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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MPERATURE

191114-15_전국 친구 투어

KNACKHEE 2019. 11. 17. 21:43


전국 친구 투어,로 명명하고 보니 이번이 올해의 두 번째였다. 처음은 지난 봄에 갔던 포항. 그리고 이번엔 부산과 세종. 내려가는 날이 마침 수능이라서 딱 10년 전의 오늘과 그때에서 지금까지 이어진 선들을 곱씹어봤다. 수능은 인생에 검지발톱 정도의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는 데 생각이 다다랐다. 그 정도의 일이었다.




함께 부산현대미술관에 가기로 했던 A언니가 갑자기 탈이 나는 바람에 미술관은 혼자 다녀오고 언니가 좀 괜찮아지면 저녁에 밥이나 같이 먹기로 했다. 아, 이동하기 전에 숙소에 들러 짐을 놓고 나왔는데 침대 헤드에 쿠션이 달려 있어서 친구에게 호들갑을 떨었다. 저것의 용도가 무엇이냐며, ... 하핫.




기존의 우리와 새로운 우리. 멈춰서 서로의 몸짓을 듣지 않으면 우리는 붕괴되겠지. 서로의 무게를 감각하되 평가하지 않고 빛을 밝혀주어야 한다. 작은 빛은 부끄러운 것을 밝히고 큰 빛은 허물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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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둘러앉아 바라보면, 존재 그 자체가 긍정이 되는 삶으로 가는 틈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공동체의 실마리로서 서로의 공간 사이를 경청해보길 청한다. _ <가장 멀리서 오는 우리: 도래하는 공동체> 전시 도록 중에서






손을 뻗으면 비의 분위기만 내렸다. 기술은 인간을 어디까지 기만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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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 룸 안으로 들어서면 관람객들은 폭우가 내리는 환경에 노출됨과 동시에 그 빗줄기로부터 보호받게 됩니다. 비가 내리는 소리와 냄새는 강렬하지만 우리는 비의 촉감적 부재, 즉, 비가 우리에게 미치는 물리적 환경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공간을 탐색할 수 있습니다. _ <랜덤 인터내셔널: 아웃 오브 컨트롤> 전시 도록 중에서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영화 감독 '요한 루프'의 파운드 푸티지 영화 <★>(2019)을 상영하는 공간이 있었다. 영화사 전체에서 밤하늘이 등장하는 장면만을 발췌해 연대기 순으로 편집해 놓은 영상이었다. 다른 완성체들의 조각이었지만 대체로 아름답고 몽환적이고 때론 급박했다.




미술관의 명칭만큼이나 정말이지 현대적이었고 무척 프롤레타리아적이었다. 앉아서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 많았던 것도 좋았다. 최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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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현대미술관은 그 명칭처럼 동시대의 미술을 중심으로 뉴미디어 아트를 포함하여 오늘날 미술의 새로운 경향을 소개하고, 미술관의 지리적 환경과 인류의 미래와 밀접한 자연과 생태를 중요한 주제로 다룹니다. (중략) 일상과 예술의 관계도 깊이 살피겠습니다. _ <MoCA BUSAN> 소개 리플릿 중에서



저녁엔 A언니를 만났다. 최근에 대학 때의 일기를 몇 개 읽었는데 A언니는 곳곳에 등장해 내가 필요할 때마다 필요한 용기를 얹어주었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마음이라 더 인상적이었다. 언니는 그 어느 때에도 부정적인 에너지를 주지 않았고 내가 움츠러들려고 할 때는 등을 두드려 어깨를 펴줬다. 이번에도 그래줘서. 나는 눈도 못 맞추고 고마워여- 했고, 언니는 어딜 보고 말하냐며 웃었다.



세종은 널찍널찍하고 조용한 도시였다. S선배의 집 맞은편 정육점 앞에 애들이 바글바글하길래 뭔가 했는데 알고 보니 정육점에서 겨울 한정 붕어빵을 팔고 있었다. 인기 만점. Y선배는 길을 헤맸는지 도착 예정 시간을 훌쩍 넘겨 지친 얼굴로 도착했다. S선배는 아무래도 자기가 불안해서 안 되겠다며 12월에 앙꼬를 낳고 나면 자신이 서울로 가는 게 낫겠다며 한숨을 쉬었다. 선배들 보니까 진짜 좋네. 아, S선배가 아주 명언을 남겼다. 선배는 지금 다니는 회사가 어떤지 물었고 나는 1년을 다닌 후에 다시 생각해보겠다고 했다. 어차피 회사는 다 똑같으니까 그럭저럭 괜찮으면 그냥 다니라고 하기에 아, 선배! 뭐가 똑같아요! 했더니 선배는 어차피 회사는 다 다니기 싫어요, 라고 답했다. 정답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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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정도, 에 인색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고 싶다는 생각을 내내 했다. 며칠 전엔 문득, 나이를 너무 많이 먹었단 생각이 들었다. 늙고 젊음의 영역이라기보다는 나이 자체가 좀 무겁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