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 Bossanova,

191226-27_전국 친구 투어2 본문

TEMPERATURE

191226-27_전국 친구 투어2

KNACKHEE 2019. 12. 29. 00:27

 

 

 

 

 

K언니를 만난 건 스무 살 때다. 교회에서 여러 교회가 모이는 비전 캠프에 갔었고 거기서 언니와 같은 조가 됐다. 언니는 예쁘고 착하고 야무졌다. 나는 언니와 친해지고 싶었고 계속해서 질척였다. 이후에는 언니가 방학 때 서울에 올라와 나에게 시간을 내어줬다. 나는 매번 말로만 이번엔 제가 갈게요! 하다가 구 년 만에야 언니를 만나러 광주에 갔다. 신혼집은 넓고 깔끔하고 아늑했다. 언니는 분주하게 움직이며 음식을 준비했고 나는 철없이 앉아서 받아먹기만 했다.

학교 생활에 대해 얘기할 때면 즐거워하던 언니가 올해는 조금 지쳐보였다. 선생님의 권한이 자꾸만 축소되는 사회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서 마음이 어렵다고 했다. 언니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인권이라는 말로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는 것인지 어지러워졌다.

나는 올해의 목표가 담대하고 자유로워지는 것이라고 고백했다. 그런데 그동안 자유롭다,는 느낌을 크게 받은 적이 없는데 그걸 모르는 상태에서 자유로운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 가능한지는 모르겠다. 자유롭지 못한 영역 중에 하나는 사람인데, 나는 가능하면 상대를 편안하고 기쁘게 해주고 싶다. 상대의 마음을 얻으려는 목적이 전혀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보다는, 사는 게 피곤한데 나라도 조금 덜 짐스러웠으면 좋겠는 마음이다. 그래서 내가 받고싶은 마음들을 주려고 노력하는데 그게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있을 수밖에 없으니 어렵다.

언니는 가는 길에 지난 여행에서 사온 것들을 쥐어주었다. 정말이지, 다정하고 상냥한 사람.

 

 

 

안양에서 친구를 만나기까지 시간이 떠서 <미안해요 리키>를 봤다. 미래의 행복을 위해 지금의 행복을 유예하는 건 어디나 똑같구나 싶었다. "WE ALL GET OLD."라는 대사가 요즘 하는 생각들과 맞물려 자꾸 눈에 밟혔다. 영화에서 삶은 생각 이상으로 힘든 무언가이고 젖은 모래에서 발버둥칠수록 더 깊이 빠져드는 악몽과도 같은 것으로 표현된다. 궁지에 몰린 가족은 이렇게 말한다. "우린 서로에게 무슨 짓을 하는 걸까." 사람은 궁지에 몰리면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자신의 최악을 보여주는 것 외엔. 다 같이 벤을 타고 노래를 부르던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최악의 날들이 이어지다가 정말 뜻밖의 행복이 찾아오는 순간들이 있다. 그때는 착각하기 쉽다. 앞으로도 괜찮을 수 있을 거라고. 하지만 불행은 타이밍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최악이 이어지면 내가 가장 되고 싶지 않았던 모습이 튀어나오기도 하는데(이를 테면 폭력, 알코올 중독의 되물림 등) 어떤 상황보다도 그런 내 모습이 가장 최악이라 더 깊은 구렁텅이로 빠져버리기 십상이다. 영화를 보다가 택배, 플랫폼 기사 등 작금의 문제들이 떠올랐다. 회사를 위해 갈려나가지만 정작 보호받아야 할 순간에는 자영업자로 분류되며 모든 손해를 떠안아야 하는 사람들. 택배 일을 하다가 강도를 당하고 온몸이 만신창이가 됐는데 배상의 책임을 고스란히 떠안은 리키는 가족들 몰래 다시 운전대를 잡는다. 이를 안 가족들이 달려가 차를 막아보지만 리키는 울부짖으며 말한다. "LET ME GO." 일을 하러 가야 한다고.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새벽 배송 등 위험하고 수익이 조금 더 높은 업무는 과연 '선택지'로 분류될 수 있는 일일까. 영화의 원제는 'SORRY WE MISSED YOU'다. 생활고에 쫓기며 부모는 아이들에게 낼 수 있는 시간이 적어지고 많은 초점이 돈에 맞춰진다. 자식들에게도 그렇기에 더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이들은 예전의 당신이 어디로 간 건지 모르겠 말한다. 그런데 아마. 삶에 쫓기지 않을 때의 자신을 가장 놓치고 싶지 않은 건 자기 자신이겠지.

_

 

친구와 저녁을 먹으러 간 곳에서는 로봇이 음식을 테이블까지 배달해줬다. 그런데 로봇에 담긴 음식을 테이블에 놓아주는 것은 사람의 몫이었다.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연말이니, 친구와 나눌 올해의 질문을 준비해갔는데 친구는 그 어떤 질문에도 너는?이라고 묻지 않았다. 사실 그건 좀 충격이었다.