상사에게 성추행을 당한 이후로 샘은 늘 낮은 자존감의 늪에 취해 좋지 않은 남자들만 만났다. 매력적인 외모는 샘이 그런 상태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됐다. 하지만 찰리는 ‘이러이러해 보이는 샘’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샘’을 봤고, 그런 찰리의 눈동자 속에서 샘은 원래 꿈꿨던 삶을 살아볼 수 있을 것만 같은 ‘기회’를 봤다.

친구들이 합격한 대학이 있는 지역으로 떠나고 다시 혼자 남겨진 찰리는 점점 상태가 나빠져 결국 다시 병원에 입원했다. 부모님은 순전히 마이클의 일 때문이라고만 알고 있었다. 자신이 가장 좋아했던 헬렌 이모가 트라우마의 원인임을 인정할 수 없어 찰리는 침묵했다. 담당 의사에게도 말을 아꼈지만 결국 한계에 다다랐다. 다른 사람들이 너무 아파한다며 찰리는 울었다. 그러고는 헬렌 이모가 자신을 성추행했던 일을 의사에게 털어놓는다. 그건 이모와 찰리, 둘만의 비밀이었다. 헬렌 이모는 찰리를 예뻐했고 찰리는 그런 이모를 좋아했다. 나쁜 남자를 만나 힘든 삶을 살았고, 제 생일 선물을 가져오는 길에 교통사고로 생을 마감한 이모를 애틋해 했다. 이모가 자신에게 한 행위를 모른 체하고 싶었다. 그냥 모든 게 제 탓이었으면 했다. 이런 마음 때문에, 거울 속 찰리는 계속해서 고통스러웠다.

말하고 나니 머릿속을 휘젓던 악몽이 진정되는 듯했다. 의사에게 이를 전해 들은 부모님은 말없이 찰리를 안아줬다. 찰리의 형과 누나는 시간이 될 때마다 병원을 찾아 그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퇴원한 찰리는 방학을 해 집으로 돌아온 샘과 패트릭을 만났다. 터널 드라이브를 하면서 찰리가 차 지붕 위로 몸을 빼 바람을 맞는 장면 위로 찰리의 내레이션이 깔린다. 찰리는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소소한 아름다움과 경이, 사랑을 느끼게 되는 순간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러고는 확신에 찬 어조로 말한다. “And In this moment, I swear, We are infinite.”

바로 그 지점부터. 찰리는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자신을 과거에 가두지 않고, 과거에 매몰돼 현재의 아름다움을 못 본 체하지 않으면서. 일어났던 일을 인정하고 현재에 서서 나아갈 방향을 선택해 보기로 했다. 물론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손을 꼭 잡은 채로. 때로는 그들에게 조금은 넓어진 자신의 어깨를 내어주기도 하면서. 새 학기를 앞두고 찰리는 ‘참여’를 선택한다. 그래서 좀 바빠질 예정.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